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치는 의사 선생님 이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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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치는 의사 선생님 이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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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꿈이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비뇨기과 의사 이선규 원장은 가수라는 또 다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단역이긴 하지만 영화에 출연한 경력도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한 가지도 잘하기 힘든 세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선규 원장의 비결은 ‘즐기는 힘’이다.

[전문직 엔터테이너]드럼 치는 의사 선생님 이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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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드럼을 선물받다
이선규 원장(44)을 만나기 위해 들어선 강남의 한 비뇨기과. 언뜻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상담실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병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피아노와 드럼이다. 보물찾기 하듯 둘러보니 기타와 색소폰도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이 원장이 연주하는 악기들이다.

“바쁠 때는 병원에서 연주할 일이 많지 않아요. 가끔 시간이 날 때나 환자 중에 악기를 연주하는 분이 계시면 소리를 낼 기회를 얻죠. 얼마 전에는 한 환자분이 색소폰을 연주하신다기에 한 수 배워볼 겸 악기를 꺼냈어요.”

비뇨기과 전문의로 각종 방송과 칼럼, 책을 통해 건강한 성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온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낸 어엿한 가수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Memorability(잊혀지지 않는 일)」라는 음반으로 가수로 데뷔해 학창 시절부터 꿈꿔오던 소원을 이뤘다.

“학창 시절에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어요.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에 나가면 1등을 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였죠.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밴드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예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장훈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드럼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모두 입시로 바쁜 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에 빠져 지내긴 했지만 ‘감히’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는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을 떠나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온 처지였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탔다”는 그의 말마따나 학창 시절 음악은 그가 꾹꾹 눌러 담아야 할 열정이었다.

“4남 2녀 중 막내예요. 중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 둘째 형님 댁에서 지냈는데 제 성적이 자꾸 떨어지니까 아버지께서 둘째 형을 야단치신 거예요. 형이 저한테 전교 1등을 하면 원하는 물건을 사주겠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죠. 결국 전교 1등을 하고 그때 받은 선물이 드럼이에요.”

부모 욕심에 억지로 시키는 공부, 얻는 것보다 잃는 것 많다
[전문직 엔터테이너]드럼 치는 의사 선생님 이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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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공부를 참 잘하셨겠어요”라는 질문에 “딱 의대에 갈 정도로만 했다”고 한다. 수업 끝나는 종소리에 “선생님 수업 더 해요~”라며 손드는 학생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의무감에 한 공부였지만 열심히 한 덕분에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학 진학 후에는 자유롭게 음악과 운동, 연기까지 그동안 숨겨왔던 끼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의대 내의 그룹사운드 ‘살루스’와 외부 학생 그룹사운드, 합창반, 배구반에서도 활동했고 연극 ‘에쿠우스’에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으로 연극무대에 섰다.

당시의 연기 경험을 살려 그는 몇 해 전 영화 ‘홍반장’과 ‘목포는 항구다’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두 작품 다 2004년에 개봉했으니 데뷔는 가수보다 영화가 더 빠른 셈이다. ‘홍반장’에서는 엄정화와 다투는 치과 과장으로, ‘목포는 항구다’에서는 나이트클럽 무대에 오르는 트로트 가수로 얼굴을 비쳤다. 영화에서는 의사와, 가수를 따로따로 연기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두 가지 인생을 동시에 살고 있는 셈이다.

“차인표씨와 조기축구를 같이했는데 어느 날 축구를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차인표씨가 연락을 했어요. 나이트클럽 가수 역할이 있는데 박사님이 제격일 것 같다고요. 호기심도 생겼고 노래 부르는 역이라기에 솔깃했죠. 그렇게 해서 출연하게 된 거예요.”

가수 데뷔는 몇 번의 고비 끝에 이루어졌다. 비뇨기과 전문의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여러 음반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데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4년 가까운 준비 끝에 캔의 배기성, 작곡가 오석준, 옛 송골매의 베이시스트 이태윤 등 여러 뮤지션의 도움으로 마침내 첫 음반을 발매했다. 학창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만 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우여곡절도 많았고, 첫 음반이니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일상에 치여 힘들고 지쳐도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고나 할까요?”

그에게 음악이 특별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준 것. 경북 문경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찾아간 피아노 교습소에서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내는 그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그때 제 인생에서 피아노를 제일 열심히 쳤던 것 같아요(웃음). 문경에서 2년, 서울에서 1년 연애하고 인턴 끝마칠 때쯤 결혼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는 색소폰을 불고 아내는 피아노를 쳤죠.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서 악기를 배우지 못했어요. 그 욕심에 아이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첼로며 피아노며 여러 가지를 시켰는데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아이가 기타 공연을 보고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당장 기타를 사줬죠. 부모가 억지로 시키는 건 소용이 없어요. 당장은 성적이 좋아질 수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걸 탐색하는 기회를 뺏는 일이죠. 공부건, 음악이건 아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진료복을 입은 그는 색소폰을 든 모습도, 환자 앞에 선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용기,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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