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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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잠들어 있던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여름이 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열기로 부풀었던 여름의 기억들을 하나 둘 지워나간다. 모두 부지런히 새 계절을 맞는 10월, 인도 출신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지난여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모욕적이었던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지난여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 7월 10일 밤 9시, 부천으로 가는 52번 버스 안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보노짓 후세인 교수(28)가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의 구로역 근처로 이사를하던 날이었다. 이삿짐을 옮겨주러 찾아온 한국인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 친구와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아레나(ARENA: 새로운 대안을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의 회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더러운 XX야”. 뒤를 돌아본 그에게 한 남자가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회사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이 개XX야, 냄새 나. 너, 어디서 왔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그이지만 양복을 입은 그 사내가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란 표정의 후세인 교수를 보고 그 사내가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더니 연신 “You Arab! Arab!”을 반복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사내에게 항의하자 이번에는 욕설이 친구에게로 향했다. “조선X, 아랍 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냐?” 참다못한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의 양복 깃을 잡고 버스 기사에게 경찰서에 데려다달라고 요청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던 10여 분 동안 버스 안에 있던 사람 중 누구도 그 상황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앞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40대 여성 승객 한 명만이 사내를 말리고 증인이 되어주겠다며 경찰서에 따라나섰다.

#2. 30분 후 부천 경찰서, 계남지구대
버스에서 내려 경찰서까지 가는 동안에도 사내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겨우 도착한 경찰서에서 경찰들은 사내의 말을 먼저 들었다. 몇 분 후 경찰서에 도착한 다른 경찰들에게 맨 처음 사건을 들은 경찰이 사건 경위를 전달했다.

사내가 했던 말이 주를 이뤘다. 세 사람은 다시 경찰차를 타고 부천 중부경찰서 관할인 계남지구대로 향했다. 지구대에서 세 사람의 신분증 검사가 이루어졌다. 후세인 교수는 법무부가 발급한 외국인등록증과 성공회대에서 발급한 연구교수 신분증을 보여줬다. 신분증을 본 경찰 한 명이 “네가 교수야?”라며 다시 신분증을 가지고 어디론가 갔다가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경찰은 1982년생인 그가 교수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는 듯했다. 지구대에서 경찰은 사내와 후세인 교수의 친구에게는 존댓말을 썼지만 후세인 교수에게는 반말을 했다. 합의를 권고한 경찰에게 후세인 교수와 친구는 합의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지구대에서 진술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내는 두 사람을 쫓아다니며 괴롭혔지만 경찰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서 부천 중부경찰서로 돌아온 세 사람은 다시 조사를 받았다. 날이 지나 새벽 2가 넘어서야 후세인 교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내가 먼저 조사를 받고 경찰서를 떠난 후였다.

#3. 8월 중순,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 조사실
명백한 모욕행위라고 판단한 후세인 교수와 친구는 함께 사내를 모욕혐의로 고소했다. 사내도 맞고소를 했지만 상대는 후세인 교수뿐이었다.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후 두 사람은 사건을 맡은 담당검사 앞에서 다시 만났다. 한 달 전 그에게 욕을 퍼붓던 사내는 자신의 실수였다며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그에게 사과했다. 후세인 교수 역시 사내를 처벌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고소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결국 8월 말 부천지청은 사내를 모욕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기소 사례로 만든 첫 번째 사건’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인종주의, 이제 다 함께 이야기해야 할 때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왜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는 “그러면 아무 기록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현대사를 공부하고 2007년, 성공회대학교가 마련한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교육지원 사업’으로 대학원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이제껏 겪어온 여러 사건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도 여성으로서 심한 모욕을 당한 사건이었어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친구가 욕설을 들어야 했던 건 참을 수 없었죠. 아마 제가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건 분명히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건이에요.”

그는 버스 안에서의 사건뿐 아니라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더욱 큰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법무부와 대학교에서 보장하는 신분증을 제시했음에도 경찰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불법 체류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외국인, 그 중에서도 유색인을 대하는 그들의 기본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말은 잘 모르지만 존댓말과 반말은 구분할 줄 알아요. 그 사내와 제 친구에겐 존댓말을 하던 경찰이 제게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더라고요. 물론 그분들이 저보다는 어른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저에게만 반말을 했다는 건 명백한 차별적 대우였어요.”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기소 사례를 만든 첫 번째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 검찰에서도 이번 사건을 두고 인종차별적 발언 여부와 관계 없이 모욕 혐의로 기소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피하고 있는 중이다. 후세인 교수 역시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인종차별을 예방하고 규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120만 명 시대, 외국인 이주민들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외국인, 그 중 특정 지역민을 향한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길을 다니다 보면 특히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차별을 느껴요. 저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동남아시아인=공장 노동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죠. 제가 동남아시아인처럼 보인다는 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인들이건, 공장 노동자이건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한국에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음에도 문제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얘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에요. 한국엔 120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또 외국인 가족을 가진 사람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해요. 아무런 노력 없이 인종주의가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 함께 얘기해보자는 의미에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교육도 필요
후세인 교수가 처음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따뜻하고 친절한 나라였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그와 친해지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오가며 만나는 동네 아이들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음을 알게 된 건 1년 후 대학원 프로그램을 마치고 리서치를 위해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부터다.

“학교 앞 온수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분이 일어나시더군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나 보다 했는데 그분은 종로까지 서서 가셨어요. 만원 지하철 안에서도 제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어요. 왜 그런가 궁금해서 한번은 한국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그 친구가 말하기를 ‘동남아인에게선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냄새는 생리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예요. 누구나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고 땀을 흘리면 냄새가 날 수 있어요. 외국인들은 모두 냄새가 난다는 건 그야말로 편견이죠.”

직접적인 인종차별적 시선과 모욕을 느끼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길을 가다 보면 “개XX야, 저리 가”라는 욕설이 들려온다. 이런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혼자일 때, 그리고 한국 사람과 있되 그 사람이 여자일 때다.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이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차별에 얽매여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면서 많은 한국 분에게서 응원과 격려의 메일을 받았어요. 힘내라고 위로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한국 사람들의 그런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현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인터넷에 뜬 제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보고 어떤 분이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메일을 보내셨어요. 그 아이들이 크면 어른이 될 텐데, 그렇다면 더 큰일이죠.”

인종주의는 태생적인 것이 아니다. 학습하고 사회화되며 습득되는 것이다. 무조건 ‘한국이 최고다’라고 가르치는 건 이러한 인종주의의 씨앗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외국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배워요. 우선은 부모님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인식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부모라면 아이에게 피부색에 상관없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 사람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심어주겠어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한국인이 최고임을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은 자칫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은 열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죠.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교육도 좀 더 확대시켰으면 해요. 무지는 두려움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인종주의에 갇히지 않도록 인종과 인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후세인 교수에게 “이번 사건으로 한국이 싫어지지 않았느냐”고 묻자 “더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음식과 계절을 사랑하는 이 인도인 교수는 앞으로 자신에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한국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한순간에 인종주의라는 거대한 인식을 없애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의 작음 외침이 서서히,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그가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길 바란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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