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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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그녀가 말하는 엄마 이야기

무뚝뚝한 딸의 뒤늦은 고백 ‘고마워, 엄마’
고혜정 작가는 대한민국 문화계에 엄마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녀가 자신의 모녀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담아 출간한 책 「친정엄마」, 「친정엄마와 2박 3일」은 영화, 연극, 뮤지컬로 제작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될 계획이다. 특히 연극과 뮤지컬은 강부자, 나문희, 김수미 등 이 시대의 내로라하는 ‘엄마 배우’들이 꾸준히 바통을 이어받아 무대 위에서 열연하며 2년째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고두심은 그녀의 소설을 먼저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작가를 꼭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시작은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매일 조금씩 써내려갔던 짤막한 글이었다. 언젠가는 모두 모아서 책으로 엮어 엄마에게 선물로 건네야겠다고 생각하며 잊을 수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 평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두었던 일기들이 어느 날 우연히 출판사의 권유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자식을 키워보니 알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엄마를 앞에 두고는 ‘이제 내가 엄마를 좀 이해할 것 같아’, ‘상처 되는 말 해서 미안해’라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고….”

그래서 글로 마음을 대신 전했다. 평소 살가운 말 한마디 안 하던 딸이 갑자기 엄마 이야기로 책을 썼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도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책 소식을 알리고 싶어 전화로나마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엄마는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이었고 그 말에 그녀는 눈물을 꾹 삼켰다고 한다.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늘 너한테는 부족한 엄마였는데, 그래서 내가 너를 낳은 것을 너무나 미안해하면서 살았는데…. 너는 엄마가 창피하지도 않냐? 아가, 너한테는 미안하다만 나는 네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진짜 고맙다. 너 아니면 이 먼지만도 못한 인간 이 세상에 왔다간 것을 누가 알아주겠냐….”

엄마가 살 수 있었던 이유 ‘아가, 너밖에 없다’
고혜정 작가의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이다. 내장산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시골 중에서도 가장 시골다운 곳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그곳이 왜 그렇게도 싫었던지,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식들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잘했지만 화가 날 때마다 엄마를 심하게 때렸던 아버지, 아프다고 울거나 도망을 쳐도 모자랄 판에 꼼짝하지 않고 소리 죽여 울며 그 매를 다 맞고 살던 엄마, 일곱 살 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언니, 엄마가 맞는 광경을 차마 눈으로 보지 못하고 공포에 떨며 엄마의 울음소리에 따라 울어야 했던 두 남동생, 자폐아로 태어나 아직까지도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막내 남동생이 그녀의 가족이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매일 엄마를 붙들고 아빠와 이혼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저 때문에 못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떠나면 그 빈자리를 어린 딸이 메워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혼자 다 견디며 사셨던 거죠.”

엄마는 세 아들보다 하나뿐인 딸을 더 사랑했다. 일찍이 먼저 보낸 큰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과일을 좋아하는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이제 막 사온 싱싱한 딸기를 바구니 한가득 담아들고 마을 어귀에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어렵게 구한 복숭아 통조림을 딸에게만 먹이고 싶어서 부엌으로 몰래 부르기도 했다. 지금 떠올려도 남동생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어머니는 딸을 아꼈다.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제게 우리 엄마는 눈물이에요. 아시다시피 정읍은 그 당시만 해도 매우 낙후된 곳이거든요. 엄마는 한글을 읽을 줄도 몰라요. 그런 곳에서 운전기사를 하던 아빠의 아내로 살며 연년생 4남매를 낳아 키우셨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저는 자라면서 엄마가 고생하는 것만 본 것 같아요.”

그때는 엄마의 그런 희생을 고맙게 생각하기보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 대한 원망이 더 컸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녀가 엄마가 되어서 딸을 낳아 키워보니 딸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참 마음이 아픈 건 ‘너를 내 딸로 낳아서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의 말이에요. 대학 학비 한 번 못 내주고, 뭐 하나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잘 커줘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아직도 종종 이야기하시거든요.”

애정 표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무뚝뚝한 딸은 그런 엄마에게 “그런 말 하지 마. 쪽팔려”라고밖에 말하지 못해 더 미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죠. ‘엄마, 엄마한테 제일 큰 걸 내가 받았잖아. 엄마의 좋은 성격을 닮았으니까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거야’라고요….”

