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판사의 또 다른 이름은 연기파 배우다. 법원에서는 법복을 갖춰입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애쓰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범죄를 저지르는 죄수가 되기도 한다. 얼핏 멀게 느껴지는 두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사회와 사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연기하는 법조인이라니, 누가 봐도 질투 나는 조합이다.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법정 한가운데서 서로 다른 주장이 얽힌 사건의 본질을 차분히 살피며 결과를 움켜쥐고 있는 판사, 뜨거운 감성으로 끓어오른 무대 한가운데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펼쳐 보이는 배우.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이는 이 두 인생을 오가는 김용희 판사(30)를 보고 있으면 언뜻 부러운 감정이 앞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부러움은 배가 된다.
2008년부터 인천지방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각종 연극과 단편 영화 등에 출연한 배우다. 군 법무관 시절 출연한 연극 ‘미라클’에서는 훌륭한 연기를 펼치며 강원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조경덕 감독의 영화 ‘섹스 볼란티어’에서는 죄수 역할을 맡아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어릴 때는 혼자 놀기 좋아하고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중·고등학교 때 성격이 바뀌면서 ‘내가 연기를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어딘가에 몰입도 잘하고 평소에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하면서 노는 걸 즐겼거든요.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을 하면 친구들을 모아서 연출하고 앞에 나가서 연기도 했어요. 딱히 기회가 없어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대학 진학 후에 학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연기의 ‘맛’을 알게 됐죠.”
‘이야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감히 자신이 ‘배우’라는 옷을 입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기를 ‘제대로’ 접해볼 기회도, 새로운 길에 대한 꿈을 꿀 만한 ‘철’도 없었던 탓에 전문 연기자는 그저 자신과 먼 세계인 줄만 알고 눈앞에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희망 학과를 쓰잖아요? 그럴 때 가끔 연극영화과 같은 데를 써보곤 하는 정도였어요.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워야겠다는 고민 자체가 없었죠. 다행히 성적이 좋은 편이어서 성적에 맞게 진학 가능한 곳을 찾다가 법대를 선택하게 됐어요.”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무대의 매력을 알고 나니 그 넓은 도서관이 너무나 갑갑한 거예요. 책상 위에 올라가서 막 소리 지르고 싶었어요(웃음).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법대생이니까 언젠가는 사법시험을 보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느슨한 생각에 4년을 무대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마지막 학년이 되니까 제 삶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동기들을 따라 4학년 때 사법시험 원서를 냈다. 법관의 길이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연기하며 돌아다니는 ‘똑똑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 당일, 그는 시험장 대신 친한 선배 결혼식에 들러 친구들과 실컷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자신의 선택과 삶을 긍정하는 자세
활발하고 말도 잘 듣던 ‘똑똑한 법대생’ 아들을 둔 부모님 입장에서 기대가 컸을 법도 한데, 그의 부모님은 남들이 다 시험공부에 매진할 때 연극 무대만 쫓아다니는 아들을 항상 존중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그 ‘용기’에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부모님께 ‘법조인 대신 직업으로 연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정말 기겁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극 동아리에 빠져 지낼 때도 ‘저러다 정신차리겠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진짜로 연기를 하겠다고 나서니까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감사하게도 결국에는 ‘네가 정말 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 정말 하고 싶은 걸 알아봐라’며 믿어주셨어요.”
김용희 판사는 그때 만약 부모님께서 완강하게 반대하시며 “사법시험을 보라”며 다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조화로운 삶은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어느 길을 선택했든 떠밀려왔다는 생각에 판사로서도, 배우로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능력과 자질이 있는지 스스로 깊이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기로에 서 있지 않았을까 싶단다.
“제 고민과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신 것은 부모님으로서는 큰 용기를 내신 걸 거예요. 그때부터 관련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연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냉철하게 고민했어요. 배우가 직업이 됐을 때 제가 그 열정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지, 사람들은 왜 고시에 도전하는지 등도 생각해보고요. 넓게는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까지요. 결국에 내린 결론은 지금의 제 모습이에요.”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최대한 빨리 합격하겠다’는 절박한 목표를 세워서일까, 사법시험도 2년 만에 통과했다.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고 나면 연기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열정을 항상 품고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인연이 계속 닿더라고요.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판사 생활을 시작한 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활발한 활동은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다소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법조계에서 그의 연기활동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연기하는 판사’에 대해 재미있어 하며 귀여워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다. 오히려 그가 배우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꾸 노래며 사회 등을 맡기려고 해서 살짝 곤혹스러울 정도라고. 얼마 전에는 대법원 홍보 비디오 촬영 섭외가 와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김용희 판사는 ‘사람 사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판사로서, 배우로서 살아가는 지금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꿈에 푹 빠져 있다고 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충만한 그가 요즘 꾸고 있는 작은 꿈은 특별한 로맨스의 주인공이라고 하니, ‘특이한 멜로’ 역할을 맡길 배우를 찾고 있는 관계자 분들은 어서 연락주길 바란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