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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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리에게 세상을 향하는 문이 되어준 노래,
ㆍ이제는 우리가 노래로 희망과 용기를 선물할래요”

노래에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하모니는 얼었던 마음을 녹게도 하고, 행복한 희망을 품게도 한다.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삶의 위로를 찾고,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겨울, 음악의 위대한 힘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이들이 있다. 조금은 부족한 듯한 서른다섯 명의 목소리는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고 뭉클하게 데운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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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 하나 놓칠 수 없는 기적의 무대
때로는 모자란 것이 빛날 때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여기, 잔잔한 울림을 선사하는 노래가 있다. 떨리는 목소리, 부정확한 발음, 살짝 불안정한 음정이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렌다. 바로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로 구성된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마음을 다한 노래를 들려주는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은 전문 음악가들의 공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특별함을 전한다.

1999년 5월 창단된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가 지난 11월 12일, 뜻 깊은 300번째 공연을 가졌다. 악보도 가사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던 이들이 모여 이뤄낸, 그야말로 ‘기적적인’ 10여 년간의 노력이었다.

“합창단 단원들은 대부분 중복 장애를 갖고 있어요. 신체적·정신적으로 아픈 곳이 많기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두 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집중하고, 당당히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견스럽고 기특해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300회를 이어온 단원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또 순간순간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내준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하고요.” (지휘자 박제응)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일곱 살 꼬마부터 50대 어른까지 뇌병변, 다운증후군, 지적 장애, 정신 장애, 언어 장애 등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로 구성된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은 1999년 장애인들의 재활 의지를 높이고 잠재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기 위한 재활 프로그램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홀트일산타운에서 함께 살고 있는 300여 명의 중증 중복 장애원생과 지역 내 장애인들 중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기관지를 절개해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사람도, 음을 낼 때마다 팔다리가 뒤틀리는 사람도, 노래는커녕 제 자리에 서서 10분을 버티기 힘든 사람도, 노래하다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악보에 적힌 가사나 음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물론, 없었다. 하지만 한 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기에 이겨내보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1주일에 세 번씩 연습이 이어졌다. 지휘자 박제응씨가 일일이 한 소절씩 불러주면 단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입 모양을 보면서 노래를 익혔다. 짧은 한 곡의 동요를 익히는 데만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가사를 또박또박 발음하기 위해서 연습 시간 외에도 수만 번 소리 내어 단어를 외쳤다. 여럿이서 조화로운 화음을 일구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더디지만 차근차근 성실하게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갔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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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배우면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시간이 무척 좋아요. 노랫소리에는 웃음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노래’라는 선물을 받아서 정말 기뻐요.” (강승연)

비록 서툰 부분이 많더라도, 가식이나 꾸밈없이 순수하게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고 사랑하는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 그 노력과 진심 때문에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를 감동시킨 영혼의 소리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수많은 무대에서 감동의 노래를 전해온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은 지난해 6월, 아주 특별한 무대에 올랐다. 바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 세계합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국제합창대회에 장애인 합창단이 초청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3개국 22개 팀이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은 ‘강강술래’ 등의 곡과 함께 라틴어·독일어·영어 노래까지 소화해냈다. 그리고 비록 완벽한 화음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떤 팀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선물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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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즐거워. 삶은 행복한데 어찌 슬퍼하나요. 살짝만 웃어도 행복해요.’
폐막식 특별공연에서 선보인 ‘나는 행복하고 싶어’라는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우렁찬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장을 메운 천여 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유럽인들은 잘 알려진 정통 곡 외에는 기립박수를 하지 않는 편인데, 우리 단원들 노래를 듣고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뭉클함을 느꼈다’며 기립박수를 보내줬어요.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요.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어눌한 발음으로 부른 노래였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단원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을 느꼈나 봐요. 우리 친구들 또한 못 가본 곳, 새로운 곳에 간다는 사실에 가기 전부터 무척이나 들떠 있었거든요. 노래를 통해 새로운 경험도 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데서 많은 기쁨과 희망을 얻었을 거예요.” (지휘자 박제응)

사실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이 무대에 서기까지 참가 자체가 무산될 뻔한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외국어로 된 노래를 소화해야만 하는 것에서부터 건강상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참가 비용 마련이 관건이었다. 경기 침체로 인한 후원금 및 보조금 감소, 환율 급등과 항공료 인상 등 난관은 계속됐다.

하지만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났다. 합창단의 ‘소나무 할아버지’로 불리는 중외제약 이종호 회장의 지원과 각 기업 및 단체, 개인들의 소중한 마음들이 더해진 것. 고마운 사람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도움에 보답하듯 무사히 합창대회 무대에 서게 된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은 특별연주상·특별지휘자상·참가특별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다른 나라 말로 된 노래를 배우는 게 힘들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도레미송’이 태어난 곳에 간다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외국에 가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해서 걷기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정유진)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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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노래를 잘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워요.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향해서 노래를 하고 싶어요.” (최영은)

세계를 감동시킨 ‘영혼의 소리로’는 대회 무대 외에도 플로리안 성당 등 시내 곳곳을 돌며 갈라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한국을 알리고자 몇 개월 동안 맹연습을 한 사물놀이도 신나게 한 판 벌였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이 귀중한 경험은 단원들에게 ‘감사’고 ‘기쁨’이었으며, 또 ‘치료’이자 ‘꿈의 날개’가 됐다. 그리고 듣는 이들에게도 삶에 대한 용기를 심어준 소중한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준 노래
영롱한 소리의 ‘아리랑’ 밤벨 연주로 시작된 ‘영혼의 소리로’의 2010년 정기 공연은 국제합창대회 참가 등을 통해 일취월장한 이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300회라 더욱 특별했던 이번 공연은 꼭 10년째 합창단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키다리 아줌마’ 방송인 정은아가 진행을 맡고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1999년 창단 때 막내 단원이었던 김현군씨는 이제 의젓한 청년이 되어 솔로 파트를 맡았고, 합창단의 리더이자 막내들의 선생님인 박지혜씨는 청아한 음색을 뽐냈다. 처음 홀트타운에 왔을 때는 누구와도 대화하려 하지 않던 ‘얼음공주’ 은경이는 반짝이는 미소로 관객의 박수에 화답했고, ‘누난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개구쟁이 막내 민기는 부지휘자로 데뷔 무대를 훌륭하게 치렀다. 이들 모두에게 더 이상 무대는, 세상은 두려운 곳이 아니다.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은 감사와 기쁨의 노래로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벽을 허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 자꾸 서니까 이제 떨리지 않아요. 연습도 정말 많이 했고요. 사람들이 박수를 많이 쳐줘서 무척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노래는 즐거운 거니까요. 더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번에는 저도 솔로를 맡고 싶어요.” (김지원)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300번째 공연이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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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이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 녀석들이 저를 일으키고 잡아줬어요. 300회 공연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내일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해요. 저희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저도 단원들의 오빠, 형, 아빠로 숨쉬는 동안은 쭉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죠. 우리 친구들이 더 건강해져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휘자 박제응)

단원들에게 노래는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선물이다. 그리고 이 순수한 영혼들이 빚어내는 천상의 화음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영혼의 소리로’의 따사로운 노래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강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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