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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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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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심 서방~’이라고 부르며 깨어나실 것 같아요.
손자 손녀들이 뛰어노는 가운데 소천하시길...”


지난 6월 23일, 대한민국은 ‘국내 첫 존엄사 시행’으로 떠들썩했다.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방식의 국내 첫 존엄사였다. 김 할머니는 현재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하며 한 달 가까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병상에서의 1년 4개월 버거운 시간을 보낸 가족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중이다. 김 할머니의 병실에서 맏사위 심치성씨를 만났다.


[Well_dying]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Well_dying]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장모님의 뜻
‘국내 첫 존엄사 시행’이라는 이름으로 김 할머니(77)의 호흡기 제거가 이루어진 지 23일째, 병실 주변은 한 차례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첫 시행’이라는 이름 아래 뜨거웠던 취재 열기도 잠잠해지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김 할머니만큼 가족과 병원도 한결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병실에서 가족 예배를 마치고 나온 맏사위 심치성씨가 병실 안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김 할머니는 주무시는 듯 고른 숨을 내쉬고 계셨다.

“두세 번 정도 5~10초간 무호흡 증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곧바로 회복되셨어요. 걱정했던 폐렴이나 욕창도 생기지 않았고요. 유동식도 튜브를 통해 공급받고 현재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김 할머니의 호흡기 제거는 작년 2월, 할머니의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뒤 1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작년 2월 16일, 토요일에 입원을 하셨어요. 건강하시던 장모님이 그 무렵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 다녀오시고 감기 증상이 있었어요. 동네 병원에서 약을 사서 드셨는데 혹시 폐렴일지도 모르니까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죠. 세브란스병원에 왔더니 입원을 하고 폐암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토요일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일요일에 식구들이 다 같이 와서 뵈었어요. 장모님도 평소와 같은 상태였고 말을 들어보니 간단한 검사라고 해서 ‘월요일 검사 끝나고 봬야지’ 하고 돌아갔는데 월요일 오전에 조직검사를 하러 들어간 후에 의식을 잃으신 거예요. 중환자실로 옮기고 처음에는 자가 호흡을 하셨는데 조금 지나서 없어졌다고 해서 호흡기를 달았어요. 그 뒤로 1년 4개월 동안 그 상태였어요.”

병원에서 뇌사 판정 이야기가 나온 것은 3월이었다. 중환자실 주치의가 윤리위원회를 열어주겠다며 가족의 의견을 물었다. 검사받으러 들어가시며 둘째 딸에게 “이따 보자”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였다. 가족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데 장모님이 갑자기 그렇게 되셨으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자식이 3녀 1남인데 모두 모여 일주일 내내 기도를 했어요. 그래도 답을 얻을 수가 없었고 그동안 장모님이 하신 말씀을 천천히 되짚어봤죠. 장인어른이 2005년에 폐렴 증세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신 뒤 돌아가셨어요. 그때 막내처남이 라스베이거스 전자쇼 때문에 출장을 갔는데 처남이 돌아오기 3, 4일 전에 장인어른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셨어요.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면 막내처남이 돌아올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실 수 있다며 인공호흡기를 끼우겠냐고 물어봤는데 장모님이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어요. ‘호흡은 하나님의 것이지 기계로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하시면서요. 앞으로도 혹시 그런 일이 있으면 본인에게도 절대로 하지 말라고 딸들에게 말씀하셨던 게 생각 나 호흡기만 제거하자고 중지를 모았죠. 그렇게 해서 병원에 뜻을 전달했는데 윤리위원회를 열면 호흡기뿐만 아니라 모든 공급을 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쯤 저희가 병원을 상대로 낸 의료과실 소장이 날아오면서 결국 윤리위원회를 열지 못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게 된 거예요.”


환자가 병원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풍토 개선돼야
[Well_dying]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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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소송은 지난해 11월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가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환자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판결이었다. 할머니를 본인의 뜻대로 모실 수 있게 돼 가족은 마음의 짐을 던 기분이었지만 1년 넘게 진행된, 그것도 ‘국내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소송으로 인해 가족들은 마음의 상처가 컸다.

