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음악에 대한 아내의 열정과 따뜻하고 편안한
남편의 선율이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부부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또 서로에게 가장 매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지휘자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김봉미와 뮤지컬과 연극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테너 최윤호 부부. 함께 꿈꾸고, 함께 노래하는 이들 부부의 멜로디를 들어보자.


‘여성’ 지휘자보다 실력 있는 지휘자로 불리고파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마지막 곡으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가 물결이 흐르듯 울려 퍼졌다. 웅대한 선율이 사그라지자 관객들이 만족스러운 박수를 보냈다. 서울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전속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한 김봉미(33) 지휘자의 첫 공연이었다.

“한국무대는 아직은 조금 생소하기도 하고, 제 자신도 긴장이 덜 풀려서인지 미흡한 점이 많은 공연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관객들은 좋게 평가해주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앞으로 공연을 계속 해나가면서 청중과도 더욱더 교감하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닦아 나가야죠.”

“저는 사실 그 첫 무대를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힘들었던 시간들이 음악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제가 먼저 귀국하고, 아내는 마쳐야 할 공부 때문에 독일에 남는 바람에 3년 가까이 떨어져 지냈어요. 그동안 혼자서 참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중간에 한 번 아내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는데, 한국에 있는 저와 연락이 안 돼 혼자 치료를 받았다더군요. 그렇게 고생을 했고, 저 역시 무척 외로웠고요. 연주는 둘째치고 ‘이 사람이 이렇게 잘 이기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죠.”

이렇게 무대에 서기까지 김봉미씨는 한국을 떠나 10여 년을 보냈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고 피나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남편 최윤호씨(38)는 무대 뒤에서의 그녀를 알기에 그 무대가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평소 남편은 김봉미씨의 연주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전공한 성악가 남편이기에 귀와 눈이 예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윤호씨는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한 아내가 좀 더 성장해 인정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단다. 그래서 자신이 엄격한 평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국내 음악계에서 여성 지휘자를 찾아보기 힘들어서인지 아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화제가 돼요. 사실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휘자가 그리 흔한 편은 아니에요. 독일에서 아내가 처음 지휘 공부를 시작했을 때, 함께 배우는 사람들 중 여자는 아내 혼자밖에 없었어요. 그들과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경쟁하고 돌아온 만큼 이곳에서도 ‘여성’이라는 점보다 먼저 실력으로 눈에 띄어야 한다고 봐요. ‘김봉미 정말 잘한다. 그러고 보니 여자 지휘자네?’ 이렇게 되어야죠.”

정작 김봉미씨 자신은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독일 유학 후 자연스레 지휘를 하게 됐고, 피아노를 칠 때처럼 똑같이 지휘봉을 잡았을 뿐인데 주변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 없던 부담감도 조금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 지휘자가 무대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지 2, 3년 안에 그런 시선도 자연스레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봉미씨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데는 가족의 영향이 크다. 김봉미씨의 아버지는 부산시향을 이끌었던 지휘자였고, 친척들 중에도 음악을 하는 이들이 많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고 자연스레 온몸에 음악이 스며들었다.

“주변에서 항상 물어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피아노를 치다가 왜 지휘로 바꿨느냐고요. 그럴 때면 늘 ‘그냥 하게 됐어’라고 대답했는데, 정말 그래요. 아버지를 흉내 내기도 하고, 들었던 것을 쳐보기도 하면서 빠져든 거죠. 음악에 처음은 쉽게 다가갔으니까 체계적인 전문성을 제대로 쌓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러시아, 독일 에센 폴크방 음대, 카셀 국립음대, 데트몰트 음대를 거치며 계속 공부를 했어요.”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모든 걸 다 배우려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 시간과 노력이 음악 곳곳에서 빛을 낸다고 생각하기에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 앞에서 전체 소리를 듣잖아요? 지휘자로 실제 오케스트라 앞에 서보면 그 깊이나 다양함을 골고루 오롯이 맛볼 수 있어요. 저마다의 독특한 울림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제가 피아노를 배울 때 소리의 색이 다양하다는 칭찬을 들었거든요. 저는 다양한 빛깔이 잘 발현되는 음악이 좋아요. 지휘는 수십 종류의 악기가 제 빛을 내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도록 만드는 게 매력이에요.”


