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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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바닥에 누웠고 때로는 꼿꼿이 섰다. 강자를 대할 때는 빈틈없었으나 약자를 향해서는 눈물을 훔쳤다. 파란만장했던 지난 2년을 지나 그는 오늘도 보통사람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무한 책임을 짊어졌던 2년, 스스로를 돌아본 성찰의 시간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설 연휴, 공무원과 교직원의 가입 활동 의혹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경찰수사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던 때였다. 검찰의 강압수사에 민노당 의원들이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터라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검·경찰의 압박에 그가 많이 예민하고 지쳐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여의도에서 만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41)은 웃는 얼굴이었다. ‘2009년 가장 돋보이는 의정활동을 벌인’ 의원, 한미 FTA 안건을 강행처리한 한나라당의 명패를 내동댕이치고 총리 후보 청문회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소녀 같은 얼굴로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딪히고 휘청거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지난 2년이었다. 국회의원으로 산 2년 동안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녀의 첫마디는 “무거웠다”였다.

“굉장히 무거웠다고 표현해도 다 표현하지 못한 느낌이에요. 무한 책임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나, 얼마만큼 할 수 있고 얼마만큼 해야 하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된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고요. 더 낮아지고 진실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는 “국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라고 말을 이었다. 같은 국회의원이라도 국회의원인 사람과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는 게 그의 말. 둘은 직위는 같지만 신분은 다르다. 전자에게 국회는 모든 것을 보장받는 공간이지만 후자에게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갇힌 공간이다.

“저를 만나러 오는 분들 중에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국회 현관에서 입장을 제재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회가 그런 곳이에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제 목도 뻣뻣해질 것 같더라고요. 완벽한 책임을 지지 않은 경우도 많고 어느 정도 변명하면 넘어가는 곳이기도 하고요. 흔히들 ‘사진 찍는다’고 하죠? 체면치레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곳이어서 제가 과연 바르게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습니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2년 차 초선 의원이 바라본 ‘둥근 지붕’ 아래의 모습이다. 젖지 않기 위해, 물들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그의 심정은 그가 최근 발표한 정치 에세이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도서출판 알다)에도 잘 나타나 있다. 2년 동안의 의정활동 기록을 적은 이 책에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농성장, 용산 참사 현장,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투쟁 현장 등 여러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와 국회에서 밤을 새며 회의장에서 썼던 글들이 담겨 있다. 숱한 에피소드가 엮여 있는 기록 안에는 ‘낮아지겠다’, ‘진실해야져야겠다’는 말이 기도처럼 등장한다. “성직자가 쓴 글인 줄 알았다”고 책 감상을 전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국민의 소명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그에게 ‘성직자’와 동의어일 수도 있겠다. 그간 그가 의정활동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때로는 투사, 때로는 성직자였다. 여당이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본회의장에서는 사력을 다해 저지하다 쓰러지기도 했고, 촛불시위 때 서울광장에서는 경찰과 충돌하다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또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민중과 노동자들이 길 위에 내몰린 현장에는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 몸과 마음을 나눴다.

“2008년 초에 비례대표직을 제안받고 이틀 만에 결정을 했어요. 인생을 바꾼 이틀이었죠.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심 끝에 수락을 했는데 국회의원이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고민했겠죠(웃음). 여러 현장에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걸 보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그런 일을 해결하는 것이 저의 임무임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감도 많이 느꼈어요. 법의 진공상태, 국가권력의 정당한 행사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힘들었죠. 생각해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싶을 만큼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네요.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인권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이상은 높이고 몸은 낮추다
언제나 보통사람임을 강조하는 그지만 사실 그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다. 대입 학력고사 때 전국 여자 수석을 차지했고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에는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사법고시 합격 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행보는 인권변호사 시절 가졌던 신념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이 그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쟁하게 했을까.

“부모님이 충북 분이세요. 결혼하고 상경하신 두 분이 봉천동에서 장사를 시작하셨고 산동네 재래시장 지하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여름에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차 이불이 흥건하게 젖었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형편이 나아져 집도 이층집으로 올라갔죠. 서문여중 때까지만 해도 한 반에 잘사는 집 친구들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 친구들이 반반이었는데, 서문여고에 올라가니 대부분 잘사는 친구들이더라고요. 중학교 때 공부 잘했던 친구들 중 집안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죠.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대학을 가면서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어요. 어떤 우연이 나와 그들의 운명을 갈랐을까 하는 생각에 책임감도 느꼈고요.”