남편과의 사별, 아들처럼 사위를 사랑했던 엄마
고혜정 작가에게는 아픔이 하나 더 있다. 바로 3년 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던 그녀는 결국 남편과 사별한 사연을 털어놓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는 사위를 무척이나 아꼈다. 딸에게 얘기하면 신경질과 짜증만 돌아오는 반면 ‘어머니’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받아주는 사위 앞에서 자신이 새로 산 속옷을 당당히 자랑할 정도로, 그를 아들처럼 사랑했다. 남편 역시 엄마를 잘 따랐다. 깐깐한 서울 토박이인 자신의 엄마와 달리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에 반찬을 하나하나 얹어주고, 밥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엉덩이를 두드리며 “아이구, 잘 먹네” 하며 유난을 떠는 시골 장모를 엄마만큼이나 좋아했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위암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 엄마는 딸만큼이나 무척 가슴 아파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사위인데…. 암에 좋다는 음식들을 모두 구해서 남편에게 먹이며 ‘우리 딸 과부 만들지 말아줘. 자네가 살아야 우리 딸이 불쌍하게 안 되지’ 하며 신신당부했어요. 2년간의 투병생활을 뒤로하고 끝내 남편이 떠날 때 엄마가 정말 서럽게 울었어요. 지금도 저한테는 남편을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면서 정작 당신은 사위가 보고 싶다고, 생각난다고 해요…. 지금 열다섯 살인 큰아들이 클수록 남편을 닮더라고요. 그러니까 엄마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아프신 거죠….”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한 마디, 두 마디 말을 이을 때마다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아이들을 잘 키워서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하늘에 있을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던 시간이 여전히 가시처럼 심장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남편을 보낸 후 엄마는 제가 전화만 하면 불쌍하다고 울어요. 왜 내 딸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가끔은 손자, 손녀는 안중에도 없는듯 제가 빨리 재혼했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하지만 저는 엄마에게 그런 말 말라고 해요. 아이들이 없었으면 나는 자살했을 거라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내가 일어섰다고…. 13년 동안 같이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하지만 그녀는 이제 엄마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다.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까, 자신을 금쪽같이 사랑하며 아꼈던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언젠가는 엄마도 딸 곁을 떠난다…
작가에게는 아픔도, 슬픔도 자양분이 된다는 말처럼 그녀에게도 지난 아픈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언제나 딸을 지켜주었던 엄마의 끝없는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식에게 공기 같은 존재다. 그 공기로 숨쉬고 살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할 뿐 어느 날 갑자기 공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엄마와 43년을 지냈지만 아직도 제가 엄마에게 하는 애정 표현은 ‘엄마, 반찬해서 보내지 마. 허리 아픈데 그런 거 왜 해. 하지 마’ 하며 신경질만 내는 것뿐이에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이렇게 글로 대신 전할 뿐이죠. 딸들이 다 그런가 봐요.”

예전에만 해도 그녀는 정작 엄마가 자신의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늘 젊고, 늘 자신의 곁에 있으면서 해달라는 것 다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할머니가 된 너무나 늙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깨달았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엄마가 언젠가는 딸의 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에 막막하고 슬퍼졌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영원한 나의 후원자, 나의 울타리, 언제나 내 편이고 나를 위해 희생해주는 엄마가 언젠가는 자식들의 곁을 떠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자식들이 엄마에게 잘해줄 시간을 세월이 점점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을요.”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엄마’ 두 글자로 세상을 울린 고혜정 작가

오늘도 그녀의 냉장고에는 엄마가 시골에서 한 보따리 만들어 보낸 반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못난 딸은 식탁 위에 그것들을 꺼낼 때마다 생각한다. 아낌없이 주고도 더 못 줘서 한이라고 말하는 친정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정작 나이가 들어서야 그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철부지 딸,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모녀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고혜정 작가의 친정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글
젊디젊은 것이 팍 삭아버린 거 같다. 자존심 강한 것이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혼자 힘든 거 삭이느라고 골병 들었고만, 불쌍한 내 새끼. 힘들면 엄마한테 올 일이지. 어렵고 힘들 때 젤로 생각나는 사람은 엄만데. 막막허고, 속상헐 때 찾어갈 곳은 엄마뿐인데. 엄마가 해결은 못 해줘도 속 시원허게 얘기는 들어줄 텐데.

엄마가 도와주지는 못해도 내 새끼 속상헌 마음은 누구보다 알아줄 텐데. 엄마한테는 다 괜찮은 것이다. 엄마는 새끼가 입만 딸싹해도 새끼 맘 안다. 왜냐믄 내 속으로 낳은 내 새낀게. 근디, 어째 자식들은 그걸 모르고 딴 데서 헤매고 속 끓이는가 모르겄네.

결혼헌 여자가 속상헐 때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내가 알기에 엄마는 여그서 이렇게 상처 입고 갈데없어 찾아올 우리 딸을 기다린 것이여. 분명히 살다 보믄 속상헌 일도 있고, 남한테 말 못허고 혼자 속 끓일 일이 있겄지야. 남자들이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소리 지름서라도 풀겄지만 여자들은 그 썩는 속을 어디다 풀고, 누가 들어주고 위로혀주겄냐. 그때 엄마 찾어오라고, 살면서 그런 일이 없으면야 좋겄지만 살다 보믄 어째 없겄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힘들고 속상헐 때 엄마 있는 친정 와서 풀고 가라고, 한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열 번이 될지 모르는 그 날을 대비해서 엄마는 여그서 기다리고 있는 거여. 여자가 가고 싶어도 갈 친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엄마가 알기에 우리 딸한테만큼은 그런 설움 안 주고 싶어서, 그리서 여그서 우리 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가, 힘들쟈?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풍랑이 무섭다고 배를 부두에 매둘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겄냐. 니가 힘들 때 이렇게 찾아와 맘 놓고 울고, 엄마한테 어리광 부리라고 여기서 엄마는 널 기다렸던 것이다.

엄마, 미안해.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인물 자주 못 보여줘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늘 미안한 것투성이지만 제일제일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
정말 미안해….
- 엄마에게, 딸 고혜정 올림


■글 / 윤현진 기자 ■사진&제공 / 이성원, 나남 출판사 ■참고 서적 / 「친정엄마」(고혜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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