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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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이에게 가장 좋은 악기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예요.
ㆍ하루 5분간 책 읽어주는 시간이 아이 인생의 밑거름이 됩니다”

푸근한 미소와 ‘허허허’ 웃음소리가 기분 좋은 그는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놀이터의 주인이기도 하다. 한국 동화로 지구촌 동심을 사로잡은 그,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을 만났다.

한국 동화, 세계 출판시장의 벽을 넘다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9월의 어느 날, 김동휘 사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 파주 출판단지 내 탄탄스토리하우스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사이좋게 자리를 잡은 건물들은 햇살 아래 조용히 숨쉬고 있었고 바람결엔 책 냄새가 묻어났다. 책을 읽기에도, 책을 만들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김동휘 사장(55)은 이곳에서 영유아를 위한 동화책을 만들고 있다.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국내에서 동화책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출판계의 ‘돈키호테’다.

“한창 창작동화 붐이 일던 1990년대 후반에 국내에 번역 소개할 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해외에서 열린 북페어들을 찾아다녔어요. 여러 외국 출판사를 만났는데 자신들의 책은 한국 수준에 맞지 않다는 식으로 한국을 무시하더라고요. 그들에게 ‘언젠가 꼭 우리 책을 보여주겠다’라는 각오로 수출을 계획하게 됐죠. 2003년 이탈리아 볼로냐를 시작으로 방콕, 런던, 대만, 프랑크푸르트,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멕시코의 과달라하라까지 줄기차게 도서전에 참가했어요.”

처음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 책을 수출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대형 출판사들조차 외국과 경쟁하기보다 국내 판매에 주력해오던 상황에서 세계시장에 한국의 동화책은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3년 반 동안 한 건의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했을 정도로 세계 출판시장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동화책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해외 도서전에 나갈 때마다 책에 들어 있는 그림을 이용해 한국적인 냄새가 묻어나는 홍보전단지를 만들었는데 하루 만에 금방 동이 나더라고요. 한국 동화책도 충분히 세계에 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아들었죠.”

그림은 세계 어린이들의 공통 언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림으로는 함께 생각하고 함께 꿈을 꿀 수 있다. 그동안 고집해왔던 방식을 버리고 그림은 물론 텍스트와 편집까지 한국적인 정서를 유지하며 모던하면서도 참신한 기획으로 세계적인 안목을 입혔다. 그 결과 2006년 6월, 우리의 전래동화 「반쪽이」가 이탈리아에 팔리며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눈도, 귀도 하나뿐인 반쪽이로 태어났지만 착한 마음씨와 성실함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이 장애인을 우대하는 이탈리아인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 같은 해 7월 일본에도 전래동화 7권이 수출되며 ‘물꼬’가 트였다. 과학원리를 재미있는 동화로 엮은 「탄탄원리과학동화」가 세계 유수의 출판사인 독일의 ‘피셔’, 프랑스 ‘망고’와 계약을 체결했을 땐 ‘이제 아무도 한국 동화를 무시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피셔의 출판자들이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을 정도예요. 수학동화와 과학동화는 멕시코 초등학교에서 부교재로 선정되었고요. 작년엔 남아프리카공화국과도 2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어요. 학교와 도서관에 납품돼 이제 세계 곳곳의 아이들이 한국을 이해하며 자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희망의 메시지 남긴 작은 영웅들,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멘토
김동휘 사장이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만들지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젊은 시절 우연히 출판과 인연을 맺은 뒤 1992년 ‘도서출판 대일’이란 이름으로 출판사를 차리고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오다 8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 그림동화 전문 출판사 ‘여원미디어’를 설립했다. 아동교육 출판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만들까’ 하는 생각은 26년 동안 쉬지 않던 고민이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만나는 책이 바로 동화책이에요.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사람살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법과 질서를 배워 나갑니다. 특히 어린 시절은 평생 일구게 될 토양이 만들어지는 때이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쉽게 물드는 시기예요. 그림동화책은 이런 어린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벗이 되기도 하고, 스승이 되기도 하죠.”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책을 만들며 그가 가장 견제했던 것은 어른들이 가진 선입견이다.

“호랑이를 처음 본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어른들이 ‘호랑이는 무섭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줄 아는 거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동화들을 보면 어른들의 시각으로 아이의 상상력을 제한해왔어요. 특히 위인전에는 그러한 천편일률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죠.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강요해온 틀을 깨는 것, 제가 동화책을 만들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에요.”