“소송 이야기가 매스컴에 흘러들어가면서 ‘국내 첫 존엄사 시행’으로 화제가 됐어요. 사실 저희는 ‘존엄사’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소 이름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에 대한 소송’이었는데 대법원 판례까지 나온 것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고 예민한 문제라 관심을 많이 가지시더라고요. 인터넷에서 제 평생 들어보지 못한 욕설과 악플까지 받아봤어요. 저희 가족의 개인적인 문제가 존엄사, 안락사 문제와 연결되면서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게 부담스럽지만 장모님과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번 시행을 두고 언론에서는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존엄사’와 ‘연명치료 중단’의 의미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자연사, 안락사,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의사조력 자살 등 많은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죽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한국사회지만 죽음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저도 그전에는 잘 몰랐어요.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보니까 중환자실에 있는 많은 분이 회복의 희망 없이 마음만 졸이고 계시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족들은 더욱더 그 고통이 크죠. 병원비 때문에 집도 팔고, 전세를 월세로 옮기고 그러세요. 소송이 워낙 힘들고 사람들의 시선도 따갑다보니 소송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가족 중에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의료서비스도 계약입니다. 병원 앞에선 언제나 환자가 약자고 병원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라가는 현재의 풍토로는 병원도 환자도 나아질 수가 없어요.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실수를 할 수 있고요. 적어도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김 할머니의 가족은 현재, 폐암 조직검사 도중 출혈을 일으킨 것에 대해 병원에 책임을 묻고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 중이다. 당시 검사를 담당한 의사에 대해서 형사소송을 제기해둔 상태다. 인공호흡기 제거 후 곧바로 자발호흡이 돌아온 것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 내용에 과잉진료 부분도 추가했다. 병원이라는 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맞서기에 버거운 싸움이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거나 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

“이제까지 병원비 중에 2억원 정도를 의료보험공단에서 지원을 받았어요. 저희가 소를 취하면 이 돈은 병원이 갖게 됩니다. 소송에서 저희가 이기면 병원이 돈을 공단에 반납해야 하고요. 잘잘못을 가려 병원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돈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할 수 없어요. 소송을 1년 이상 하고 있는데 병원은 기업이기 때문에 소송에서 져도 개인만큼 타격이 크지 않아요. 개인의 경우는 가족 전체가 그 일에 매달려야 해요. 그에 관한 손해보상도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에요.”

항상 정갈하셨던 장모님, 뜻대로 모실 수 있게 돼 다행
인터뷰 중간, 간호사가 할머니의 자세를 바꿔드리기 위해 병실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낮게 코를 고는 듯, 평안한 잠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Well_dying]연명치료 중단 시행된 김할머니 맏사위 심치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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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아침, 호흡기가 제거되고 장모님의 모든 바이탈 수치가 내려가는 걸 보고 ‘아, 이제 정말 가시나 보다’ 하고 비통한 마음이었어요. 아내와 처제들이 많이 울었죠.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고 천국에 가서 아버지도 만나고 행복하게 계시라는 말을 전하고 발도 주물러드리고 그랬어요. 임종예배가 끝나고 호흡기 빼는 순간에 딸들은 다 나가 있었어요. 혹시 바로 돌아가시면 충격이 클까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떼는 순간 일시적으로 호흡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차츰 안정을 되찾으시더라고요. 나가 있던 가족들이 다시 들어오고, 난리가 났죠.”

호흡기 제거 후 30분~1시간 사이에 호흡을 멈출 것이라던 병원 측의 예상과는 달리 자가 호흡을 시작한 할머니는 인터뷰가 있었던 7월 15일까지 20일 넘게 본인의 힘으로 호흡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저희는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뭘 더 보여주실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장모님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벌떡 일어나셔서 ‘심 서방~’ 하고 부르실 것 같아요. 매 순간순간이 기적이에요. 무엇보다 호흡기를 떼고 중환자실에서 1인실로 옮겨오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해요.”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면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아이들 면회도 안 돼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를 무척 보고 싶어 했었다. 기회가 돼 중환자실에 들어가 할머니를 본 아이들의 입에서 첫 번째로 나온 말은 “무섭다”였다.

장모님은 언제나 단아하고 단정한 분이셨다. 맏사위인 그도 그동안 장모님이 짧은 치마나 짧은 소매 옷을 입으신 걸 보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팔 왼쪽에 작은 상처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남에게 보이길 꺼리신 거였다. 그렇게 정갈하셨던 분이었는데 손자들이 당신을 무섭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가 온몸에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까 무서웠나 봐요. 호흡기를 끼고 계신 동안 안색도 안 좋고 치아도 다 빠지고, 입술도 상했거든요. 호흡기를 떼고 1인실로 옮겨오신 뒤에는 예전보다 혈색도 좋아지고 표정도 좋아지셨어요. 아이들이 할머니를 보고는 다 나으셨냐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24시간 내내 병실을 지키던 가족들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밤 당번은 서지 않기로 했고 각자 편한 시간에 병실에 들러 1~2시간씩 할머니를 뵙고 간다. 주말에는 손자 손녀들이 와 할머니 곁에서 뛰어논다. 정말 집에 있는 것처럼 온 가족이 웃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장모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저도 5년 전에 이 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았어요. 모두 가망 없다고 한 췌장암 3기에 병원에서 살아 나가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구나 하는 걸 알았죠. 하나님이 기적을 내리셔서 장모님이 깨어나신다면 더 바랄 게 없죠.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소천하신다고 하더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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