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딴 인생 최고의 순간, 그에게 먼저 프러포즈했어요”
양궁선수 주현정과 계동현이 지난 11월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가 됐다. 직접 만나본 두 사람은 모두가 숨죽이는 고요한 긴장 속에서 한 발 한 발 활시위를 당기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중한 그 남자와 애교 많은 그 여자의 행복한 러브 스토리를 공개한다.
양궁계 공식 커플, 결혼 후 못다 한 연애의 한을 풀다
사실 양궁계에서는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공인된 커플이었기 때문에 다소 ‘급하게’ 결정된 결혼 소식에도 대부분 자연스레 ‘국내 최초 양궁 부부’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하다.
“저희를 아는 웬만한 사람들은 결혼 계획을 이미 알고 있어선지 놀라지 않던데요? 이렇게 빨리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겠지만요. 원래는 올 봄에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이왕 할 거면 좋은 날에 하자고 하셔서요.
2008년이 저희 둘에게도 좋은 해이고, 22일이 결혼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뒤늦게 예식장을 알아봤더니 그날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어렵게 잡았어요.”
모두의 축복 속에 치러진 행복한 결혼식 후, 두 사람은 발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둘 다 운동을 하는지라 연애하는 동안 여행은커녕 오랜 시간 같이 있는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6박 7일의 달콤한 시간은 무척이나 특별했을 터. 올림픽-전국체전-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일정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오랜만에 긴장에서 놓여나 둘만의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었다.
“결혼식 10여 일 전까지 계속 선발전이 있어서 준비도 제대로 못했어요. 부모님들께서 고생하셨죠 뭐. 부랴부랴 웨딩 사진 찍고, 가구도 고르고, 청첩장 돌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알콩달콩 미래를 만들어나갈 부부의 보금자리는 용인 쪽에 마련했다. 결혼을 하더라도 남편은 소속 팀이 인천에, 아내는 용인에 있는 데다 여자 팀은 계속 합숙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주말에나 겨우 신혼집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처음에는 시댁에 들어가 부모님과 함께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부모님들께서 남들처럼 연애를 많이 하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연애하는 기분으로 둘이서 살아보라고 집을 알아봐주셨어요. 저 힘들지 말라고 여자 숙소 가까운 곳에 마련해주신 거 있죠? 연애하면서 아기자기한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제 같이 음식도 해먹고 커플 잠옷도 입고 둘이서 늦잠도 자보고 싶어요. 무척 기대돼요.”
그동안 두 사람 모두 소속팀 합숙은 물론 전지훈련에 대표팀 선발까지 양궁인으로 달려오다 보니 여느 젊은 커플처럼 데이트를 많이 즐기지는 못했다. 대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전하며 사랑을 키워왔다고 한다.
“사귀면서 같이 영화 본 것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특히 지난해는 올림픽 때문에 쉬는 날이 없었어요. 끝나고 나서도 인터뷰며 행사에, 전국체전이랑 평가전이 있어서 정신없이 바빴어요. 하도 얼굴을 못 보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영상통화가 가능한 휴대폰으로 바꿨어요. 처음에는 잘 보이려고 ‘얼짱 각도’로 통화했는데, 요즘엔 화장실에서도 받고 그래요(웃음).”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더라도 진심은 전화선을 따라 전해졌나 보다. 주현정 선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동현씨가 든든하게 느껴졌고, 계동현 선수도 밝은 현정씨의 뒷모습까지 품어주고 싶었단다. 보지 못하는 애틋함이 서로에 대한 배려로 이어져 두 사람을 더욱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원래 주현정 선수의 이상형은 계동현 선수 같은 남자는 아니었다. 남동생이 있어서인지 연하는 무조건 ‘싫다’고 생각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 남자다운 듬직한 스타일을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딱’ 계동현 선수가 그녀가 생각하는 최고의 남자다.
“저보다 어리지만 굉장히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어요. 마음이 넓어서 저를 잘 보듬어주기도 하고요. 솔직히 올림픽 나가기 전까지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남들 몰래 많이 울기도 하면서 그 예민함과 힘든 것들을 전부 동현씨한테 풀었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동현씨한테 다 쏟아붓고 또 의지했구나 싶더라고요.”
게다가 양궁계에 소문이 자자할 만큼 싹싹하고 애교 있는 동현씨의 성격은 현정씨의 이상형을 ‘부드럽고 귀여운 남자’로 바꾸어놨단다. 이제는 남자 후배들에게 군기 잡던 씩씩한 현정씨가 동현씨에게 배운 애교를 두 배, 세 배로 되돌려주고 있다는 후문이다.
“저는 운동을 해서인지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여자는 좀 싫더라고요. 현정씨는 활달하고 밝으면서도 천생 ‘여자 같은’ 부분도 있고 그래요. 계속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더라구요. 정말 볼수록 예쁜 거예요. 연하를 싫어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저는 진심으로 좋아했으니까 개의치 않고 일부러 더 연락하고 대시했죠.”
같은 운동을 하다 보니 시합 때마다 만나며 어릴적부터 알고 지냈지만, 부부가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동현씨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아내 소속팀에 저랑 친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씩 커지면서 그 친구를 자주 만나 도움을 구했는데, 아내는 제가 그 친구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거예요. 오히려 ‘두 사람을 도와주겠다’며 나섰지 뭐예요. 처음엔 제가 진심을 이야기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좋은 후배가 슬쩍슬쩍 열어 보인 마음이 처음에는 마냥 장난처럼 느껴졌지만, 주현정 선수의 마음속에도 계동현 선수가 조금씩 자리하기 시작했다. 평소 계동현 선수는 잘생긴 외모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 선후배들은 물론 선생님들께서도 틈만 나면 칭찬을 하는 등 평판이 좋았단다.