이제까지의 위인전은 한 인물의 생애를 단순하게 기록처럼 풀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가 좋은 태몽을 꿔 훌륭한 사람이 되고, 몸집이 커 장수가 되고,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는 등 암기한 것처럼 자리 잡은 위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동화가 아닌 신화에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요. 예전보다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세대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 훨씬 많은 혼란을 겪는 세대이기도 하죠.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의 삶을 모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 재창조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동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멘토를 주고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는 책을 만들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얼마 전 발간된 「탄탄 PEOPLE in 피플」 시리즈는 이러한 그의 고민을 풀어낸 인물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고 역발상이 자유로운 요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인물 이야기를 통해 가능성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주인공의 일생을 시간 순서에 따라 쭉 나열하는 기존의 접근 방식이 아닌 명확한 주제와 메시지로 집중을 높였다. 4년 동안의 기획 단계를 거쳐 지난 8월 아이들의 품에 안겼다.

인물 선정도 기존과는 조금 다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온 인류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과 새롭게 등장한 현존 인물들까지 골고루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간디, 안데르센, 이순신, 에디슨 등 어느 위인전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인물들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나 소액 대출로 빈민층에 희망을 빌려준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유누스 총재, 「오체불만족」의 오토 다케 등 현존하는 인물들을 고루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전 세계인에게 행복을 준 비틀스, 에이즈를 통해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생을 마감한 아프리카의 소년 은코시, 남들이 천대했던 기생 출신이지만 나눔의 미덕을 실천했던 김만덕 할머니도 포함되었다.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 여원미디어 김동휘 사장

“크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뿐만 아니라 작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인물이 제가 아이들을 위해 선정한 멘토입니다. 이 멘토들을 보고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꿈을 꾸게 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더 있을까요?”

차 속에 언제나 동화책 한가득, 책 3만 권 선물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탄탄스토리하우스는 전시장과 공연장, 북카페 등 아이들을 위해 지어진 어린이 복합문화 공간이다. 방학과 주말이 되면 음악과 미술, 동화책을 즐기러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로 4층 건물이 가득 찬다.

“사업 때문에 해외에 자주 드나들면서 우리나라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너무 적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미술과 조각, 건물 등 다양한 예술품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앉아 공부만 한 아이들보다 문화적인 감각이 훨씬 뛰어날 수밖에 없겠죠. 우리나라에도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2년 전 문을 연 이래 단체 관람객이건, 일반 관람객이건 찾아온 어린이들에게는 무조건 책을 한 권씩 선물한다. 어딜 가나 차에 한가득 동화책을 싣고 다니며 만나는 아이들마다 선물한 책이 어느새 3만 권이 넘는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이름에는 1년 365일 동화책 선물하는 ‘산타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번은 차를 타고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어머님 한 분이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서 계시더라고요. 차를 멈추고 동화책을 한 권 드렸어요. 그때 피곤하던 얼굴이 밝아지며 생기가 돌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집에 가서 그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보며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책 선물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비록 만원 남짓한 책 한 권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수천억원보다 더 값진 것이 들어 있다고 믿는 그다. 한 권의 책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가꿀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탄생과 성장, 활용, 소멸 시기가 있어요. 탄생과 성장은 말 그대로 태어나 배우고 받아들이는 시기고, 활용은 그 전 시기에 습득한 것들을 활용하는 청장년 단계를 말해요. 동화책을 만들며 어머님들을 만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아이의 성장 시기를 활용 시기로 생각하고 계세요. 한창 배워갈 시기에 점수나 성적, 성과, 결과를 바라는 거죠. 성장기를 잘 보낸 아이는 성인이 돼서 배운 것을 잘 발휘할 수 있지만 성장이 활용으로 대체된 아이는 당장은 똑똑해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발휘할 시기에는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해요.”

탄탄그림동화책들과 탄탄스토리하우스 내부 전경.

탄탄그림동화책들과 탄탄스토리하우스 내부 전경.

그는 부모가 하루에 5분이라도 시간을 내 책을 읽어주라고 당부한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어도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

“음식도 부모가 먼저 먹어보고 맛있는 걸 아이에게 주잖아요. 책도 똑같아요. 좋은 책을 고르려면 먼저 부모가 책을 많이 보고 읽어야 해요. 함께 읽고,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에게 좋은 게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하루에 5분, 10분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하루에 5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1년, 2년이면 어마어마한 시간입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악기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예요. 아빠들도 출퇴근 전에 잠깐, 아이 곁에 서 책을 읽어주세요. 얼마 안 가 아이가 책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할 겁니다.”

그는 요즘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동화책 지원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선별된 책을 6개국 언어로 번역해 러시아와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다문화 가정에 지원할 계획이다.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동심(童心)이 인심(人心)을 만든다는 그. 세상에 그와 같은 산타할아버지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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