인권변호사로서의 길을 생각하게 된 건 대학 시절이었다. 87학번인 그는 대학 1학년 때 6월 항쟁을 겪었다. 사회에 대한 책임, 변화를 위한 자신의 기여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가난했던 기억, 또 유복하게 살았던 기억을 떠올려보게 됐어요. ‘기왕에 사는 것 쓸모 있게 살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대학 졸업 무렵 동두천 기지촌에서 만난 한 소녀는 그의 인생에 나침반을 놓는다. 미2사단 병력이 주둔하던 그곳은 미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클럽 관계자들과 성매매 여성들, 그들과 함께 지내는 히빠리, 기둥서방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곱슬곱슬한 금발에 예쁘장한 여섯 살 소녀는 백인 미군과 한국인 성매매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는데 아빠는 본국으로 떠나고 엄마는 빚에 허덕이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상태였다. 도망간 아이 엄마가 돌아와 빚을 갚지 않으면 아이가 좀 더 자란 후 성매매를 시켜 빚을 받아낼 요량으로 클럽 주인이 아이를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천진난만한 여섯 살짜리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 비정한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처럼 커졌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그때다. 사법고시 합격 후 10년 동안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고 전방위적인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금도 여성과 인권, 그리고 비정규직은 언제나 그의 주요 관심사다.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 묻자 ‘일하는 여성들의 권리’라는 답이 돌아온다. 여성과 인권, 비정규직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답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권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일자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선 일자리 자체가 없고 실직도 많아요. 늘어난 실업자의 상당수가 여성이고요. 현재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과 상황은 매우 불안정합니다.”

흔히 여성 지위를 이야기할 때 여성 국회의원의 수나 늘어난 여성 고위 공무원의 수 등을 내놓는 통계가 몇 가지 있다. 평생 그 통계 안에서 살아온 그이지만 그가 느끼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갓 넘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저임금에서 플러스 30원, 운이 좋으면 플러스 100원이에요. 대부분의 여성 노동이 위탁되어 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본사와 위탁 업체 간의 계약이 끊기면 대량 해고로 이어지죠.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분들도 계시고 아이 키우고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요.”

그 역시 두 아이의 어머니로 가정을 꾸리는 주부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남편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정평), 아들 준범, 승범군과 함께.

남편 심재환 변호사(법무법인 정평), 아들 준범, 승범군과 함께.

“눈을 돌려보면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세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야기하는 그런 통계에 포함돼 살았지만, 저는 무슨 우연 때문에 여기 있고 그분들은 또 무슨 우연 때문에 그곳에 있나 생각을 하게 돼요. 우연과 우연이 만나 운명이 되는 거잖아요. 여러 우연이 모여 형성되는 개인의 삶이, 자신의 의지로 뚫기 힘든 벽을 만들어내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누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겠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하여
평범한 가정을 꿈꾸던 그는 스물아홉에 사법연수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다. 인권 문제는 변호사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일로 여겼고 변호사로 일하던 10년 동안 아이들의 엄마로서 꿈꾸던 소박한 삶을 살았다. 변호사 일을 계속 했다면 아마 그렇게 소박하게 살았을 것이다. 국회로 온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침 7시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밤 11시쯤 집에 들어가요. 요즘은 일찍 퇴근하는 편이에요. 집에 가면 못 본 자료들 정리하느라 아이들을 볼 시간이 없죠. 지금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라 한창 엄마의 관심이 필요할 때인데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이번 설에도 같이 지내지를 못했어요.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이들 모르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다 알고 묻더라고요.”

엄마에게 험한 일이 생기면 표도 안 내고 있다가 나중에 넌지시 이야기한단다. 알면서도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면 “일곱 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단다.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럴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고 매일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저녁이면 김치찌개 끓여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가족을 위해서요. 저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밖에는 그의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휴 동안 당사에서 농성하느라 가족들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고.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며 뒤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보통사람의 행복이 가득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이주석, 도서출판 알다 ■ 참고서적 /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도서출판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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