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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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스트 곽정은 임신 중 대상포진과 임신성 당뇨를 앓았다. 이로 인해 건강을 잃었고, 청력마저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다. 늦은 결혼에 어렵게 가진 귀한 아이였다. 일단 산모부터 살고 보자는 가족의 만류에도 그녀는 최소한의 치료에 의지한 채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9개월여을 견뎠다. 극단의 고통과 절망, 기쁨 등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한 곽정의 지난 2년의 시간을 전한다.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지난 2008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하프 페스티벌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날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 하피스트 곽정(37)으로, 아이와 함께 페스티벌 현장에 등장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녀는 음악애호가 사이에선 이미 한류스타다.

그녀는 2004년 ‘하피스트 K’라는 이름으로 국내외에서 파격적인 전자 하프 음반을 발매했는데, 이 음반이 중국과 홍콩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아이를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다
홍콩 팬들을 들썩이게 했던 곽정의 아들 재준이는 그녀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어떤 엄마가 자식에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마는, 그녀의 특별한 임신과 출산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듯하다.

“늦은 결혼 후에 어렵게 가진 아이였어요. 결혼 후 1년 8개월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불임인 줄 알았죠. 이미 예정된 공연만 마치면 불임클리닉에 다니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정확히 마지막 공연 5일 후에 임신 사실을 알았어요.”

불임인 줄 알았던 그녀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쁨이 컸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임신한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혹여나 아이가 잘못될까 싶어 계단 한 번 오르지 않았고, 12주가 지나서야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고통은 입덧으로부터 찾아왔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을 했어요. 임신 4주가 되자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냄새도 못 맡겠더라고요. 한국 음식 중에 마늘이 안 들어간 음식은 거의 없었고 스테이크나 샐러드 등 양식도 마찬가지였어요. 3, 4개월 동안은 하루에 누룽지 한 숟가락만 먹어도 많이 먹는 거였죠. 아기를 가지면 살이 찌는데 저는 오히려 체중이 너무 빠져서 의사와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이뿐만이 아니었다. 먹지 못해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을 무렵, 임신 6개월째에 대상포진이 간으로 왔고, 8개월이 되니 귀까지 번졌다. 귀로 온 대상포진이 급기야 얼굴로 번지면서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해졌다.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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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맞은 사람 같았어요. 얼굴이 무너졌죠. 말도 제대로 못했고 밥을 먹으면 절반은 흘렸어요. 의사는 당장 약을 쓰지 않으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게다가 귀도 멀 수 있다고 했죠. 제가 베토벤도 아니고, 연주자에게 귀가 먼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죠.”

당시 태아는 엄마 배 속에서 폐가 생성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만약 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다면 태아의 폐가 생기다 말 수 있는 상황. 그렇게 되면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호흡이 어려울 수 있었다. 아기를 택하느냐, 산모의 건강을 택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남편은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치료를 하자고 했어요. 만일 아기가 잘못되어 하루에 천만 원씩 들어가는 약을 써야 한다고 해도 제 건강이 먼저라고 했죠. 가족들도 아기를 낳아 인큐베이터에 의지하며 치료를 하자고 했어요. 저도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만큼은 지켜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아무리 의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태아는 엄마 배 속에서 자라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에 다 거부했죠.”

곽정의 뜻에 따라 최소한의 처방만이 내려졌다. 다행히 남편과 오빠까지 대대로 의사 집안인 덕분에 전 세계로 수소문해서 태아에게 해가 가지 않는 약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민간요법에 의지했다. 민간요법 중에서 특히 기 치료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신성 당뇨가 또 그녀를 괴롭혔다.

“하루에 인슐린을 네 번이나 맞아야 했어요. 예전에는 바늘을 굉장히 무서워해서 주사 맞기 싫어했거든요. 근데 인슐린 주사를 맞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아무런 느낌 없이 제가 주사를 놓게 되더라고요. 의사인 남편보다 제가 더 잘 놓았죠.”

고통 속에서 보낸 10개월 후, 곽정은 출산 예정일 하루 전 제왕절개로 지금의 아들 재준이를 얻었다. 양수검사에서 기형아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와 출산 전까지 마음 졸였지만,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체중 4.95kg에 신장 57.5cm로 우량아였다.


사랑하는 아들, 흠집 하나 없이 기르고 싶어
출산 전 미리 신생아 중환자실까지 둘러봤던 터였다. 엄마가 임신성 당뇨가 있으면 아이의 폐나 장에 이상이 있을 수 있고, 저혈당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가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러나 엄마로서 가장 먼저 주고 싶었던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재준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 그녀는 유축기와 씨름해야 했다.

“젖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유축기로 짜도 많이 나와야 100ml였어요. 모유가 나오는 양에 비해 재준이는 먹성이 좋았어요. 그러니 모유가 얼마나 모자랐겠어요.”

