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은 부자들만 간다’는 말은 편견이다. 부유한 어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열심히 벌어 안정적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면 부부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상낙원’, 보통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곳이에요(웃음). 집 한 채 팔아서 들어왔고, 연금으로 살고 있어요. 전에 일반 아파트에 살 때는 아이들도 다 출가하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아, 이제 우리 차례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들어와 보니까 그게 아니야. 70이든 80이든 삶에 의욕이 생겨요.” -권인숙씨
권인숙(62)·박학춘(70) 부부는 지난 12월 27일 서울 종암동에 있는 도심형 실버타운에 입주했다. 박학춘씨는 평생을 교육 공무원으로 살았다. 은퇴 이후에는 삶의 의욕도 줄어들었다. 나이 70이면 인생도 후반, 건강관리는 고사하고 ‘술 마음대로 먹다 죽어야지’ 생각했다. 생각이 달라진 건 입주 후다.
“우리 부부는 초반전이에요. 여기서는 가장 젊은 청춘이죠. 젊은이 취급을 받으니까 희망이 생겨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술도 끊었어요.” - 박학춘씨
“입주와 동시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5개월 됐는데 이제 잘해요. 80세 노인들도 수영, 탁구를 아주 잘하세요(웃음).” - 권인숙씨
두 부부가 생활하는 데는 한 달에 1백60만원 정도가 든다. 겨울에 난방비가 추가되면 조금 더 들겠지만, 각종 관리비와 시설 이용, 세 끼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입주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한다. 입주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인근 지역의 아파트 시세와 같다. 평당 1천5백만원 정도다. 연면적 23,188㎡(약 7천 평)의 공간에 의료, 교육, 복지, 문화, 체육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실내수영장과 골프연습실, 피트니스클럽, 극장, 찜질방, 물리치료실도 한 건물에 있다. 옥상에서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일반 아파트 관리비보다는 더 나오지만, 간호사가 상주하고 의사도 있고, 운동과 문화 혜택이 다 보장되는 가격이니까 늦게 입주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60세부터 들어와야 자기 삶을 누리면서 생명 연장을 할 수 있어요(웃음). 보통 실버타운 하면 양로원을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실버타운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지방에 위치한 양로원이나 요양원도 ‘실버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입주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념이 다르다. 민간이 운영하는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혜택은, 아무리 저렴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 수입이 보장돼야 입주할 수 있다. 경제력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는 양로원, 전문적인 건강관리와 요양이 필요한 경우는 요양원을 선택한다.
“실버타운을 개발 마인드로 생각하면 실패합니다.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짓고, 일해야죠. 어른들과 생활하는 게 즐겁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른을 모실 줄 아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 서울 성북구 종암동 ‘노블레스 타워’ 김영완 상무
로비에는 입주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아직 50대 후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젊은’ 부부도 있다. 호칭은 ‘언니’ ‘아우’다. 김영완 상무는 입주자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개발자와 입주자가 이룬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티가 실버타운의 개념이다.
“더 활기차고 즐겁게 인생을 보내는 게 도심형 실버타운의 가치입니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이 입주하는 편이다 보니, 이 안에서는 교우관계가 왕성해요. 자녀와 함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어머님들은 평생을 가족들 뒷바라지하며 보내셨잖아요. 여기서는 어머님들의 활동이 왕성해요. 당구, 탁구도 새로 배우시고, 인생의 선후배로서 교우관계도 왕성합니다.”
실버타운 건설 초기에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주로 자리 잡았다. 정서적으로 여유 있는 환경에 초점이 있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지방 실버타운은 노인에게 필요한 의료 시설이 부족했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활동이 어려웠다. 자녀들이 자주 찾아올 수 없다는 점은 가장 큰 맹점이었다.
“시내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더 활발한 사회생활이 가능합니다. 지하철역까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인근에는 대학 캠퍼스와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아요. 무엇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자주 들러 놀다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연로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자녀들은, 실버타운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자체 운영하는 클리닉 센터, 24시간 상주하는 간호사는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다. 식단도 노인 중심이다. 지나치게 맵거나 짠 자극적인 식단은 지양한다. 영양사가 노인에게 맞는 저염분 식단을 제공한다.
“직접 해 먹는 것과는 음식 맛이 다르지만, 저희가 맞춰 먹어야죠. 맵고 짠 음식에만 익숙했는데, 식단에 맞춰 먹으면 견강에는 더 좋으니까요. 골고루 주고, 덜 자극적이고.” - 권인숙씨
서울 시내에는 ‘호화’ 실버타운도 있다. 일인당 월 관리비가 2백만원 정도 든다. 형편에 따라 골라 입주하는 것은 자유지만, 점점 다양해지는 실버타운을 폭넓게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비싸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소문이 안타까워서 자꾸 자랑하게 돼요. 실제로 은퇴한 부부가 아파트에 살아도 한 달 생활비가 이 정도는 들거든요. 하지만 다양한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면서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삶의 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겠죠. 입주자들과 한솥밥을 먹고, 아침에는 사우나에서 만나고. 그러다 보니 안 친해질 수가 없어요. 한 달만 지나면 형님, 아우가 되는 거죠(웃음).”
부실해질 수 있는 건강관리와 외로움은 행복한 노년의 암초다. 실버타운이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도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지만,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모여 도모하는 새로운 삶의 의욕은 간과하기 쉬운 실버타운의 매력이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주)백마씨앤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