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 무료 진료하는 치과 전문의 홍수연의 나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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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마움의 표시로 김치, 고구마, 쌀 등을 가져오세요.
ㆍ마치 시골 병원 같아요”

서대문구 동교동 삼거리 소재의 고층빌딩에 위치한 'ㄹ'치과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특별한 병원이다. 치료비 수익의 일부분을 협력기관들이 선정한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무료진료에 써왔다. 그래서 개원 1년 만에 60여명의 환자에게 구강건강을 회복시켜줬다.

매주 토요일 펼쳐지는 나눔 이야기

불우이웃 무료 진료하는 치과 전문의 홍수연의 나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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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연(43) 원장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병원 이름 공개를 매우 꺼려했다. 여느 의사와는 좀 다른 모습이 의아하다. 돈을 내고서라도 광고를 하는 마당에 그녀가 언론을 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는 무료진료에 대한 제보를 받고 홍 원장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다. 원장은 흔쾌히 '병원에 한번 놀러오라' 했고 기자는 인터뷰 준비를 하고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홍원장은 그야말로 '놀러오라'는 말이었지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단다. 집요하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먼 길 달려온 기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는지 급한 환자의 치료를 마치고 한숨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기사화되는 건 괜찮지만 몇 가지 부탁이 있어요. 무료진료의 접수와 신청에 대한 심사를 병원에서 일체 진행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꼭 넣어주세요. 그리고 병원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홍원장은 17개의 공익단체 등과 연계해 그곳에서 심사를 거쳐 단체별로 의뢰하는 생활빈곤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에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그녀가 설립한 병원이지만 그녀 역시 '월급 의사'로 일하고 있다.

"병원은 2009년 1월에 개원했어요. 지금은 제 개인병원으로 되어있지만 올해부터 법인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장학재단에 기부돼 재단 부설 공익병원이 될 거예요. 즉 이 병원은 제 개인 자산이 아닌 거죠. 지금도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걸요."

그녀는 뜻을 같이 해준 치과의사들과 평일에 병원을 찾아주는 환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봉사활동을 위해 만든 병원이라고 딱히 홍보한 적도 없다. 병원 어디에도 무료진료에 대한 안내문조차 설치돼있지 않다. 그래도 입소문을 통해 알음알음 알고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치료를 받으러 올 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쾌적한 시설과 첨단 장비, 실력있는 의료진이 받쳐줘야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치과의사도 각 분야별 전문의로 상근의사 4명과 비상근의사 3명이 포진돼있다. 홍 원장의 병원은 지난 1년간 무료진료 대상자 60명에게 총 6천만원 상당의 진료를 했다.

"무료 환자들을 위한 치료는 음식을 제대로 드실 수 있도록 틀니, 임플란트, 잇몸치료, 보철치료가 대부분입니다. 비록 무료로 해드리지만 일반 환자들과 다르지 않아요. 똑같은 재료와 기술을 사용해 정성껏 치료하죠. 굳이 단점이라면 토요일에만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홍원장은 병원 설립의 모티브를 인도의 '아라반드 안과병원'에서 착안했다.

"그 병원은 최고급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쌍동이병원 두 곳을 운영하고 있어요. 같은 진료를 하지만 한 곳은 고가의 진료비를 받고 부유한 이들을 상대로 진료를 하죠. 다른 한 곳은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하위층에 있는 불가촉천민들에게 상대로 무료진료를 해요. 이런 병원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최선의 병원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 병원을 우리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근데 쉽지 않아요. 시설에 욕심을 부리다보니 부채 15억에서 시작했고 아직 영업이익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요(웃음)."

홍원장은 알게 모르게 봉사하고 있는 치과의사들이 사실 굉장히 많다며 겸손해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료기관의 설립목적인 '사회적 기여'를 좀 더 체계적인 무료진료 시스템으로 운영할 뿐이라고 한다.

치료비 대신 콩, 쌀, 떡을 가져오는 환자들

불우이웃 무료 진료하는 치과 전문의 홍수연의 나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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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진료를 심사하는 기관에서 선발돼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생활보호수급자로 장애인이나 한부모가정, 신용불량자, 새터민, 외국인노동자, 독거노인 등 다양하다. 올해는 특히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치료해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들은 내국인들에 비해 사회복지 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황에 따라 원칙적으로 무료진료를 하지만, 일정한 진료비를 마련할 수 있는 분들에게는 진료비 감면 정도를 해 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중에서 진료비를 내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한번도 치료비를 내지 못한 새터민이 계셨어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 열심히 새출발하려다 정착비를 사기 당한 분이에요. 딸이 중학생이었는데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 죄송스러워했어요. 그래서인지 제 기억에 크게 남네요."

또 1997년 IMF때 보육원에 보내진 초등학교 5학년생 아이도 있다. 언청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천성 구순구개열 환자로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고 보육원에 맡겨진 상태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치열교정과 여러차례의 뼈이식, 성형수술 등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홍 원장이 나서서 아산병원에서 첫수술을 할 예정이다.

"저희 병원이 서울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마치 시골병원 같은 풍경도 볼 수 있죠. 치료 받은 분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김치, 고구마, 쌀 등을 가져오세요.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 한분은 한국의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직접 만든 떡을 포장해 오셨더라구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아직 힘든 점도 많다. 가끔 소문을 듣고 불쑥 찾아와 무료진료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틀니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적응하려면 불편한 것이 당연한데 무료로 진료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더 불편한 게 아닌가 호소하는 환자들도 간혹 있다.

"어떻게 아셨는지 불쑥 오시는 분도 많아요. 그중에는 '진료를 못 받으시면 식사를 못 하시겠구나'하는 판단이 드는 분도 있어요. 그렇다고 어려운 분들 모두에게 제가 무료진료를 해드릴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안아드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늘 환자분들과 대화하려 노력하고 가끔 안부전화하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공익사업팀에서 모시러 가기도 하고 그래요."

알고 보니 홍 원장의 나눔 실천에는 특별한 가족력이 있었다.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인권운동가의 대부, 고(故) 홍남순 변호사가 그녀의 큰할아버지다.

"저희 집안의 전통 중 하나가 스무살 성인이 되면 상속포기각서를 쓰는 거예요. 아버지는 오히려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결국 월급쟁이로 퇴직하시면서 모든 재산을 장학재단과 사회복지재단으로 사회에 환원하셨어요."

홍 원장도 현재 아버지와 조부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는 사회 나눔 실천가인 것이다. 지금은 개원초반이고 세계적으로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라 여러 가지로 힘든 것 투성이지만 그녀가 결심했던 첫마음을 그대로 이어갈 계획이다. 앞으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기업체와 연계한 봉사활동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사랑의 스케일링'이라고 해서 저희와 연계한 기업의 사원께서 스케일링을 받으면 그 진료비를 특정 단체를 위해 쓰는 거예요. 당신들이 치료를 받는 일 자체가 좋은 일도 하는 게 되는 거죠. 그러면 나중에 그분이 그 단체에 찾아가 봉사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봉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 눈을 돌려보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홍수연 원장은 그 기회를 나눠주고 있는 격이다. 특별한 나눔의 표본을 만들어가는 그녀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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