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모습을 두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숨겨진 무언가를 보려고 노력하는 이는 흔치 않다. 가려진 속살은 남다른 시각과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시도 하나하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그리고 뒷모습을 탐구하는 이런 시도는 조금씩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칼럼 기고 논란 후 검찰총장 꿈 접고 변호사 길 택해
교묘하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이 되고 싶었던 소년은 법조인으로 자랐고, 이제는 두건으로 가려진 ‘디케의 눈’ 너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멀게만 느끼는 법의 그림자를 밝은 곳으로 내어놓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 틈틈이 별을 찾는 취미를 즐긴다. 넓게 보면 그야말로 모든 생활이 ‘세상의 속살’을 파헤치는 작업의 연속인 셈이다.
“평범한 사람이에요. 특별히 남들이 안 하는 일을 찾아 한다거나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간혹 제가 ‘돈키호테’ 같은 기질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예상했다가 실망하는 사람도 있던데, 사실 법 공부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범생 성향이 강해요. 다만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여건을 만들어서 한다는 것 정도죠.”
금태섭 변호사가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2006년 9월, 서울중앙지검 검사 신분으로 한 일간지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다. 10회 연재를 기획하고 시작했던 칼럼의 첫 번째 글은 ‘피의자가 됐을 때 아무것도 하지 마라’,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는 두 가지 행동 지침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12조를 쉽게 풀어쓴 것에 불과한 그 글이 그렇게까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연재하려고 했던 내용은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들이었어요. 책으로 내려고 구상해보기도 했고요. 10년 넘게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검찰이나 형사사법 제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고 거기에 나 자신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권한은 막강한데, 수준은 그에 못 미치고 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피의자는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버리고, 검찰이나 제도권은 늘 해오던 관행대로 국민을 객체로 두고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금 변호사는 규칙을 명확하게 하고 국민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무엇인지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게 됐다고 한다.
칼럼 기고 후 금 변호사는 직무상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이라는 이유로 검찰총장 경고처분을 받았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에서 총무부로 발령이 나면서 결국 12년 동안 일했던 검사직을 스스로 내놓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자의라고는 하지만 애정을 갖고 오랜 기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한때는 검찰총장의 꿈까지 키웠던 그였다.
“저도 제 나름 검찰을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한 일이고 오히려 개인적으로 제게 불이익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마음먹고 실행했던 건데 막상 그렇게 되니 당시에는 실망스럽기도 했죠. 그런데 뭐, 지금은 아직까지 검찰 출신인 것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습니다.”
1회를 끝으로 접어야 했던 칼럼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젠가는 피의자의 정당한 권리를 알리고 공정한 수사 기법을 정착시키는 연재물을 끝마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판사 아버지 영향, 법조인은 내 운명
검사로 일할 때는 ‘검사가 내게 딱 맞는 일이다’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런데 또 지금은 변호사 일도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아주 잘 맞는다고 한다.
“같은 사건인데도 반대편에서 보니 시각이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좀 더 자유롭고 재미있기도 하구요. 흔히 사건이 100만큼 있다고 하면 경찰 조사에서 50으로 줄고, 검찰 조사에서 30이 되고 나중에는 1만 남는다고 하는데 변호사는 아무래도 의뢰인에게서 바로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까요. 대신 검사는 좀 더 중립적이죠. 둘 다 매력적이고 잘 맞는 거 같아요.”
서글서글한 눈매와 부드러운 인상의 금 변호사는 강직하고 곧은 법조인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추리 소설을 보며 탐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 탐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자연스레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껏 단 한 번도 이 길을 걸어온 데 대해 후회해본 적이 없는 그다.
“아마도 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겠죠. 아버지가 법대에 가라고 하신 적도 없는데 법대에 가서 사법고시 준비를 했고, 아직까지도 정말 즐겁게 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검사로 있을 때 가끔 착해 보인다는 소리도 듣고, 어머니도 저한테 ‘독한 데가 없어서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는데, 저한테 수사 받아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세상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더라도 법률가들은 일단 그들의 논리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정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판결을 내릴 때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정에서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주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하며 열린 마음으로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만큼 ‘대중들과 소통’ 하는 것 또한 그가 중시하는 목표 중 하나다.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싶어 EBS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고 꾸준히 언론 기고도 하고 있다.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 스페셜-책과 문화’ 진행은 아직까지 맡고 있는데 워낙 책읽기를 좋아하는 터라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다만 음악이나 미술 분야는 조금 버거울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또한 새로운 활력이 된다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라디오 진행은 계속 하고 싶어요. 방송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잘 몰랐던 사회적 문제를 고민해보는 기회가 생겨서 좋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해보면서 계속적으로 세계와 맞닥뜨리고 깊이를 채워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잘하지는 못하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몇 달 전 발간한 「디케의 눈」 외에 또 책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 동기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10년 후 목표를 ‘작가’라고 써놓았더랬다. 누구나 법을 쉽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을 써보고 싶은 ‘작가로서의 목표’를 세우고 있는 그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목표는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것,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나라 법조계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사람들이 법을 현실 속에서 친숙하게 느끼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변신을 시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취미는 천체 관측, 라디오 진행은 새로운 재미
금태섭 변호사의 취미는 천체 관측이다. 얼마 전 거금을 들여 망원경을 샀다.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별을 보려면 추위뿐 아니라 지루함과도 싸우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만난 토성은 썩 현란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몇 백만 광년 떨어진 고요한 그 빛을 보고 있는 그 순간이 평화롭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뚫어지게 빛을 찾으려 하면 외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법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두건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오랫동안 법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다. 강직하고 냉철하고 차가울 것만 같은 이미지를 대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도 두건으로 가려진 눈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금 변호사는 그 두건 너머 ‘디케’의 눈에 주목한다. 디케가 사명감에 불타는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을지, 약자를 위해 눈물 흘리는 연민의 눈을 하고 있을지, 진실 앞에 끝없이 질문하는 고뇌에 찬 눈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말이다. 그리고 모든 법조인들이 이에 대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숨겨진 것을 보려는 그의 꾸준한 시도 덕에 조금은 세상이 균형에 다가서고 있는 게 아닐까.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인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