젖이 잘 돌 수 있도록 곽정은 뭐든지 했다. 돼지 족발을 삶아서 먹고, 팥물도 수시로 먹었다. 그녀는 평소 보쌈도 안 먹고, 팥을 싫어해 팥빙수도 안 먹는 사람이었다.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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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안 나와도 한 방울이라도 꼭 먹이려고 했어요. 유축기는 여러 나라 제품을 다 써봤지만 국산 유축기가 가장 좋았어요. 팥물은 효과가 있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모유 수유를 위해 이것저것 먹었더니 살이 엄청나게 쪘어요.”

엄마가 되기 이전에는 하피스트인 그녀에게 손이 가장 중요했다. 얼굴에도 못 바르는 값비싼 영양크림을 손에는 듬뿍 바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영양크림을 바르기는커녕,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다.

“청결이 가장 중요해요. 일단 항균 비누로 손을 씻고, 소독제를 손에 바른 다음 아이를 안아요. 덕분에 저나 남편은 손이 모두 거칠어졌어요. 크림은 연습할 때만 바르죠. 요즘에는 조금 나아졌는데, 예전에는 얼굴이 땅겨도 로션조차 바르지 않았어요. 아이에게 자극을 줄 수 있으니까요. 아이와 외출할 때는 목걸이나 반지는 절대 착용하지 않고 머리도 단정하게 묶죠. 비즈가 들어간 옷은 절대 안 입고, 100% 면으로 된 옷만 입는 바람에 항상 트레이닝복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살았어요.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저보고 도우미 아줌마 같다고 했겠어요(웃음).”

남들에게는 유난스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을 어렵게 얻은 탓에 조그만 흠집 하나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느 엄마에 비해 몇 배 더 강했다. 엄마의 노력 덕분인지 재준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이제 16개월 된 아이는 의사가 “성장 그래프를 따로 만들어야겠다”고 할 만큼 또래보다 발육 상태가 좋아 서너 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곽정은 재준이를 임신했을 때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브람스의 자장가를 연주하곤 했다. 음악은 하프뿐만 아니라 피아노부터 타악기 연주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브람스 자장가를 들려주면 제일 좋아하고, 또래 아이들과 달리 음악을 들을 때 집중하곤 한다.

“재준이는 ‘엄마’, ‘아빠’와 동시에 ‘하프’라는 말을 했어요. 어린이 하프를 선물했는데, 정말 잘 튕겨요. 게다가 음악을 듣는 귀도 탁월해요. 연주를 잘하는 학생의 레슨을 하면 밥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 보는데, 잘 못하는 학생이 연주를 하면 딴청을 피우거나 나가버리죠. 그래서 제 학생들은 재준이를 제일 무서워해요. 그런 걸 보면 음악 태교가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된 후 음악이 더 부드러워져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더구나 어머니도 그녀를 임신했을 때 임신중독증에 걸려 산모와 태아 모두 죽을 고비를 넘겼고, 결국 그녀는 팔삭둥이로 세상 빛을 봤다. 클래식 하피스트로, 또 전자 하피스트로 언제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음악 세계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화려하고 튀고 특이한 것들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전자 하프 음반이나 국내 초연곡 연주 등 강한 모습으로 많이 비춰졌죠. 아이를 낳고 나서는 평범하고 심플한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어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지만, 느린 곡이나 슬픈 느낌의 곡을 연주할 때 예전보다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짧은 기간 내에 어려움과 슬픔, 기쁨 등 인생의 업 앤드 다운을 겪어서 그런지 단순히 음악이 아닌 속마음이 더 전달되는 것 같아요.”

곽정의 인생과 음악의 변화는 새로 발매하는 음반 「Angelic Moment」와 5월 31일(LG아트센터, 오후 2시 30분) ‘Tanks to’라는 콘셉트로 마련되는 무대에 고스란히 담긴다. 음반에는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과 ‘어린이를 위한 음악 앨범’, 차이코프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 등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음악이 담겼다. 음반에 담긴 곡을 기본으로 연주할 공연에서는 두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태어나 가족이 되는 모습을 각각 음악으로 표현한다.

죽음의 고비 넘기며 임신과 출산한 하피스트 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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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에요.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곡들만이 아니라 작곡가가 가족애를 표현한 곡들을 골랐죠. 클래식 하프가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 천상의 악기의 모습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성당에서 경건한 느낌으로 녹음했어요. 그동안 제가 냈던 음반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하프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클래식과 전자 하프 공연을 하는 것은 물론 하프를 쉽게 접하도록 일반인을 위한 하프 스쿨도 열었다.

“하프에 대한 선입견이 많아요. ‘재벌집 아이만 한다’, ‘어린아이는 못하고 여자들만 하는 악기다’, ‘집 한 채 값이다’ 등. 최고가 악기를 비교하면 하프가 플루트보다 저렴해요. 일반인을 위한 하프 강좌 ‘하피스쿨’에는 네 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참여가 가능해요. 하프는 맨손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두뇌 계발과 어른들의 치매 예방에도 좋아요.”

곽정은 2년간 겪은 고통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의외로 담담했다. 그로 인해 얻은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일까. 음악, 가족애, 인생관… 엄마가 된 곽정은 이전보다 더 위대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Stage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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