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 박채리 남매는 주변에서 ‘한자 신동’으로 통한다. 각각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인 이 남매는 모두 만 8세에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에 합격했다.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며 한자 1급을 정복한 한자 신동 남매의 공부 비법을 들여다봤다.
어휘력과 이해력의 바탕이 되는 한자 공부
“아이들이 한자 시험에 도전한 것이 본인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부모의 의지였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 한자가 아이들의 진학을 위한 하나의 ‘스펙’으로 떠오르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자 공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물론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일 수도 있지만 헌이가 한자를 처음 접했을 때가 일곱 살, 유치원 때였어요. 그런 이유로 공부를 시키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죠. 헌이가 한자 공부를 시작한 건 순전히 자기가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자 교재를 집어든 뒤 집에서 혼자 한자를 익히기 시작한 헌이는 유치원 때 8급 시험에 합격, 차례로 급수를 올려 한자 공부를 시작한 지 15개월 만에 1급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만 8세 3개월이라는 헌이의 최연소 기록을 깬 것은 동생 채리다. 집에서 오빠가 한자를 공부하는 것을 보고 한자 일기를 쓰며 공부를 시작한 채리는 오빠보다 기록을 3개월 앞당겼다.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며 함께 시험을 본 이정현씨 역시 채리와 함께 시험에 합격, 4가족 중 3명이 1급 자격증을 가진 ‘한자 가족’이 되었다.
단순히 1급 자격증을 땄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두 남매가 한자 공부를 하며 얻은 공부 습관은 자연스럽게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이어져 학원이나 과외공부 없이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개발하고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하게 한 밑바탕이 되었다.
“우리말은 70%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자를 알면 어휘력이 늘어나요.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되죠.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게 아이들이 한자를 공부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어요.”
한자 공부로 다져진 공부 습관은 영어와 수학 등 다른 과목으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두 남매는 학교에서 줄곧 전교 1등을 지키고 있다.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는 헌이는 영어와 중국어까지 마스터했다.
과연 얼마나, 어떻게 공부해야 한자 1급을 정복할 수 있을까. 이정현씨가 공개한 두 남매의 한자 공부 가이드를 살펴보자.
무리한 도전은 금물! 아이에 맞는 급수 목표 정하기
나이나 아이의 기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처음에 5급을 목표로 공부해 시험을 보고 차례로 4급, 3급, 2급, 1급을 보는 것이 적당하다. 유치원생이라면 8급이나 7급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다. 유의할 점은 급수를 건너뛴다고 해서 공부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급 시험이 첫 목표라도 8급 배정 한자부터 6급 배정 한자까지 모두 차례로 익힌 후 5급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4급까지가 교육 급수고 3급부터가 공인 급수이기 때문에 3급까지는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4급까지만 합격해도 실력이 많이 는다. 사실 1급은 어른에게도 굉장히 어렵다. 한자를 아주 잘하거나 스스로 좋아서 하지 않으면 1급을 따는 것은 쉽지 않다. 엄마의 욕심만으로 무리하게 1급을 목표로 해서는 어렵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경우 3급 정도만 돼도 국어나 다른 과목 공부에 도움을 주고 한자 공부를 통해 여러 좋은 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2급과 1급은 아이의 수준과 흥미,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서 도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조건 1등은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자.
한자 공부의 시작은 ‘부수’
부수를 묻는 문제는 4급부터 나온다. 하지만 한자를 공부할 때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부수다. 상식 차원에서 몇 글자를 익히는 게 아니라 급수 시험을 목표로 한자를 공부한다면 부수를 먼저 익히고 8급부터 배정 한자 공부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급수가 올라가 공부해야 할 한자가 천 자 이상씩 늘어나면 부수를 통한 한자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 무작정 한자를 외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부수만 정리해놓은 책으로 따로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한자 부수 214자 중 잘 쓰이지 않는 부수를 제외한 172자의 부수는 하루에 10~15자씩 10칸짜리 공책 한쪽씩 써가면서 외우면 저학년은 한 달, 고학년은 보름이면 모두 끝낼 수 있다. 아이들이 부수 외우기를 힘들어한다면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수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앞면엔 부수를, 뒷면엔 뜻과 음을 쓴 부수 카드를 만들어 엄마와 놀이를 하듯 외우면 훨씬 즐겁게 익힐 수 있다.
목표가 3급 이상이라면 매일 꾸준하게!
목표를 3급 이상으로 잡았다면 한자 공부는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아이가 처음 한두 번 시험에 붙는다고 해서 너무 무리하게 몰아붙이면 쉽게 질릴 수 있으므로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하게 하도록 한다. 휴일은 제외하고 매일 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포인트! 엄마나 아빠가 시간을 내 체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배정 한자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돌입
시험문제 유형에는 독음, 훈음, 장단음, 반의어, 완성형(고사성어나 단어의 빈칸을 채우는 문제), 부수, 동의어, 동음이의어, 뜻풀이, 필순, 약자, 한자 쓰기가 있다.