“이성의 마음은 아니었어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죠. 하지만 저는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니 누군가를 만나면 그냥 가볍게 연애하기보다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었고, 동현씨는 막 사회에 첫발을 들인 상태라 만나면 동현씨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담 주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더니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을 좀 달라’고 하더니 일주일쯤 지나서 저를 찾아왔어요. 제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요.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우선 서로 조금씩 알아가자고 해서 정식으로 사귀기까지는 두 달이 넘게 걸렸어요.”
계동현 선수가 주현정 선수를 마음으로 열심히 쫓아다니는 동안, 주현정 선수의 마음속 그의 자리도 점점 커져만 갔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외국으로 시합을 다니고, 치열한 대표팀 선발을 치러내야 하는 주현정 선수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 사격을 해준 이가 바로 계동현 선수다. 언제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아끼지 않는 그였다.
“그동안 계속 실패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됐었어요. 선발되기까지는 물론이고, 되고 나서도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죠. 예민해져서 동현씨한테 자꾸만 화내고 짜증 부리고 했는데도 묵묵히 그걸 다 받아주더라고요. 힘들 때도 늘 기댈 수 있게 해주니까 마음이 끌린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누구보다 서로의 생활이나 어려움, 고민 등을 잘 알 수 있어서 좋단다. 어쩌다 불만이 생겨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풀어가려 하는 신랑이 무척이나 고맙고 좋다고 주현정 선수는 말한다.
선수로서 자신을 존중해주는
그에게 더욱 반해 먼저 프러포즈한 아내
“메달을 따고 베이징까지 응원 오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니 신랑이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날 도핑테스트다, 인터뷰다 해서 숙소에 늦게 들어갔어요. 그동안 전화를 기다렸을 텐데, 하고 싶은 말들을 쭉 문자로 남겨놨더라고요.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 문자들을 보고 있으니까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전화해서 ‘축하한다’는 신랑한테 ‘결혼하자’고 했더니, 망설이면서 바로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덜컹 했죠.”
로맨틱한 프러포즈는커녕 자신이 먼저 결혼하자고 했는데도 흔쾌히 대답을 하지 않으니, 주현정 선수의 속이 잠깐이나마 타들어갔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계동현 선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고.
“남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요. 사실 올림픽 전에 제가 먼저 프러포즈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워낙 큰 대회의 주인공이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왔는지 아니까 부담이 되거나 신경 쓰일까봐 참았죠. 잘하고 와서 해도 늦지 않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뜻하지도 않게 메달 딴 날 먼저 결혼하자고 하니까, 누구든 그 상황에서 놀라지 않았겠어요?”
그녀의 기습적인 제안에 동현씨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과연 자신이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돌아보게 됐다고. 그리고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에게 결혼이 혹시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워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변 분들이 아내한테 결혼하고 운동을 계속할지 물어요.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지만 양궁은, 특히 여자 선수는 수명이 짧아요. 가정이 생기면 운동에 소홀해질까봐 우려하기도 하고요. 지금 아내는 정말 잘하고 있잖아요. 아직 더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을 텐데 결혼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보다 더 ‘양궁 선수 주현정’으로서의 꿈과 노력을 인정해주는 계동현 선수의 마음을 안 순간, 주현정 선수는 그가 더욱더 좋아지면서 결혼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그와 ‘함께’ 하면서 선수로서도 더 많은 것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부부는 2세는 둘이나 셋 정도 낳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딸 한 명, 아들 한 명이면 좋겠고 능력만 된다면 하나 더 낳고 싶단다. 두 사람 다 하고 싶던 양궁을 하며 살아온 만큼 자녀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생각이다.
“저는 운동도 잘하고 싶지만 그만큼 가정에도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해요. 서른이 되기 전에는 첫째를 낳고 싶고요. 신랑이랑 제가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서 최근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더니 살이 많이 쪘거든요. 주변에서는 ‘혹시?’ 하며 의심하더라구요(웃음).”
런던 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해 좋은 성적 거두는 게 목표
세상 어느 분야나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냐마는 화살 하나에 정신을 집중해 과녁을 뚫는 양궁의 세계는 무척이나 치열하고도 냉정하다. 선수들은 자기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연습 때 기록을 안 재고 활을 쏘면 다들 잘해요. 그만큼 정신적인 부담감을 다스리는 능력이 요구되는 운동이에요. 스트레스며 정서적인 불안감이 크죠. 두 사람이 함께라면 혼자만의 싸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궁 커플의 첫 번째 목표는 결혼 전이나 후나 달라지지 않는다. 2012년에 열리는 런던 올림픽에 두 사람이 국가대표로 나란히 출전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 과녁을 위해 각자의 팀에서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다소 소홀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배려하고 이해하려 한다. 또 내년에 있을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으면 한다. 그동안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슬럼프도 종종 겪은 만큼 앞으로도 탄탄대로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에너지를 합쳐 헤쳐 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힘을 내본다.
남자, 여자 시합이 주로 같은 날에 치러지는 양궁. 선수로서 상대방의 선전이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남편이, 그리고 아내가 자신보다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부부가 쏘는 화살에 온 국민이 환호하며 힘을 낸다는 소식이 스포츠 뉴스를 장식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