의사의 오진이 바꿔놓은 삶·아이가 함께한 연주회의 감동
올해 초 여성 지휘자 성시연씨의 공연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주목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성시연씨와 그녀가 서로 아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성시연씨와 제가 비슷한 또래고, 같은 부산 출신에 피아노를 전공했고, 거기다 둘 다 독일에서 지휘 공부를 했어요. 시연씨 공연도 두 번 보러 갔었는데, 아무래도 나랑 조건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저기서 저렇게 하면 관객은 이렇게 보겠구나’를 연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클래식은 유럽 문화라 유서 깊은 그곳에서 인정받기란 정말 쉽지 않다. 마치 우리가 판소리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외국인을 보고 ‘대단하다’며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표현하기엔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점에서 한국인으로 선두에서 인정받고 있는 성시연씨를 높게 평가하고 있단다.

“사람들이 많이들 헷갈려했어요. 심지어 시연씨가 콩쿠르에서 입상했을 때, ‘한국 여성이 입상했다’는 보도를 보고 엄마가 전화하셔서 ‘혹시 너니?’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면서 활동이 뜸했었는데, 은근히 속상한 거예요. 남편한테 투덜거렸더니 ‘대신 남편이 있고 아들이 있잖아’ 그러기에 ‘맞다’ 싶어서 웃어 넘겼어요.”

개인적인 성취도 욕심나지만, 가정의 소중함도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크게 여기고 있는 김봉미씨다. 가족과 함께하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저한테 ‘뭐 하러 결혼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래도 여성이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에 결혼은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겠죠. 독일 선생님도 결혼한다고 하니 이해를 못하겠다고, 아쉽다고 그러더라고요.”

물론 김봉미씨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결혼 계획이 없던 그녀를 바꿔놓은 건 최윤호씨의 변치 않는 따뜻한 관심이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던 남편은 그녀의 낯선 독일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200km나 떨어져 살았는데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왔다.

“아내가 저한테 마음을 참 안 열더라고요. 누군가를 2년씩 쫓아다닌 건 처음이었어요. 아내가 독일 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으니까 그 집에 TV와 컴퓨터 같은 물건을 가져다 살림을 채워주면서 ‘나중에 나랑 꼭 결혼해야 한다’ 하고 세뇌를 시켰죠(웃음). 그렇게 오래 애를 태우더니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 처음으로 와달라는 거예요. 달려갔더니 위경련으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어요. 며칠 간호를 하는데 ‘이 여자는 내가 없으면 정말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늘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꿨던 최윤호씨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갖고 싶었단다. 하지만 당시 피아노를 전공하던 김봉미씨는 졸업 연주 심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 미루려 했는데 그만 아이가 생긴 것이었다. 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김봉미씨는 실감도 안 날뿐더러 속상하기까지 했단다.

그런데 몇 달 뒤, 하혈을 하기에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더니 배 속 아이가 뇌수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2차, 3차 병원까지 전전하는 한 달여는 정말 지옥같이 힘든 시간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 제 가치관이나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가족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살아서 건강하게만 나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던데요.”

어렵게 해당 분야 수술의 권위자라는 의사를 찾아간 부부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정말 ‘뒤로 넘어갈 뻔’했단다. 아이가 ‘완벽하게’ 정상인데 대체 왜 왔냐며 의사가 도리어 그들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숨 막히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다니 세상 모두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 일이 있어서 오히려 잘된 것도 있어요.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사실 나 자신은 아버지가 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대해야 하는지를 체득하게 됐어요.”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원래 저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어요. 또 나 자신에게조차 너그럽지 못하고 무조건 몰아세우는 성격이었는데 정말 많이 누그러졌어요. 음악에 있어서도 그래요. 아무리 피곤해도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렇다고 느슨해지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아이를 낳은 뒤에도 공부를 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즐겁게 하게 된 거죠.”

