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대신 본인에게 꼭맞는 공부법으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어요”
옥스퍼드대학 출판부 한국 지사가 주최한 ‘제8회 옥스퍼드 영어 독후감 쓰기 대회’에 참가한 김다영양은 학원의 도움이나 특별한 준비 없이 평소처럼 작성해낸 독후감으로 대상을 받았다. 동생 세진이 또한 같은 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했다. 총 3천여 명의 학생이 도전한 대회에서 자매가 나란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자매를 영어의 세계로 이끈 엄마의 영어 교육법에 대해 들어봤다.
다영이(13)와 세진이(9)의 집에는 어느 집에나 놓여 있는 TV가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빽빽하게 책이 꽂힌 책장이다. 거실은 물론 현관 근처, 방과 주방, 화장실 앞에도 책들이 놓여 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부방은 그야말로 웬만한 도서관 못지않다. 앉아서 책을 읽기 좋을 만한 널찍한 테이블과 책상 외에는 벽면이 모두 책이다.
“좀 어수선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일부러 책을 한 곳에 모아두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꺼내 읽은 책도 굳이 책장에 넣지 않고 그대로 두고, 이렇게 집 안 곳곳에 손만 뻗으면 책을 집을 수 있도록 했어요. 두 아이 모두 화장실 갈 때도 책을 가져갈 정도로 책읽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읽고 싶으면 어디에서나 털썩 앉아 볼 수 있도록 책을 던져놔요.”
독서가 하나의 놀이이자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책 읽는 일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습관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다영이와 세진이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기까지는 엄마 박은정씨의 꾸준한 노력과 기다림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틈만 나면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줬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지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그림 책이나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책을 펼쳐두고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종일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읽어준 적도 있다. 저녁이면 목이 쉬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목이 아프고 힘들어도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눈을 빛내는 아이를 보면서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책을 읽어줬어요. 아이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고 하잖아요? 정서적으로도 아이와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어 좋더라고요.”
처음에는 먼저 한글로 된 책만 읽어줬다. 우리말을 제대로 알아야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도 쉽게 습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엄마의 욕심에 성급하게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해력이나 응용력이 떨어져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특히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익히도록 신경 썼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책읽기를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이 됐던 것도 성급하게 영어책을 권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독후감과 일기로 생각과 느낌을 정리
영어책에 흥미를 붙이고 나서는 책을 읽은 뒤 꾸준히 독후감을 쓰며 정리를 해나갔다. 간단한 줄거리나 기억에 남는 문장 등을 기록하고 반드시 자신의 생각도 덧붙이게 했다. 문법에 크게 연연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표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덕분에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됐다. 글을 쓰기 위해 꼼꼼히 문장을 읽게 되고 사전도 찾아보는 등의 공부를 하게 되니 영어 문법 실력은 물론 어휘력도 풍부해졌다. 다만, 매번 독후감을 쓰는 것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어 10권을 읽으면 3권 정도 쓰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영어 일기 쓰기도 병행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반드시 영어로 일기를 썼는데, 처음에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영어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몰라서 연필만 붙잡고 있기도 했다. 방향을 못 잡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옆에서 적극적으로 조언을 했다.
“영어 공부에 일기나 독후감 쓰기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막막하잖아요. 엄마가 무조건 하라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일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지도를 했어요. 옆에서 ‘쓸 거리’나 질문을 던져주면서 대화를 나누면 쉽게 풀어나갈 수 있어요.”
일기를 쓸 때 주로 활용한 것은 바로 신문. 일상생활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금방 지겨워한다. 그래서 박은정씨는 먼저 신문을 읽고 그 날의 이슈나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내용을 스크랩해서 보여준 뒤 그에 대한 생각을 써보게 했다.
“특히 영어 신문을 활용하면 좋아요. 기사를 요약해 적기도 하고 핵심적인 단어를 골라 문장을 새로 만들어보게 할 수도 있어요.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의견을 꼭 써보라고 하죠. 일기를 쓸 때도 세진이가 ‘오늘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았어’라고 한다면, 놀이터에 대한 느낌을 쓰라고 하거나 ‘네가 그리는 멋진 놀이터는 어떤 모습인지 써볼까?’ 하는 식으로 주제를 던져주죠.”
