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교사 김형태, 교육의원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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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 쓰기 즐기는 국어선생님을 학교 비리들이 투사로 만들었죠”


그는 작년 초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다. 시를 좋아하고 아이들의 상담을 잘 들어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그가 학교 밖으로 내몰린 것은 지난해 2월. 학교 재단 비리에 맞서다 교직을 파면당한 것이다. 그 후 1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학교 비리를 파헤치는 교육의원에 당선돼 당당히 돌아온 것이다. 서울시 교육의원 김형태 당선자 이야기다.

선생님, 거리의 시위자가 되다
해직 교사 김형태, 교육의원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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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당선자가 있다. 서울시 제5선거구(강서·양천·영등포) 교육의원에 당선된 김형태(44) 의원이다. 국어선생님이던 그는 학교 재단 비리에 맞서다 근 20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내쫓기듯 해직을 당했다. 그러나 1년 후, 그가 돌아왔다. 학교 비리를 감시하는 교육의원이 되어 말이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저는 그저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했을 뿐인데 솔직히 말해 어이없는 해직을 당했죠. 경쟁에 놓여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어요. 획일적으로 0교시에 불러내고 8교시 및 야간자율학습도 강제성을 띠고 급식의 질도 떨어졌죠. 그 외 동창회비, 공사 비리 등 여러 가지 비리가 있었어요.”

아이들은 학교를 교도소라고 불렀다. 학교는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 그런 현실에서 그는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 애썼다.

“권위보다는 진정성이 중요하죠. 매를 들 시간에 아이들 이름 한 번 더 불러줍니다. 매달 생일을 맞은 학생들에게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로 작은 잔치를 열어줬어요. 수학여행 때는 추억 만들기 일환으로 교사가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감동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어요.”

학부형은 자녀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학기 초에는 ‘이번에 담임을 맡은 교사 김형태입니다.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지도하겠습니다’하는 인사 문자메세지를 학부형들에게 보냈다. 또 시험기간이나 학사일정을 알리는 문자서비스도 해왔다. 종종 편지를 써서 아이들 편에 부치기도 했다. 그는 안팎으로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교사였다. 학생들은 그를 ‘사막 같은 학교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자연스레 많은 아이들이 제게 고민 상담을 하러 왔지요. 그 중에는 학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럼 제가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제가 교장, 교감선생님께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죠.”

학교 운영을 독자적으로 해온 재단 측과 선생님들 간의 갈등이 생겼다. 학교 안에서 아무리 해결해보려 애썼으나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재단의 비리를 교육청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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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순진했죠. 결국 교육청은 재단 편에 섰어요. 교사들의 대표해 공익제보한 저만 파면당하고 말았죠. 학교 측에서 보면 전 분명 눈엣가시였겠죠.”

지난해 2월 일제고사로 공립에서 7명의 교사가 해직되고 사립인 세화여중에서도 해직교사가 나오자, 학교측에서는 재빠르게 징계위를 열어 김형태 선생님을 학교 밖으로 내쫓았다.

3개월 후에 교원소청위으로부터 파면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파면이 취소됐지만 학교는 5일 만에 직위해제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는 홀로 학교와 교육청,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비리 학교에 결투를 신청하다
“저는 아이들 입장을 대변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해직이라니, 비상식적인 일이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시위라도 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학교와의 싸움을 두고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말했다. 외로운 싸움에 몸과 마음이 상하니 대안학교나 학원 자리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내는 꽃을 좋아하는 그에게 꽃집을 차려주겠으니 고생하지 말라 했다.

“제자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가르친 대로 행동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라’고 말했는데 제가 타협을 하면 안 되죠. 정의와 양심이 반드시 이기는 걸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교사니까요.”

사실 민사 소송을 해도 그는 학교에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옳은 것이 이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09년 3월 10일부터 218일간 1인 시위를 했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았어요. 학교는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하고 경비원을 시켜 멱살잡이와 주먹질을 가했죠. 재단이사장에게는 우산 꼭지로 찔려도 봤어요. 뉴라이트 세력들이 맞불 집회를 벌이기도 했죠.”

해직 교사 김형태, 교육의원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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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신적으로 벼랑 끝까지 몰린 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날, 실의에 빠진 그는 분신까지 생각했다. 자신의 죽음이 잘못된 교육 현실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면 기꺼이 그럴 각오가 돼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제 의중을 눈치 챘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변화가 없다. 너의 죽음은 속된 말로 개죽음이다. 오히려 끝까지 살아남아서 싸워라’고 충고하더군요. 맞는 말이었죠. 그래도 진보 언론에서 많이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작년 10월 국감에 교육 비리 문제가 이슈화됐죠.”