아이와 함께했던 졸업 연주는 김봉미씨 음악 인생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도 중요한 무대에서는 떨게 마련이다. 그런데 임신 8개월 때 있었던 졸업 연주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굉장히 편안했다고 한다. 손끝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깊고 부드러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한 번도 내 일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와 함께 연주도 하고 지휘도 하려고 해요. 항상 저를 즐겁게 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제 음악도 행복하고요. 남편을 보면 제가 참 많이 웃거든요. 단 하나 아쉬웠던 건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다는 건데, 이제는 제가 공부를 끝내고 귀국을 했으니 우리 셋, 함께하려고요.”

배 속에서 그토록 엄마 아빠의 눈물을 쏟게 했던 아이는 이제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음악 하는 부모 밑에서 음악영재로 크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주변에서는 왜 직접 음악을 안 가르쳐주는지 물어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집에서 연주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잘해야 본전이고, 꼭 누군가 지적을 하거든요. 가족들의 기준도 높을 수밖에 없고. 저도 귀가 예민해서 잔소리 할까봐 참는데 10분쯤 지나면 제어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학원에 보내고 있어요(웃음).”

셋이서 함께 만드는 행복한 2악장
남편 최윤호씨는 요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테너로 무대에 서는 대신 ‘배우’라는 이름을 달았다. 클래식 쪽에서는 ‘외도한다’고 얘기하지만, 최윤호씨에게 뮤지컬 무대는 이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곳이 됐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가 저한테 뮤지컬이나 연극에 도전해볼 것을 권했어요. 그 때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10년이나 더 지나서 시작하게 됐네요. 아내가 저 대신 오디션 원서를 접수해놓고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오디션에 통과해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정말로 첫 대사를 뱉으면서 현기증이 났어요. 그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앞에서 감히 내가 말이죠. 그 순간부터 ‘내길이구나’하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만드는 화음 김봉미 최윤호 부부

아내의 눈에도 남편이 이토록 자신을 완벽하게 버리고 몰두한 적은 없었던 듯하단다. 공연 전까지 지나칠 정도로 되풀이해보고 미리 준비하는 자신과 달리 절박함이 없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소리 하나를 내겠다며 거의 한 달을 반복하는데,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해서 보기가 좋다.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있어도 선뜻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저는 부부가 서로 ‘윈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는 둘 다 음악을 하니까 음악 하는 사람 특유의 자존심, 경쟁심 뭐 그런 게 있어요. 사실 저희 정말 많이 싸우거든요. 그래도 이 사람이 나를 많이 생각해준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최윤호씨는 새롭게 도전하는 일도, ‘고향’ 같은 클래식도 ‘뭔가 이루겠다’는 목표를 정하기보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후회없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음악과 문화에 대한 애정과 실험정신을 간직한 채.

이제 막 국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김봉미씨는 12월에 열릴 송년음악회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도 클래식과 소설을 엮은 기획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계획 중이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장르는 오페라예요. 독일에서 해본 경험이 있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면 외국 지휘자를 불러오는데, 그런 인식을 바꿔놓고 싶어요. 외국처럼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우리나라만의 색깔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데 한몫하고 싶습니다.”
김봉미씨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커피 같은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되려고 한다.

“커피는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고 즐기는 것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번 맛을 들이면 카페인 때문에 마시지 않을 수 없잖아요. 음악도 밥 먹고 으레 한 잔 생각나는 커피처럼 그렇게 접하고, 또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에는 그에 맞게 들을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음악은 삶이라는 두사람. 이들 부부의 음악에는 어떤 선율들이 담기게 될까. 그 음악의 마지막 비브라토가 멈출 때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될지도 모겠다.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불후의 명곡이 나올 듯한 좋은 예감이 든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 장소 협찬 / 갤러리카페 모차르트(02-744-3587, www.gallerycafemoz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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