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모두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뤄 따뜻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혹자에겐 치과 의사가 꿈이다. 하지만 현재 치과 의사인 고원경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첼리스트를 꿈꿨다. 그녀는 퇴근 후 의사 가운만 벗으면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첼로를 들고 첼리스트로 변신한다. 미녀 치과 의사 이자 세종나눔앙상블 첼리스트로 활동중인 고원경의 행복한 이중생활을 인터뷰했다.
고원경씨(37)는 현재 유명 대학병원의 치과 의사다. 이른 아침 병원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환자들을 진료하며,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퇴근 후, 의사 가운을 벗어던진 그녀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세종나눔앙상블 첼리스트로서의 삶이다.
세종나눔앙상블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창단된 실내악단이다. 지난해 11월 모집 당시 9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화제가 됐던 세종나눔앙상블은 20~50대 의사, 교사, 엔지니어, 비서, 주부 등 다양한 연령과 나이, 직업을 가진 일반인들로 구성된 실내악단이다. 이들은 지난 7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음악회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면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세종나눔앙상블에서 첼리스트로 활동 중인 고원경씨는 “어릴 적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무척 행복하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씨가 처음 첼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유치원 때부터 언니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는데, 항상 자신보다 앞서가는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첼로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같이 가르쳤어요. 언니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특별해 보이는 첼로를 배우겠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첼로를 배우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첼리스트의 꿈을 꾸면서 중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께 첼로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포기하게 됐죠.”
당시 그녀의 부모님은 음악을 하는 사람을 ‘딴따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첼로를 취미로 배우길 원했다. 여기에는 늘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그녀의 성적이 한몫을 했다. 또 예체능을 하면 돈이 많이 드는 것도 고씨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첼로를 잠시 접고, 공부에 매진하게 됐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총 60여 회 공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드디어 다시 첼로를 잡을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등학교 때 틈틈이 모은 돈으로 첼로를 구입했다.
대학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레슨도 계속 받았다. ‘연대 치대 오케스트라’ 활동은 물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앙상블 공연, 인터넷 동호회 활동도 했다. 그러던 중 세종나눔앙상블 단원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그녀의 꿈이 더욱 구체화되어 갔다.
어릴 적 그녀의 첼로 전공을 반대했던 부모님은 자신의 일을 훌륭히 하면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딸을 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고. 그녀가 공연을 할 때는 부모님도 꼭 참석을 하신다. 친구와 직장 동료들 역시 그녀를 보며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낸다. 심지어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첼로를 다시 손에 잡은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총 60여 회 공연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초등학교 때 자신에게 첼로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20년 만에 다시 만나서 함께한 공연이다.
“초등학교 때 첼로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제가 세종나눔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얼마 전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첼로 앙상블 갈라 콘서트를 했는데,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공연이었어요. 선생님께 20년 만에 다시 첼로 레슨을 받다니, 정말 꿈만 같았죠(웃음).”
첼로는 내 삶의 영원한 친구
고원경씨는 앞으로 음악 공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전문적인 교수법 등을 배워 배움의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찾아가 첼로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것.
그녀에게 “만약에 미래에 태어날 자녀가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로서 어떻게 말하고 싶냐”고 묻자 “일단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장단점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 후에 아이가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로 가게 해주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싶네요”라고 답한다.
그녀는 과거 첼로 전공을 반대하셨던 부모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감사하다고 말한다. “저는 음악을 사랑하고, 전문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아마 어릴 적 꿈대로 첼로를 전공했다면 지금처럼 음악을 즐기면서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든지 자신의 일이 되면, 스트레스와 의무감, 책임감이 뒤따르잖아요. 지금까지 첼로와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 수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둔 채 하루하루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그 끈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미 그녀 주변에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오히려 어릴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워졌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제 인생에서 첼로는 평생 함께하는 친구 같은 존재예요. 인생의 활력소 같은 존재…. 저는 어릴 때 첼리스트를 꿈꿨고, 중·고등학교 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 그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뤘으니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의사로서 환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첼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