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현대건설 인수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이란 구심점을 잃고 경영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계 1위를 자랑했던 그룹이 15위로 추락했다. 우량 계열사는 채권단 손으로 넘어가고 부실 규모가 34조원을 넘어서며 벼랑 끝에 선 위기를 맞았다. 그야말로 부실 회사를 떠맡아 경영해온 지난 7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현 회장은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가깝게만 지내던 친척들, 숙부와 시동생과 싸워야 했다. 대북 사업을 도맡아오던 김윤규 부회장의 비리 연루 의혹을 받자 자기 손으로 그를 퇴출시켰다. 그리고 연이어 발생한 대북 사업의 악재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사업 중단,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인한 금강산 관광 중단, 그리고 천안함 사태까지 한순간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현 회장을 두고 ‘시련의 여인’이라는 표현까지 했다.
그런 시련은 현 회장의 심연에 숨겨져 있던 뚝심과 집념을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더욱 강해졌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대그룹의 연간 매출액은 2002년 6조495억원에서 2008년 12조7천800억원으로 두 배로 신장했다. 영업이익도 722억원 적자에서 7천6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2009년 8월에는 미국 경제지 좥포브스좦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2년 연속 선정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그리고 2010년 11월 현 회장은 또 한 번의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부도를 맞았다가 2001년 워크아웃에 착수한 후 회생한 현대건설을 놓고 ‘아주버님’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 회장이 사활을 걸면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건설이 소유한 현대상선 지분 8.3%가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가면서 경영권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을 되찾아 그룹의 외형을 키우고 나아가 그룹의 성장 발판으로 삼고 싶었다. 지난 11월 16일 현대차그룹에 비해 자금력이 현저히 열세라던 세간의 평가를 뒤로하고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 현 회장이 최고가인 5조5천억원을 써낸 것이다. 웬만한 배포로는 던지기 어려운 승부수였다.
조용한 다섯째 며느리,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서다
정 명예회장은 그녀를 아들 몽헌의 배필로 낙점했다. 현영원 사장과 혼담을 주고받던 터에 막상 실제로 그녀를 보고 맘에 쏙 들었던 것이다. 정몽헌 회장 역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는 “고운 얼굴에 여성스러운 정은이가 맘에 들었다”고 고백했다. 현 회장은 남편 정몽헌 회장과의 만남을 이렇게 서술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군인이라서 머리가 짧았는데 인상은 좀 별로였습니다. 그때 애 아빠는 태릉 사격장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나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데 사람이 듬직해 보였어요.”
현 회장은 학업도 마쳐야 하고 연애를 좀 더 하면서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은 서둘러야 한다며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데이트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을 불러놓고 “오늘은 청혼했느냐”고 다그치곤 했다. 덕분에 1976년 7월 교제한 지 1년 만에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울렸다.
현 회장은 결혼한 뒤에도 학업을 계속했다. 첫딸 지이를 얻은 뒤에는 남편과 함께 미국 페어리디킨슨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전공은 인성개발학이었다. 현 회장의 사회생활은 여기까지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여학사협회, 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결코 앞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 이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2003년 10월 21일 현 회장은 갑작스럽게 현대그룹의 회장직에 취임했다. 현 회장이 갑자기 그룹 총수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족할 것 없는 재벌가의 며느리로 편하게 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데 왜 굳이 비정한 싸움터에 몸을 던진 걸까? 위기 때문이었다. 위기는 그녀를 점점 깨어나게 했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숙부인 KCC그룹의 정상영 회장이 경영권을 위협했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국민기업화’라는 빅 카드를 내밀었다.
즉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국민주’를 발행하는 것이다. 국민이 주주가 되는 주인 없는 회사가 되고 현 회장마저도 소유권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될지언정 현대그룹을 KCC그룹으로 계열화시킬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내린 결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양측 지분이 큰 차이가 없는 이상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주주들은 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특유의 뚝심으로 김정일을 만나다
현 회장은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예정된 일정이 모두 끝나는 날까지도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현 회장은 일정을 하루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연장…. 김 위원장이 현 회장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 후에도 현 회장은 한 차례 더 일정을 연장했다. 이런 버티기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시어머니의 2주기 추모식이 있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엄하기로 소문난 현대가라 며느리인 현 회장은 포기하고 돌아오리라 예상했지만 그녀는 하루를 더 연장하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총 다섯 차례의 연장이었다. 그때 뜻하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북한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현 회장 일행을 오랜 시간 접견하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며 청원을 모두 풀어줬다”는 회동 소식이었다. 결국 현 회장은 그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유성진씨 석방은 물론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확대에 이르기까지 5개 사항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현 회장에게는 이때부터 ‘여장부’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엄마의 포근함을 갖춘 ‘Mom CEO’
그렇다면 현 회장은 직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대개의 경우 ‘현대맨’ 하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부지런함이다. 새벽 6시에 출근해 7시에 임원 회의를 소집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스타일에 적응하다 보니 근면이 아예 몸에 밴 것이다. 두 번째는 남성적이고 저돌적인 문화다. 특히 정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는 참 유명한 말투다.
그러나 현 회장은 걸스카우트연맹 중앙본부 이사,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여성 위주 문화에 익숙하다. 다들 현 회장의 이런 모습을 우려했지만 다른 리더들에게는 없는 현 회장만의 강점이 있었다. 바로 주부 출신이기에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삼계탕 선물’이다. 현 회장은 초복을 맞아 그룹 임원 및 가족들에게 삼계탕용 닭 900여 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삼계탕은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주부가 아니라면 발상이 쉽지 않은 선물 아이템이다.
“무더운 여름에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임원들과 이들을 지원해주는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은 바로 지금 지키는 것이지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수능시험이 끝났지만 수험생들이 논술, 면접 등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해줍시다.”
또 그녀는 여직원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초 그룹 여직원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다. 수차례 고민 끝에 떠올린 건 바로 ‘다이어리’였다. 선물을 받은 여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평범한 업무용 다이어리가 아닌, 핑크색 표지에 알록달록한 속지로 돼 있는 다이어리를 보고 여직원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특히 첫 장에는 그녀가 작성한 편지가 동봉돼 있었다.
“여성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때, 여성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항상 정기적으로 비전을 계획하고 끊임없이 실천하고, 그 결실을 확인하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당시 다이어리 선물을 고를 때도 직접 샘플을 놓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여자들은 이런 디자인을 좋아한다”며 수정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동안 남성 위주의 저돌적인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가족 같은 마음으로 배려하는 현 회장의 모성 리더십은 새로운 감동과 자극이 되고 있다.
현대그룹에 입성한 후 현 회장이 걸어온 지난 7년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반드시 꿈을 이룰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性)별과 성(姓)별을 떠나 신념을 갖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CEO의 자질일 것이다.
■기획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참고 서적 / 「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임희정 저, 메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