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잘 모르는 나전칠기의 세계
단단한 자개를 일일이 오려 붙이고 표면에 옻칠을 반복하는 어려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전칠기는 매끄러우면서도 검다. 붉은 칠 바탕 위에 천연 자개가 보여주는 영롱한 빛의 반짝임으로 화사하고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다.
고려시대에 꽃을 피운 후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대표적인 우리나라 공예품 중 하나이며,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경전을 넣는 함이 나전으로 제작됐을 만큼 당시 선조들의 나전칠기에 대한 사랑은 청자 못지않게 대단했다. 이후 조선시대로 접어들며 불교에서 유교로 국교가 바뀌는 상황에서도 나전칠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남아 있던 훌륭한 기법들이 한국적으로 더 아름답게 승화된 후 가구로 변화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상태다.
“나전칠기는 귀족 공예라고 할 수 있어요. 나전을 하지 않고 가구를 써도 상관없지만 옻칠을 하고 나전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귀한 작업이기 때문에 주로 상류층이나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문화죠. 지금도 여전히 일반적이지는 않고 일부 상류층만 주로 사용하고 있고요.”
100%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고가인 나전칠기 가구는 일반인들에게는 선뜻 다가서기 힘든 것이 현실. 장현자(57)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전칠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통적인 것을 받아들이면서 현 시대에 맞는 감성을 담은 나전칠기 연구를 끊임없이 해나가고 있다.
“식탁에 나전을 넣는다거나 콘솔을 나전 기법으로 만들고 있어요. 티 테이블이나 장식장 등 이 시대에 맞는 아이템에 전통적인 나전 기법을 적용해서 작업하는 거죠. 특히 최근에는 우리 것을 찾기 위한 시대적인 요구가 강해졌어요. 옛것에 대한 목마름도 그렇고. 그래서 조금씩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요.”
현대미술과 접목시킨 나전칠기 전시회를 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외국 문물에 더 익숙한 젊은 층에 우리 가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전통이 전통으로 계속 전승되기 위해서는 미래를 여는 주인공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구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명품이에요. 그런데 정작 젊은이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일부 계층만 알고 향유하면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거든요. 전시회를 통해 나전칠기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나전칠기에 바친 33년 외길 인생
장현자 대표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전칠기와 함께하고 있다. 지인이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도자기 제품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던 때가 그녀 나이는 스물다섯. 어린 나이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새로운 공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자기나 나전칠기는 둘 다 우리의 전통 공예품들이죠. 그런데 그릇에만 국한되는 도자기에 비해 나전칠기는 더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그릇, 식탁 등 우리 실생활의 물건들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어요. 그래서 관심을 옮기게 됐죠.”
장 대표는 1978년에 하얏트 호텔에 처음으로 가게를 열었고, 1987년부터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도 나전칠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하얏트 호텔에 있던 상점을 공예갤러리로 새롭게 단장했다.
“매장이 호텔에 위치하다 보니 외국인들이 주로 물건을 사가요. 청와대나 외교통상부 관계자들, 한국에 방문한 외국 국가 원수들과 같은 고위층들이 즐겨 찾고요. 하지만 15년 전부터는 일반인들을 위해서도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어요.”
그녀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나전칠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40년 전에는 나전칠기 장롱 하나가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였다. 때문에 나전칠기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 그 사람이 부자인지 가늠할 정도였다.
그만큼 가격이 비싸다 보니 사람들은 많은 돈이 드는 나전칠기를 전통적으로 생산하기보다는 마구잡이식으로 비슷하고 저렴하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바로 자개장롱이 유행하던 시기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나마 소수였던 나전칠기 사업자들은 위기를 맞아 파산했고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던 장 대표만이 홀로 살아남아 지금까지 오게 됐다.
물론 이후에도 위기는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들을 상대로 판매했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거나 오일 쇼크가 발생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는 그들이 국내를 찾지 않아 사업도 큰 침체기를 맞았다. 급변하는 정세에 민감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런 일들이 생기면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죠. 하지만 제가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취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고요. 그저 장인들과 함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업을 꾸준히 지켰어요. 제가 주저앉으면 국내 나전칠기 사업은 사장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힘을 냈죠.”
지켜내야 할 전통, 오리엔탈 감성의 세계화
장 대표의 목표는 나전칠기를 좀 더 현대적으로 발전시켜서 후손들에게도 꾸준히 전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의 첫째 딸은 일찍이 나전칠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은 그녀가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나전칠기에 담긴 우리만의 독특한 감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의 문화에 나전칠기의 독특한 옻칠 기법을 접목시켜서 퓨전미를 선보이고 싶다.
“서양인들에게는 오리엔탈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서양에 비해 우리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전통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죠. 숫자적인 개념으로 딱 떨어지기보다는 우리만의 동양미, 과학이 아닌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통에 대한 현대인들의 정확한 인식이다. 장 대표가 바라보기에 사람들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너무 모르고 있다.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교육에서부터 지나치게 서양식으로 흘러가고 있고, 사회 전반에 걸친 대부분의 대중문화가 서구화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36년간의 문화 말살 정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어요. 최근에는 그나마 선조들의 문화를 찾기 위한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고 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해요. 알게 모르게 잠재된 의식에서 전통을 망각한 채 살고 있죠. 마음이 아파요.”
쏟아지는 서구 문물 속에서 장현자 대표가 나전칠기에 한평생을 바쳐온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공예문화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가 우리에게 선물한 ‘전통’이라는 귀한 가치를 먼 미래의 후손들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시원스레 웃는다.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이 전통이라는 말을 촌스러운 구시대 유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전통은 선조들의 문화 중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쁜 것들은 걸러내고 가장 좋은 장점들만 추려 내려오는 것이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글 / 윤현진 기자 ■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