이 일로 그는 한국투명성기구가 주는 ‘투명사회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양천고에 대한 특별 재감사가 이뤄졌다. 학교가 교실에서 조용히 시 쓰기를 즐기는 국어선생님을 투사로 만든 것이다. 지난 1년간 공동대책위를 구성하여 1인 시위에 도움을 줬던 시민 단체나 관계자들은 그에게 교육의원 선거 출마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고사하다 결심한 이유가 서울시 교육청 덕분(?)입니다. 비리를 신고한 교사가 파면을 당해도 뒷짐을 지고 있었어요. 최소한 비리를 제보한 사람의 인권은 보호해줬어야지요. 학교 관계자들은 제가 제보한 걸 이미 알고 있더군요.”

양천고 제자들이 김형태 의원이 당선을 축하하며 보낸 난이다.

양천고 제자들이 김형태 의원이 당선을 축하하며 보낸 난이다.

단위 학교들도 도덕적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감독기관도 제대로 학교를 감시해야 한다. 서울시 교육청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는 생각에 그는 교육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아내는 ‘사고 쳐서 해직당했으면 됐지, 무슨 사고를 더 치냐’며 크게 반대했죠. 저는 ‘단 한 번만 마지막 결단을 믿어달라’며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끝까지 승낙을 받지는 못했지만 결국에는 선거운동을 돕더군요. 가족에게 미안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당선이 돼서 다행에요.”

그의 어머니도 시골에서 올라와 아들의 명함을 돌리며 선거운동을 했다. 아들의 해직 소식을 알고 1년간 눈물로 보냈던 어머니다.

“한 달이 넘게 영등포 전철역에서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입니다’고 외치며 명함을 돌리셨어요. 정작 6월 2일에는 병이 나 쓰러지는 바람에 투표를 못 하셨어요. 영등포 쪽에서 표가 나온 건 상당수가 어머니의 힘입니다.”

그는 집 담보대출을 받아 선거자금을 마련했다. 온몸을 던져 선거에 임했고 사람들에게 그의 진정성이 통했다. 그리고 이겼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아빠가 해직을 당해 혼란을 겪고 선거한다고 방치했던 중학생 두 아들, 화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진 아내와 어머니에게 미안합니다. 가족에게는 정말 못할 짓을 했어요.”

그는 인터뷰 도중 팔을 걷고 영광의 상처(?)를 보여줬다. 팔꿈치 윗부분에 10cm 정도의 깊은 수술 자국이 있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신체 부위 중 가장 약한 곳에 충격이 오는 것 같아요. 과거에 팔을 다쳤는데 자꾸 저리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잘못된 신경을 찾느라 바늘과 전기로 신경 하나씩 찌르는데 마치 고문처럼 고통이 심했어요.”

해직 교사 김형태, 교육의원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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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에서 다시 공인이 되다
교육의원은 교육감을 견제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국회의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선거하기도 힘들며 앞 번호를 받을수록 당선이 유리해지는 맹점이 발생한다. 그러나 김형태 의원만은 예외였다. 그의 기호 번호는 꼴찌, 7번이었다.



“생업을 뒤로하고 뛰어준 숨은 공신들이 많습니다. 학생들, 학부모들, 졸업생들 덕분입니다. 저는 장학사나 교장 출신도 아니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을 선택해 강하고 큰 사람을 부끄럽게 하라는 깊은 뜻으로 제가 됐다고 생각해요.”

당선이 된 후 축하 문자와 전화에 그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따뜻한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직장 등의 일로 지방에 잠시 거주하고 있던 제자들은 제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랴부랴 서울에 와서 투표를 했더군요. 당선되고 나서 저보다 더 엉엉 우는 분들도 많았죠.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작은 희망을 드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통쾌하다’는 문자와 함께 ‘앞으로 양천고등학교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를 묻는 질문도 많다. 양천고에서는 아직 그의 당선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심이 들어갈까 오히려 조심스러워했다.

“양천고 문제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원칙과 기준을 갖고 해야 합니다. 지금 검찰 수사 중이라 추이를 지켜봐야지요. 비단 양천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 비리는 반드시 척결돼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향은 외부의 힘이 아닌 학교 스스로가 반성하고 자정해나갔으면 하는 겁니다.”

김형태 교육의원은 ‘교육 비리는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도둑질’이라고 말한다. 학교가 아이들을 상품으로 보고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교와 학원이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 때문에 이사 가고, 이민 가고, 출산을 포기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건 교육이 아니라 사육입니다. 경쟁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충분히 경쟁하고 있어요. 지나친 무한 경쟁으로 아이들은 절망에 내몰리고 있어요.”
그는 선거 때보다 더욱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가 바탕이 돼야 새로운 교육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핀란드의 교육처럼 무한 경쟁이 아닌 상호 협력을 강조해야 해요. 우리는 모든 게 차별이죠.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틀을 만드는 것이 저희들 역할입니다.”

‘학생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교, 학부모님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학교’, 김형태 의원이 말한 이상적인 학교의 정의다. 당선이 끝은 아니다. 이제야 시작이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사람 인(人)이 새겨진 도장을 꾹꾹 찍어본다.

■ 글 / 이유진 기자 ■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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