요즘에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교재가 많이 나오지만 시각적으로 너무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은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엄마 박은정씨의 생각이다. 비디오 등은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영어 외에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기는 것 같아 테이프나 CD만 틀어줬다. 영어 동요 테이프, 챕터 북에 포함된 이야기 CD 등이 다영이와 세진이의 ‘베스트’ 교재였다.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이동하는 차 안에서나 잠들기 전에 CD를 틀어놓고 귀에 영어가 와 닿도록 했다. 요즘도 세진이는 영어 동화 CD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내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 기다려줄 것
다영이가 4학년이 됐을 때, 박은정씨도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를 가르쳐야 할 것 같아 다영이를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매일 내주는 엄청난 양의 숙제에 허덕이는 다영이를 보면서 ‘이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3개월 만에 그만두게 했다. 그 외에는 새로운 책을 계속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리딩 교재가 나오는 학습지를 잠깐 한 것이 전부였다.
“왜 아이를 놀게 놔두느냐”며 박은정씨에게 학원이나 학습지를 시키라고 권유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박은정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각하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 진정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찾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공부를 하는 것이 최선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다영이는 성실한 편이라 한번 습관을 잡아주면 알아서 잘해요. 뭔가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시간을 많이 마련해주려고 해요. 세진이는 몰입을 잘해요. 공부도 나눠서 하기보다 한 번에 집중해서 강도 높게 할 때 효과적이더라고요. 만들기와 같이 창의적인 활동도 좋아하고요. 아이들의 특성은 누구보다 엄마가 제일 잘 알잖아요. 저도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공부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 교육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세미나도 다니면서 ‘좋다는’ 정보를 얻어요. 하지만 반드시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지’를 따져본 뒤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준다는 원칙을 지키려 해요.”
이번에 상을 받은 영어 독후감 대회도 엄마가 ‘시킨’ 것이 아닌 아이들이 먼저 준비해 도전한 것이었다. 책을 빌리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영어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대회 개최 소식을 알게 됐고 두 아이가 하루 종일 머리를 맞대고 앉아 독후감을 완성해낸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엄마나 선생님의 일방적인 지도보다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참여할 때 느리지만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아이들한테 일방적으로 시키기보다는 엄마 아빠가 함께 시간을 가지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가 책을 읽기 싫어할 때는 다그치지 말고 그냥 엄마부터 평소에 꾸준히 책을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너무 휩쓸리지 마시고요.”
올해 3월부터 다영이는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원에서 내준 단어 외우기에 바쁜 다영이를 보며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영이가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원해서 보내고 있다. 중학교 영어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에 엄마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한 다영이는 꾸준히 ‘즐거운’ 영어 공부를 해 나갈 생각이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책도 더 많이 읽고 기초부터 튼튼한 영어 실력을 쌓고 싶다고 말한다. 세진이 또한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며 거든다. 책과 친구가 된 다영이와 세진이는 오늘도 책 속에서 즐겁게 영어를 배운다.
TIP “지금부터 책 읽자”라고 하면서 책상 앞에 아이를 앉히는 것보다 아이가 원하는 곳에서 자연스레 책을 읽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을 한 곳에 모아두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수시로 책을 집어들 수 있도록 부엌, 거실, 방 등 집 안 곳곳에 놔둔다. ● 규칙적으로 영어 일기 쓰기 다영이와 세진이는 가급적 매일, 바쁘고 힘이 들 때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빠지지 않고 영어 일기를 썼다. 글의 길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짧더라도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또, 했던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중심으로 일기를 썼다. 일기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 때는 엄마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주제를 정해주거나 떠오르는 단어 등을 써보며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정리했다. ● 책과 신문 100% 활용 영어 신문을 읽으며 중요한 문장을 옮겨 써보는 것도 영어 작문과 문법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책 또한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 책과 함께 나오는 CD를 들으며 한 문장씩 받아써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자매가 서로, 혹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서 받아쓰기를 해봐도 좋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