유명 제과회사 이사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임규철씨는 자신의 직장생활 경험을 살려 요리 주점을 창업했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그는 자신의 50대, 60대, 그 이후의 삶까지 계획해놓았을 정도로 치밀했다. 그가 젊은 부부에게 전하는 노후에 대한 조언이 알차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요리 주점 프랜차이즈 ‘마찌마찌’ 화정동 지점의 임규철(53) 사장. 그는 2006년 겨울, 유명 제과회사의 이사직을 끝으로 은퇴했다. 주위에서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제는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대학교 2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딸에게 들어갈 돈이 적지 않잖아요. 먼 훗날 아내와 함께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도 싶고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고 했다.
“마흔 살 넘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직장 선배들이 부장 달고 은퇴하는 걸 많이 봤어요. 당당하던 선배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걸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고, 선배들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은퇴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뭐를 해야 하나 깊이 생각했죠.”
결론은 창업이었다. 25년간 회사를 다니며 쌓은 경험을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사, 생산·품질 관리, 영업 부서 등을 두루 거친 경력을 살리는 데 점포 운영만 한 것은 없었다.
“회사 다닐 때 직원들하고 강남의 대형 호프집 같은 데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거든요. 분위기도 좋고 술맛도 좋고 말이에요. 프랜차이즈 주점이 ‘딱’이다 싶었죠. 제가 호프집을 다니면서 느꼈던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개선해 제대로 된 요리 주점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의 결정에 아내가 크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확고한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구체적인 계획과 방향 등을 보여줬더니 아내도 허락하더라고요. 아내와 함께 시장조사를 하러 다녔어요. 동네 맥주 집에 가서 직접 맥주도 따라 보고, 주방에도 들어가 살펴보곤 했어요.”
임규철 사장은 은퇴 후 창업을 할 때는 자기만의 원칙과 철저한 시장조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 50세가 넘어 창업을 하는 만큼 수익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것을 택했다. 또 운영을 직접 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아이템을 정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홀 운영의 경우 50대인 제가 하는 것보다 젊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지배인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아르바이트생 채용, 직원들의 성과 관리 등도 지배인에게 권한을 줘서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했고요.”
‘마찌마찌’는 오후 4시면 문을 열지만 그와 아내는 오후 5시 반에 출근한다. 그리고 저녁 8시면 퇴근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픈 6개월간은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매장에 머물렀다. 아내는 이불을 갖다 놓고 한쪽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창업하던 그때, 공교롭게도 딸이 외고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창업 때문에 정신없어서 딸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못 줬는데 막판에는 딸이 울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딸 등굣길에 자동차로 태워다주고 그래요(웃음).”
하루빨리 명확한 목표의식 갖고 노후 준비할 것
창업 1년 만에 월 매출 5천5백만원에 월 순이익 1천5백만원을 벌게 된 임규철 사장. 그는 창업에 성공한 뒤 더욱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규철 사장의 노후는 어떤 밑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그는 60세가 넘으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봉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가게를 하고 있지만 여기에 매여 있을 생각은 없어요. 제가 없어도 가게가 돌아가게끔 만들어 놨거든요. 1년 정도 운영한 결과 뜻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에게 가게를 맡기고, 저는 노후를 즐길 거예요. 우선, 아내와 여행을 다닐 생각이에요. 그동안 저 혼자 다녔던 좋은 곳들을 아내와 함께 가고 싶어요. 또 하나는 제가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봉사하는 거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그는 60세 이후의 삶이 기대된다고 했다. 연금과 역모기지론 덕분에 노후 자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60세부터 월 3백만원의 연금을 받게 돼요. 6년 전부터 매달 1백80만원씩 개인연금을 낸 덕분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45평 아파트는 65세가 되면 역모기지론으로 돌릴 거예요. 그럼 거기서도 돈을 받을 수 있어요. 70세 만기였던 보험도 80세까지 진료받을 수 있게 기간을 연장해놨고요. 제가 60이 되면 아들은 서른 살, 딸은 스물다섯 살이에요. 그때쯤 되면 둘이 일할 능력이 되니까 더 이상 자식들에게 들어갈 돈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그는 매달 자녀 학자금과 결혼 비용을 통장에 적립하고 있다. 기본적인 것은 도와주지만 자녀들이 성장한 뒤로는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자녀들을 철저하게 자립시키는 게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현명한 방법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임규철 사장은 마지막으로 젊은 부부들에게 조언했다. 하루라도 빨리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노후를 준비하라는 것.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노후를 제대로 보낼 수 있어요. 오늘 하루를 예로 들어볼까요? 목표가 없으면 하루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마는 거예요. 노후를 위한 재테크 자금 준비도 마찬가지예요.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얼마를 벌어서 어디에 얼마를 쓴다’는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냥 닥치는 대로 벌어 쓴 뒤, 남는 걸 노후 자금으로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는 목표의식과 더불어 구체적인 계획의 중요성도 피력했다. 목표를 정했다면 뜬구름 잡지 말고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
“만일 ‘설악산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보세요. 그럼 이동수단은 무엇으로 할지, 누구랑 갈지, 밥은 해먹을 건지 사먹을 건지,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 구체적으로 짜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돈이 얼마나 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예요. 노후 준비도 마찬가지예요. 노후에 어떻게 살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걸로 인한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를 계산해보세요. 설악산 한번 가는 것도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데, 인생의 노후 준비는 어떻겠어요.”
임규철 사장은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잡혔다면 바로 실행하고,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며 “`계획이 망가졌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또 시작하라”고 덧붙였다.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만이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
■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