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몸이 천 냥이라고 하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 몸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말이다. 건강 전문가들은 “맑고 깨끗한 눈은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눈은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이는 곳으로, 몸의 건강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이재범(56) 교수는 우연히 찾은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평소 저녁이 되면 눈이 침침해지고 자주 다래끼가 나서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그저 ‘요 며칠 피곤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터였다. 녹내장은 높은 안압 때문에 눈에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이 손상돼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질병으로, 이재범 교수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30~40% 이상의 시신경이 손상된 상태였다. 뚜렷한 발병 원인도, 손상된 신경을 회복할 치료법도 알 수 없는 터라 그저 절망스럽기만 했다.
“다래끼가 가라앉질 않아서 잠시 동네 안과에 들렀는데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번 받아보시죠’ 그러는 거예요. 뭔지 모르는데도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결국 큰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니 양쪽 눈 시신경이 다 파괴됐대요. 그때까지만 해도 몸이 아프더라도 병원에만 가면 금방 다 해결되는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안압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뿐이었어요.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직전이라는 진단까지 받았죠.”
당시 이재범 교수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막 교수로 임용돼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차였다. 아직 국내에 개인용 PC조차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1986년, 이 교수는 경영정보시스템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전공하고 돌아와 경영에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의 황무지 단계였던 이 분야가 점차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이 교수의 생활은 더욱 빡빡해졌다. 강의, 대학원생 지도, 연구, 정부와 기업 컨설팅 등 그를 찾는 곳이 많았고 본인 스스로도 학자로서 마음껏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뿌듯함에 하루 걸러 밤을 새며 일에 몰두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물론, 식사는 그야말로 잡히는 대로 시간 되는 대로 ‘때우기’ 일쑤, 기업 미팅으로 인한 잦은 술자리와 잘못된 식습관이 더해져 그야말로 몸을 ‘엉망’으로 혹사시키고 있었던 것.
“원래 밀가루 음식이나 빵, 과자 등을 무척 좋아해서 거의 달고 살았어요. 아침은 빵, 점심은 자장면, 저녁은 라면으로 하루를 보냈으니까요. 미국 유학 시절 주식으로 먹었던 패스트푸드와 달콤한 과자, 사탕, 껌도 즐겨 먹었고요. 물 마시듯 커피를 마시는 커피 마니아이기도 했어요. 늘 일이 많고 피곤하니까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면 무거웠던 머리가 ‘반짝’살아나는 것 같아서 하루에 스무 잔씩 마신 적도 있어요. 늦은 저녁 자리에서 술도 자주 마시고, 담배도 피웠고요. 참, 늘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도 책상에 올려놓고 매일 밥처럼 복용했어요. 그때는 그런 것들이 제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몰랐죠. 아니, 관심조차 없었어요.”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히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씩 푹 자고 일어나도 만성피로가 떨어질 줄 몰랐고 어깨, 목, 허리 등이 뻐근해 앉아 있기 힘들 때도 많았다. 늘 입술이 부르트고, 조금만 날씨가 변덕스러워지면 바로 감기에 걸려 며칠씩 앓아눕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였을 그 증상들을 방치해둔 것이 결국 녹내장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대대적 식생활 개선으로 근본 원인 치료
녹내장 진단을 받고서야 정신이 번쩍 든 이재범 교수는 건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눈이 흐려지고 언젠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실로 엄청났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앞으로 이루고 싶은 수많은 목표가 자꾸만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녹내장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을 때를 상상해보면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특히 확실한 발병 원인이 있어서 그것만 제거하면 나아진다는 희망도 없이 계속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덮어가며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거기서 현대의학의 한계를 느꼈어요. 살펴보면 즉각적으로 병의 증상은 고칠 수 있지만 병의 본질적인 뿌리는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이 많아요. 하다못해 감기조차 그저 증상을 다스리면서 앓아내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이러한 병이 찾아오는 진짜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이 교수는 그때부터 온갖 건강 서적과 관련 자료들을 찾아 공부를 했고, 질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되짚어보며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게 됐다.
