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인재양성, 가장 값진 투자가 아닐까요?”
2009년 5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설립된 한국장학재단이 어느덧 설립 1년 8개월을 맞았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은 약 80만 명. 든든한 초석을 다지고 2011년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이경숙 이사장을 만났다.
3조 규모 정부보조금 채권 발행하는 학자금 전문 금융기관
“1년 동안 많은 일을 했어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보니 하나하나 새로 시작하지 않은 일이 없었죠. 그동안 80만 명 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을, 25만 명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어요. 대학 총장으로서 학교에서 했던 일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수여, 인재 육성 등 비교적 업무는 단순해졌지만 전문성을 요하는 금융 업무가 더해져 새로운 도전이 많았어요.”
한국장학재단은 ‘맞춤형 국가장학제도 구축’이라는 국정 과제의 일환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는 철학에 맞춰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인재 육성을 위한 기틀 마련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국가 학자금 대출사업과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과학재단 등의 국가장학사업이 하나로 모아졌다.
“전체 업무의 80%가 금융 업무예요. 이름이 ‘한국장학재단’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일정 장학기금을 바탕으로 소규모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는 일반적인 장학재단들이 하는 일과 비슷할 거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재단은 연간 3조5천억원에 달하는 학자금 지원을 위해 3조원 규모의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하는 학자금 전문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단순한 재단 업무에서 벗어나 인재육성 지원을 위한 국가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다양한 인재육성 지원제도도 시행하고 있고요. 학생들에게 학자금이나 장학금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설기관의 기관장은 뭐든 새롭게 만들고 안정시켜야 하는 부담이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그는 숙명여대 총장 시절 인정받은 탁월한 운영 감각을 발휘해 온라인 직접대출과 든든학자금제도 등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15개 은행, 5천여 지점에서 시행하던 대출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직접대출 방식으로 전환했어요. 이를 통해 한 학기에 40만 명에게 학자금 대출을 해주고, 11만5천 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각종 부대 수수료를 절감해서 7%대의 학자금 대출 금리를 5.2%까지 내린 것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입니다. 등록금으로 인한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드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대출받은 등록금을 갚지 못해 생기는 신용불량자 발생을 방지하는 ‘든든학자금제도’ 도입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현행 학자금 직접대출제도에서는 대출을 받은 학생이 재학기간 중에도 매월 대출이자를 갚아야 한다. 또 졸업 후에 취업이 안 되어 소득이 없더라도 상환기간이 되면 매월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요즘같이 취업난이 심각한 시기에 원리금을 갚지 못해 생기는 신용불량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취업에도 불이익을 받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녀의 학자금 대출 때문에 부모가 떠안는 부채도 큰 문제. 든든학자금제도는 이러한 현행 학자금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개선한 제도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상 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을 대출해주고 취직 이후 소득이 발생하면 원리금을 나누어 갚도록 하는 제도예요. 재학 중에는 물론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대출 원리금 상환이 유예되기 때문에 학업과 취업활동에 보다 전념할 수 있죠. 자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노후를 대비 할 여력도 없이 빚을 짊어졌던 부모님들의 부담도 한층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인재육성 지원사업 통해 사회적 리더 기른다
“당장 대학만 졸업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잖아요. 사회에 나가서 더 큰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재단이 출범할 때부터 학생들이 지식과 사회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봉사의 미덕을 가진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인재육성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회 저명인사 멘토와 대학생 멘티를 연결시켜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은 그러한 취지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한국장학재단에서는 좀 더 통합적인 인재육성 지원을 위해 2010년 2학기부터 몇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식과 경험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생산적으로 승계한다는 취지로 선배 세대들이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 인재육성에 참여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장학금 수혜 학생들이 베푸는 삶을 통해 봉사의 참된 의미를 아는 지식 봉사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재육성 사업들을 빠른 시일 내에 궤도에 올려 금융과 인성 양쪽 측면에서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경숙 이사장의 목표다.
멘토링 프로그램에는 현재 기업 최고경영자와 석학 등 각 분야의 저명인사 100명이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 멘티들은 기업 CEO나 사회 저명인사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취업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참여했다가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된 친구들이 많아요.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멘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하나 자극이 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멘토링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는 멘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뿌듯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눈앞의 취업에 매달리기보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자기 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멘토링을 받은 대학생 멘티들이 어려운 여건의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진로상담과 학습지도를 해주며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생 지식 봉사단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현재 카이스트와 포항공대 등 이공계 중점 4개 대학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 여름방학 때 4개 대학 200명의 학생들과 전국의 고등학생 1천여 명을 멘토와 멘티로 연결해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지식 봉사단에 참여한 어느 대학생의 후기를 보니 멘토로서 아이들을 만나며 스스로를 돌이켜볼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부족한 점과 고쳐나가야 할 점을 알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무척이나 값진 경험이었다고요. 한국장학재단의 인재육성 지원사업은 이제 첫걸음을 뗀 단계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학들과 이 같은 멘토링 사업을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에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사명이 있기에 빛나는 삶
올 겨울 한국장학재단에는 ‘사명서’ 작성 바람이 불었다. 사명서는 말 그대로 자신의 사명과 삶의 목표를 문서로 작성하는 것. 서로에 대해 알고 좀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 이경숙 이사장이 제안한 방법이다.
“사람들과 좀 더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과 금방 친해지기 어렵잖아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하더라도 표면적인 관계가 많은데,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왜 사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면 더 가깝게 소통할 수가 있어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도와줄 수도 있고요. 사명서에 ‘난 이런 핵심 가치를 가지고 살아요. 난 이런 목표를 달성하고 싶어요’를 적어놓으면 다른 사람과 좀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있고요. 삶에 대한 가치와 사명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일깨워주는 자명종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경숙 이사장은 사명을 갖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말하며 어느 벽돌공의 이야기를 꺼냈다.
“벽돌공에게 벽돌로 무얼 하냐고 물었을 때 그저 벽돌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기도하는 교회를 짓고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어요. 자신의 사명에 따라 같은 벽돌이 그저 돌멩이가 될 수도, 교회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즐거움을 압니다. 공부든 일이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요. 우리 재단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그런 사람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일차적으로 우리 직원 선생님들이 사명서를 작성했어요. 부서별로 액자로 만들어서 매일 보고 노력할 수 있도록. 인생의 목표와 사명을 가지라는 말, 공부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와 밝은 빛이 가득했다. 예순일곱.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과 에너지 가득한 삶을 사는 이경숙 이사장. 그에게 젊음의 비결을 물었다.
“비결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혹시 그렇게 보인다면 제 꿈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게 그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에게 비전을 수립해주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로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줄 수 있는 삶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가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이 재산으로 남아 있어요. 그 재산을 많은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도와줘서 그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게 제 삶의 보람입니다.”
우리 사회에 좀 더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새해 소망을 밝힌 이경숙 이사장. 그의 소망만으로도 2011년 한 해가 더욱 밝아지는 듯 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강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