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꿔요! 불만을 노래하는 ‘불만합창단’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꿔요! 불만을 노래하는 ‘불만합창단’

“끝없이 나오는 불만들도 노래로 부르다 보면 짜증이 아닌 즐거움”


지난 10월 11일 서울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국 각지의 8팀이 참여한 ‘불만합창페스티벌’이 열린 것. 평범한 사람들의 불만도 예술 혹은 사회 참여로 승화될 수 있을까. 이들의 불만과 소망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꿔요! 불만을 노래하는 ‘불만합창단’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꿔요! 불만을 노래하는 ‘불만합창단’

각계의 각양각색 불만 릴레이
“쇼윈도에는 44 마네킹 / 내 몸매 닮은 마네킹 없네 / 88 사이즈는 어떡하라고(중략) 어린이 공연엔 보모 없어 / 따라가는 어른도 표 받아 / 그렇다면 할인을 해야지 / 할인은 왜 안 해”(‘진주 꾀꼬리 불만합창단’ 노래 중에서)
“전과 없는 대통령 거짓말 안 하는 대통령 최소한 한국 사람이면 좋겠어(중략) 이제는 시국 걱정 그만하고 싶어요” (‘누리꾼 불만합창단’ 노래 중에서)

불만합창단은 각양각색의 불만을 발랄하게 노래해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짝이 의상과 머리에 꽂은 빨간색 꽃, 색색의 티셔츠와 검정 의상에 빨강 포인트까지 의상도 천차만별. 이들은 과연 어떤 불만이 있었기에 불만합창단으로 모이게 된 걸까.

유래를 따지자면 불만합창단은 멀리 서유럽에서 ‘물 건너 온’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인 텔레르보·올리버 코차 칼레이넨 부부가 떠올린 이 기막힌 아이디어는 영국 버밍엄에서 닻을 올려 세계 각 도시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서울에까지 상륙한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불만합창단을 알게 돼 8개의 불만합창단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품고 베를린까지 다녀온 희망제작소 김이혜연·곽현지 연구원이 이 크나큰 행사의 일등 공신이다. 이번 축제는 박원순씨가 상임이사로 있는 희망제작소의 사회 창안주간 행사의 일부로 기획됐다.

“베를린의 불만합창단 설명회에서 수십 개의 불만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토론 문화가 척박한 우리 문화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사소한 불만들을 이야기하고 또 설득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있었지만 일단 시도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이래저래 순탄하지만은 않은 과정을 거쳐 8개의 특색 있는 합창단이 만들어졌다. 가사를 통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나온 불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특정 세대의 시각을 담고 있는가 하면, 보편타당한 내용들도 많았다.

평화 운동가인 황순영 할머니(65)의 불만은 ‘전 세계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할 돈과 힘으로 복지 혜택을 만들면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촛불집회에서, 위안부 수요 집회 현장에서 소고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전쟁 없는 세상을 노래하고 싶어 ‘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먹고 사는 데만 골몰하던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할머니는 자궁암 판정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하다가 민간요법을 통해 차츰 건강을 회복한 이후 생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15개 시민 단체를 후원하며 참여하는 어엿한 활동가다.

장애인도, 청소년도, 할머니도 불만 많아요
역시 ‘서울 멋대로 불만합창단’ 단원인 이영주씨(24)의 불만은 무엇일까. 영주씨는 인쇄 영업직에 종사하면서 뒤늦게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이기도 하다.

장애인 이동권과 몸에 맞지 않는 청바지, 직업 선택의 어려움을 노래한 ‘관악 한울림 불만합창단’의 공연.

장애인 이동권과 몸에 맞지 않는 청바지, 직업 선택의 어려움을 노래한 ‘관악 한울림 불만합창단’의 공연.

“자기들만 살 궁리를 하는 현 정권이나 정치 권력, 대기업 등에 불만이 많아요. 제가 7년 정도 조기축구 회원으로 활동했는데, 축구협회의 축구 행정이나 감독 선정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예요. 학력만을 중시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요.”

연극과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은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영주씨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부모님 걱정에 일단 항공 경영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평소 나비넥타이를 즐겨 맬 만큼 튀는 패션 감각을 지닌 영주씨는 노래할 때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촛불집회와 여성들의 정치 참여 일선에 섰던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화장발’과 ‘장백’의 운영자 희재씨는 ‘누리꾼 불만합창단’의 멤버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했던 모임인 만큼 집회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거친 시위 현장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처음엔 노래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을 법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주로 민중가요를 많이 불렀어요. 시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무언가 할 일을 찾던 차에 희망제작소의 불만합창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조금 더 안전하고 거부감 덜한 방법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거죠.”

사람들을 모아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했다. 토론을 하고 노랫말을 만들면서 서로의 고민과 불만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커플 지옥, 솔로 천국’에서 종부세까지 다양한 이슈를 노래에 담았어요. 끝없이 나오는 불만들을 노래하다 보니 불만이 짜증이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어쩌면 지금까지 가장 많은 불만을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계층이 장애인이 아닐까 싶다. 불만합창페스티벌에 참여한 장애인 구성원은 모두 2팀. 그중 정규교육에서 배제된 한울림장애인야간학교 학생들인 ‘관악 한울림 불만합창단’의 황은주씨는 무척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선생님과 연습하는 과정이 좋았어요. 한 달 전부터 준비했어요.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마음껏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10대들의 불만도 귀담아 들어야겠다. 서울 봉천동 나눔의 집에서 꾸린 ‘드림한누리공부방불만합창단’ 소녀들은 발랄하고 깜찍한 노래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공부 너무 집착, 시골길 너무 막혀 / 던킨 너무 비싸, 이사 가고 싶어 / 정말 난 미치겠어”라고 노래하는 소녀들. 유치원 교사가 꿈이라는 상은이와 호텔리어를 꿈꾸는 정희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단다. 지금 갖고 있는 불만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불만이 단순한 불만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이날 참여한 모두가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불만합창’을 다른 대안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위성은(객원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