결국 그가 도달한 결론은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먹는 음식이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것. 자신만 봐도 음식 섭취로 인해 생긴 몸속의 독소 때문에 병이 온 것인 만큼 좋은 음식으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독소를 제거한다면 더 이상 시신경이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본격적으로 대대적인 식생활 개선에 착수했다.
이재범 교수가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솎아내는 것, 이른바 ‘먹지 마 건강법’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주로 어떤 음식들을 섭취하는지 살펴보고 이 중에서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을 골라내는 것이다.
“건강해질 것을 다짐하고 제 식단을 살펴보니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고쳐야 할 것들이더군요. 사실 식습관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음식이 몸에 좋고 나쁜지 잘 알지만, 24시간 내내 집에서 다른 일도 하지 않고 음식만 챙겨 먹는 게 아닌 이상 좋은 것만 찾아 먹기는 무척 어려워요. 주변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거든요. 너무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건강에는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적어도 내 몸에 해로운 음식들부터 지워내기로 결심했어요.”
우선 각종 인스턴트식품과 술, 담배를 끊었다. 커피도 줄이고 그토록 좋아했던 빵을 비롯한 밀가루 음식도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조미료와 인공색소가 들어간 음식도 골라냈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예쁜 색의 음식일수록 화학첨가물이 잔뜩 함유된 인공색소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일반 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가능한 한 자연색에 가까운 것들을 먹었다. 특히 식품첨가물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몸속에 있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합성시켜 내보내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편의점 등에서 주로 판매하는 즉석식품 및 저장 기간이 긴 식품들도 모두 제외시켰다.
“몸에 나쁜 음식들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확연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어요. 거의 1년 내내 달고 살았던 감기도 떨어지고 몸도 무척 가벼워졌어요. 두통이나 소화불량도 싹 사라졌고요. 예전엔 한 달에 두세 번씩 나던 다래끼나 입술 물집도 점점 한 달에 한 번,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이런 식으로 횟수가 줄어들면서 요즘은 전혀 나질 않아요. 몇몇 음식을 가려 먹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더욱 열심히 실천하게 됐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을 이룬다
절대 안 되는 것부터 솎아내는 ‘먹지 마 건강법’“한의학에서는 모든 질병 치료의 근본을 ‘해독’과 ‘보기’라고 했어요. 독소와 노폐물을 제거하면서 몸의 기운을 보하는 것이죠. 쥐눈이콩과 같은 해독 음식을 가까이 하고 자연 발효한 된장, 고추장 등을 이용해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좋아요. 저는 끼니 때마다 된장찌개, 자연 현미식초, 청국장 등과 같은 자연 발효 음식을 한 가지 이상 챙겨 먹고 있어요.”
또, 이 교수는 현미로 밥을 지어 먹고 현미 껍질이나 통밀 껍질을 갈아 가루로 만들어 먹고 있다. 이때는 한 번에 20번 이상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 5대 영양소의 고른 섭취를 위해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식품을 챙겨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실 음식만으로 비타민,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가공식품 섭취를 줄여 그나마 체내에 있는 비타민, 미네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던 중, 또 하나 발견한 것은 바로 ‘화식’이 우리 몸을 망친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 음식을 살펴보면 익힌 음식과 생채식 비율이 8:2 정도예요. 하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거꾸로 생채식을 80% 정도 먹는 것이 좋아요. 우리 몸의 모든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효소가 필요한데, 한 효소는 한 가지 작용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영양소가 체내에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효소 활성도가 낮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요. 그런데 효소는 열에 약해서 40~50℃ 정도만 되어도 바로 소실돼요. 생식에는 효소가 살아 있기 때문에 고스란히 섭취할 수가 있죠.”
