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그룹 ‘파스텔블루’에서 ‘피디블루’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환씨. 그의 본업은 방송국 라디오 PD다. 그에게 ‘전문직 종사자가 이벤트나 잠깐의 화젯거리로 음반을 내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의 시선은 좀 거북하다. 작년에 발표한 싱글곡 ‘그리워서’는 어떤 홍보도 없이 ‘싸이월드’ 음악 차트에서 1위를 했으며 현재까지 9장의 프로젝트 앨범과 4장의 솔로 앨범을 낸 어엿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이주환PD(29)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는 경인방송 라디오(FM 90.7MHz) ‘박세민의 2시의 스케치’ 담당 프로듀서다. 더불어 10장이 넘는 싱글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본업을 갖고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요즘엔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시간 활용의 달인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확실히 시간 분배가 중요하긴 해요.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점심 때 1시간 정도 걷기를 해요. 걷다 보면 공상에 젖고 별 생각을 다하죠. 그 시간에 음악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파스텔블루는 ‘피디블루’인 이주환 PD와 홍대에서 인디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파스텔(본명 김국진)’이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그는 작사와 랩을, 파스텔은 작곡과 보컬을 맡고 있다.
“직장인이라고 해도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할 때까지 온전히 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틈틈이 가사도 써보고 ‘이번 음반은 어떤 컨셉트로 할까’, ‘피처링은 어떤 가수에게 맡길까’ 하는 생각을 해요.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녹음이나 실질적인 작업을 하고요.”
누구든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하고 싶은 일은 일단 해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한다.
“다행히 방송국 윗분들이 ‘오픈 마인드’를 가져서 제가 이렇게 과감히 음반도 낼 수 있는 거죠. 그분들의 이해가 없었더라면 제 꿈은 지금도 그저 가슴속에만 존재하겠죠.”
그가 두 가지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학창 시절부터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작곡한 노래가 테이프로 14집까지 있어요. 그 당시에는 ‘어른이 되면 진짜 앨범을 발표해서 ‘가요톱10’에서 1위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웃음).”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도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대하셨다. 그는 결국 일반 대학에 진학해 방송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막연하게 TV에 나가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했어요. 졸업 후 방송국 공채 시험에 응시했다가 라디오 PD가 됐죠. 어쨌든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직업이라 적성에 맞았어요.”
지난해 10월에는 그들의 발표곡 ‘그리워서’가 싸이월드 온라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더걸스의 ‘노바디’와 비의 ‘러브스토리’ 등 쟁쟁한 곡과 경쟁한 결과였기에 더욱 뜻 깊은 기록이다.
꿈은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
라디오 PD도 음악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가수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노래를 하는 PD’라서 좋은 점은 자신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는 점이다.
“PD만 하다 보면 ‘지금 상황이 가수들이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인지 체크할 수가 없어요. 가수 입장에서 늘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가능한 거죠.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방송 외적으로 가수들과 빨리 친해지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섭외도 잘 되는 편이에요.”
‘PD 겸 가수’의 입장은 어떨까? 라디오 PD라는 특성상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점은 도움이 된다. 또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오히려 걸림돌일 때가 많다고 한다.
“종종 제 프로그램에서 제 노래를 틀긴 하는데 눈치가 보여서 잘 못하는 편이에요(웃음). 또 PD가 음반 냈다고 하면 ‘그저 취미생활이려니’ 하는 선입견이 있어서 음악으로 승부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음악이 평가 절하되는 것 같아 속상하단다. PD가 본업이라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디지털 음반을 통해 더욱 노래를 많이 발표하고 가수로서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저는 1년의 계획을 미리 세우는 편이에요. 내년에 발표할 음반 계획도 이미 생각하고 있어요.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곡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오는 11월에도 싱글 앨범이 나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자주 음반을 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로 노래를 만드는 데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음반 역시 디지털 싱글이란 시스템이 있어 굳이 음반을 출시하지 않아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루트는 얼마든지 있다.
“음반을 내면 큰 돈은 아니지만 음원 수입원이라는 소득이 있어서 손익분기점은 항상 넘어요. 시간이나 노력, 비용으로 따져보면 모르겠지만 금전적으로 손해 본 적은 없어요.”
“‘뮤직뱅크’ 1위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용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이루지 못한 꿈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가슴에 묻고 오전 9시면 출근해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이주환 PD는 “일단 해보라”고 권한다.
“가수 중에 김광진씨나 페퍼톤스 멤버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음악을 하잖아요. 반대로 가수 박기영씨는 여행 책을 내고, 알렉스씨는 요리 책을 냈지요. 모두 ‘시작’이란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보통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시작을 하면 시간적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더라고요.”
이주환 PD도 하루를 빡빡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이주환 PD를 보면서 그와 ‘일상의 우리’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꿈’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단지 안일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변명이 아닐까.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