4~8급에서는 보통 반대자와 유의자만 나온다. 배정 한자만 잘 알고 있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급수가 올라가면 약자(5급부터), 장단음(4급부터) 등 까다로운 문제 유형이 등장하고 사자성어 혹은 낱말의 뜻을 묻거나 완성하는 유형의 문제 비중이 커진다. 배정 한자만 익혀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유형별로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약자 약자를 공부할 때는 노트 첫 번째 줄에 한자를 밑으로 한 글자씩 써놓고 나머지 칸에는 약자를 쓰면서 외운다. 다섯 번에서 열 번 정도 쓴 다음 외워졌다면 약자도 반드시 테스트를 해본다. 약자는 말 그대로 간략하게 쓰기 때문에 아이들이 쉽고 재밌게 익힐 수 있고 중국어를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된다.
장단음 장단음은 너무 복잡해서 공부하기가 까다롭다. 2급까지는 다섯 문제가 나오는데 70점이 합격 점수이므로 다른 부분을 더 열심히 하고 1급 시험 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1급에서는 80점이 합격 점수여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음만 공부하는 것이다. 장단음 10문제를 모두 맞히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7, 8문제 정도 맞히는 것을 목표로 하자.
사자성어 사자성어는 제일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퀴즈 프로그램 단골 메뉴이기도 한 사자성어는 어느 곳에서건 한마디만 해도 ‘유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단 공부를 해두면 실생활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 그 뜻을 음미해가며 먼저 말로 외우는 것이 좋은데 이때 사자성어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공부하면 더욱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삼국지」와 같은 고전은 사자성어를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문제지로 마무리 시험 한 달 전부터는 문제집을 마련해 마무리를 해야 한다. 아무리 기본 한자 공부를 많이 해도 시험을 보기 전에 문제를 충분히 풀어보지 않으면 시험을 망칠 수 있다. 실전 문제를 풀어보면서 문제 유형을 익히고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 보충하고 복습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미리 시험에 대한 모의 연습을 하며 긴장감도 풀 수 있다. 목표 급수의 기본 공부가 끝나면 예상 문제집을 마련해 하루에 1회씩 한 달 정도 시험 경험을 쌓도록 하자.
2·3급, 한자로 일기를 써보자
3급은 한자가 좀 더 어려워지는 고난도로 접어드는 단계다. 그동안 공부 습관이 들어 있다면 하루 공부량을 조금 늘려도 무방하다. 아이의 능력껏 전 단계보다 하루 20~30자 정도 늘려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5급을 합격하고 바로 3급에 도전하려면 1년 정도, 4급에 합격하고 3급에 도전하려면 9, 10개월 정도의 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한자 양도 많아지고 낱말도 어려워져 아이들이 지칠 때면 엄마와 함께 시합을 하며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급을 합격하고 나면 한자 일기를 써보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어휘력도 늘고 지금까지 배운 한자도 활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사전과 자전을 찾아가며 일기를 쓰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익숙해지면 점차 단축된다. 아이들이 매일 국한문 혼용으로 쓰기 힘들어한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 두세 번으로 점차 늘려가는 것이 좋다. 6개월 정도 한자로 일기를 써간다면 웬만한 낱말은 한자어로 쓸 수 있는 베테랑이 될 것이다. 3급 합격 후 2급은 6, 7개월이면 충분하다. 다만 2급부터는 공부할 한자 양이 늘어난 것 외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들도 많이 출제되니 어휘력 공부에 힘쓰도록 한다. 3급 이상은 엄마 아빠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옥편과 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열심히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지치지 않을 수 있다.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는 것, 아이를 한자의 달인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한자 1급,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다
비교적 시간이 많은 초등학교 5, 6학년이 1급에 도전하기 가장 좋은 시기인 듯하다. 그러려면 유치원 때나 적어도 초등학교 1학년 때 한자공부를 시작하기를 권한다. 1급을 목표로 한다면 다른 공부와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 한자 공부시간과 양을 늘려 한 단락을 빠른 시간 내에 끝내고 복습하는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한자 1급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아이가 한두 번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만약 아이가 2급까지 단번에 붙은 경우라면 1급 시험에 떨어졌을 때 첫 실패에 대해 충격을 받거나 의기소침해질 수 있다. 이때 부모가 곁에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실패가 약이 될 수도 있다. 부족한 부분을 확실하게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오만했던 마음도 다스릴 수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1급 고지를 향해서 가되 부모도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겼으면 한다. 자격증을 딴다는 목표보다는 한자 공부를 통해 좋은 성장 단계를 거친다는 생각으로 가족간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간다면 자격증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획 / 노정연 기자 ■사진&자료 제공 / 「한자 신동 남매의 공부비밀」(이정현·박성기 저, 다산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