생식은 대체로 흡수와 함께 스스로 소화가 되는 식품들이기 때문에 생식 비율을 높이면 체내에서 소화를 위한 에너지를 덜 사용하게 되므로 대사활동이나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몸에 독소가 쌓이지 않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퍼져 있는 작은 실핏줄에도 혈액이 원활하게 전달될 수 있어 질병이 생기지 않고 항상 맑은 몸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100% 완벽한 자연식을 고집하기보다 실천 가능한 것만 꾸준히
10여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자연식·발효식 밥상을 고집하고 있는 이재범 교수는 본인이 직접 그 엄청난 효과를 체험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바른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제가 ‘이런 건 먹으면 안 된다’, ‘이건 먹기 싫어도 먹어라’며 잔소리를 하니까 처음에는 좀 피곤해하더라고요. 자기는 그냥 건강 생각 않고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그러다 몸에 문제가 생기거나 어딘가 아프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요. 그런데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잖아요. 대부분 상식적으로도 알고 있는 것들이죠. 중요한 건 현실 속에서 얼마나 꾸준히 제대로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따라서 반드시 ‘어떤 음식을 골라 어떻게 먹어야 한다’를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는 방법을 찾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선을 정해 실천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가끔 제게 ‘그렇게 음식을 따진다면 밖에서 식사할 때는 먹을 곳이 하나도 없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좋은 재료만으로 정직하게 음식을 내놓는 곳이 얼마나 되겠어요. 일일이 모든 식사를 챙겨 다닐 수도 없고요. 그래서 평소에는 ‘먹지 마 건강법’ 정도만 실천하고, 대신 발효 생식환을 가지고 다니면서 화식을 많이 했거나 밀가루 음식 등을 먹었을 때 바로 챙겨 먹어요. 그러면 흰 쌀밥을 먹었더라도 현미를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저녁 약속이 많은 편인 생활 패턴을 고려해 집에서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끼니인 아침에는 반드시 자연식을 지킨다. 일어나자마자 차갑지 않은 생수 한 컵을 꼭꼭 씹듯이 마시고 채소를 갈아 마신다. 그러고 나서 토마토를 하나 챙겨 먹은 뒤 발효 생식으로 식사를 하는 편이다.
“과일은 소화 흡수력이 무척 높기 때문에 체내에 흡수되면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요. 따라서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함께 먹으면 소화에 충돌이 일어나 오히려 몸에 나쁜 영향을 줘요. 사람들의 잘못된 습관 중 하나가 식후에 과일을 먹는 거예요. 과일은 최소 식사 20~30분 전에, 혹은 아침 공복에 먹는 것이 가장 좋아요.”
아침식사 후 30분 정도 반신욕을 하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이재범 교수의 오랜 건강습관 중 하나다. 이때는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는 연습을 하면서 콩팥과 심장이 번갈아 운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몇 년 전 경락을 접하게 됐는데, 쓸개와 간에 연결된 혈 자리가 대부분 막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비뚤어진 자세가 문제였던 거예요. 예전엔 늘 의자에 기대앉거나 다리를 한쪽으로 꼬고 앉았거든요. 그게 편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면서 척추가 비뚤어졌대요. 척추가 틀어지면 해당 부위와 연관된 장기가 눌려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병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요즘 늘 척추를 바르게 펴고 등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해요.”
고개를 15° 정도 올린 상태에서 등 뒤에 깍지를 끼고 굽었던 등뼈를 펴주면서 가슴을 넓게 벌리는 동작은 이재범 교수가 ‘척추교정운동’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하루 20~30분 동안 근처 산책로 등을 걸으며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적절한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요즘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이 남녀 모두 75세가 넘는다지만 건강 수명은 70세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평균수명 대비 건강수명이 10년 이상 차이가 나더라고요. 이제 중요한 건 그냥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질병 없이 건강하게’, ‘내 의지대로 행복하게’ 사는 거죠. 좋은 먹을거리와 바른 식습관은 ‘건강수명’을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단순하게 증상을 치료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만, 건강을 위협하는 근원적인 뿌리를 치유하는 것은 올바른 식습관으로 가능해요. 여기에 바른 자세와 편안한 마음이 결합되면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게’ 행복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거예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