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부인 이정화 여사가 향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 손윗동서인 이양자 여사에 이어 사실상 현대가의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이 여사. 그룹 관계자들은 조용한 내조로 현대기아차그룹의 안주인 역할을 해왔던 큰어른을 잃었다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준 이정화 여사의 삶을 돌아본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 여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현대가의 안주인으로 조용한 내조를 실천했던 이 여사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난 10월 5일 이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다. 이 여사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담낭암을 발견하고, 병세가 악화되면서 미국에서 치료받던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는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정의선 1남 3녀를 두었다.
이 여사는 손윗동서인 이양자 여사가 1991년 타계한 뒤, 사실상 현대가의 맏며느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 직원들 중에서 고 이정화 여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직원들이 어떻게 그룹 총수의 부인 얼굴을 모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여사는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자료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42년 동안 현대기아차그룹 총수의 안주인 역할을 해온 이 여사의 삶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왜 그녀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재벌가의 안주인은 화려하고 도도함이 물씬 풍기는 사모님이다. 하지만 이정화 여사의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 여사는 결혼 후, 집 안 청소와 음식 등을 손수 할 정도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다. 이 여사의 이 같은 근검함과 겸허함,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조용한 내조와 자식교육은 정재계 안팎에서 ‘현모양처’와 ‘조강지처’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을 정도다.
이 여사의 이런 삶에 대한 가치관은 ‘항상 겸손하고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시어머니 고 변중석 여사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 역시 64년 동안 조용한 내조로 정 명예회장을 보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변 여사와 이 여사는 재벌가의 며느리로 좀 더 화려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일생을 헌신과 희생으로 살다 갔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고 변중석 여사와 쏙 빼닮은 조용한 내조
특히 이 여사의 효심은 정재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대단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무려 19년간 시어머니 변중석 여사의 병간호에 지극정성을 쏟았던 것. 이를 두고 그룹 관계자들은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던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매일 새벽 5시, 온 식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근면과 검소를 가르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이 여사는 이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경부터 아침 준비를 하며 며느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간혹 귀찮고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이 여사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는 사람이 감동할 정도의 정성을 보였다고 한다.
이정화 여사는 가정교육에도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사는 슬하의 1남 3녀에게 늘 ‘겸손’을 강조했다.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준 속담도 바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였다.
사람에 대한 정이 많아 며느리와 사위는 시골 아낙네 같은 넉넉함으로 감싸고,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따뜻한 정으로 내리사랑을 보여줬으며, 조심스러운 행동과 겸손을 잊지 말 것을 항상 일렀다고 한다. 게다가 먼 친척의 경조사까지 손수 챙기며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명절이 되면 신문배달원이나 미화원들에게 정성 어린 선물을 했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조용한 내조로 일관해오던 이 여사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다. 당시 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 이사를 맡았던 이 여사는 2005년에 이 회사의 대표를 맡았고, 2006년 말 고문을 역임하면서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하는 듯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고인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뜨거운 눈물
그런 애틋함이 묻어나는 아내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었을까, 지난 10월 10일 오전에 거행된 이 여사의 영결식에서 정몽구 회장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떠나보내야 함에 애통해했다. 생전의 이 여사는 아들 정의선 부회장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어머니를 유독 챙겼던 정 부회장도 영결식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재벌가의 안주인이면서 단 한 번도 남편과 아이들 뒤에서 나오지 않고, 조용하고 묵묵하게 살아온 ‘그림자 내조’의 달인 이정화 여사.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고, 아랫사람과 타인을 더 존중하며 살다간 이정화 여사의 삶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제공 / 이성원, 현대기아차그룹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