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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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심금 울리는 바이올린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은 연평균 50회가 넘는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는 연주자다. 악장을 맡고 있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크고 작은 연주회와 실내악, 독주회 등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이렇듯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는 지난 연말, 기분 좋은 상을 받았다. 바로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자 후보로 올라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한 것. 가슴을 울리는 선율로 보다 많은 청중을 만나는 것이 연주자로서 그가 가진 계획이자 꿈이다.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연주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커져
“연습을 마치고 휴대전화를 켰는데, 문자 메시지가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무심코 전화를 걸었는데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죠. 순간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더라고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36)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작년 11월 19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주)여성신문사가 주최한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은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들을 격려하는 상으로, 수상 부문은 ‘올해의 여성문화인상’과 ‘신진여성문화인상’으로 나뉜다. 2010년에는 예술감독 박칼린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받았고, 김지은과 함께 싱어송라이터 시와, 미술기획자 유다희, 하피스트 곽정이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누구보다 가족이 정말 기뻐해주셨어요. 평소 저를 좋게 봐주신 분께서 주최 측에 추천을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저는 아직도 그분이 누구신지 모른답니다(웃음). 올해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지 7년째 되는 해예요. 그동안 쉴 새 없이 연주회를 열었던 건 사실이에요. 2년째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는데, 오케스트라 연주회 일정만 해도 연간 수십 회가 넘으니까요. 거기에 독주회와 협연, 실내악까지 합하면 정말 바쁜 연주자인 건 맞죠!”

그는 선화예중·고, 서울대 음대, 독일 쾰른 국립음대와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또 현재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는 전문 연주자다. 지금까지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대에 서왔기에 사람들 앞에 나서며 시선을 받는 일도, 또 무대에 오르는 일도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던 시상식 날은 달랐다.

“무대와 객석은 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죠. 하지만 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을 말해야 했는데, 정말 그렇게 떨릴 수가 없더라고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요. 항상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했을 뿐, 제 생각과 감정을 입으로 전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이어 그는 “학생 때 콩쿠르에 참가해 받는 상과는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한다. 열심히 과제를 연마해서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야 상을 주는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부여받은 과제라는 것이다.

“선배는 후배를 끌어주어야 하고, 자신이 실수한 것을 후배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선배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것도 맞고요. 멋모르던 시절 참가했던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연주자로서의 책임감도 더 많이 갖게 됐고요.”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2010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은

보다 많은 무대 만들 것
“올해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창립 20주년을 맞아요. 우리나라에서 민간 연주 단체로 20년간 활동한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활동해온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의미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 봅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예요. 단장님부터 단원들 한 명 한 명까지….”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업이라고 김지은은 설명한다. 차가운 마음이 지배적인 사람의 음악과 따뜻한 마음이 풍부한 연주자의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그가 악장으로 몸담고 있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따뜻한 음악을 들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지요.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 악기를 한 자리에서 연주하고, 또 재미있게도 그 소리가 어울리게 되는 이치죠. 그 과정에서 악장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범위가 큽니다. 재판을 예로 들면 판사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단원들의 개인적인 어려움부터 시작해 의견이 다른 두 곳을 조율해야 하고요. 싫은 소리를 많이 해야 하고 냉정해져야 할 때도 많아요.”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대 위에는 수십 가지의 악기가 있지만 계속 연주하는 악기와 단 한 차례 연주하는 악기도 있다. 역할의 비중을 따진다면 불평은 끝도 없을 것이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그는 진심으로 단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서른여섯이 되었고, 다섯 살 난 아들도 두고 있어요. 바이올린을 공부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실로 바이올린을 알았다고 느낀 것은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마칠 즈음이에요. 독일 유학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유럽의 아름다운 성에서 연주도 하는 행운도 누렸지요”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할 무렵 얼떨결에 독일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 연고도 없던 터라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습해야 했는데, 이웃들의 반대로 연습할 수 없게 되자 공원이든 들판이든 연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큰 웃음을 터트리며 그는 창고에서 연습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마침 어느 건물 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연습할 공간이 절실했던 터라 건물 경비원에게 사정사정해서 창고 열쇠를 받아서 들어갔어요. 그러나 정말 기절할 뻔했어요. 회색빛 달걀판이 천장과 온 벽에 붙어 있고, 기괴한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거든요. 유럽 사이비 종교인들이 쓰던 공간이었던 거예요! 도망치고 싶었지만 죽을 각오로 연습을 했어요. 덕분에 독일 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는 석사 과정 입학을 위해 쾰른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에 응시했는데, 프라이부르크 입학시험에서 유례 없는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기념으로 그 합격통지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쾰른행을 선택한 그는 “그때는 후회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잘한 일 같다”라며 웃었다.

“그동안 벌레가 허물을 벗듯 저도 연주자로서 허물을 벗어온 것 같아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터득한 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또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무대에 서고 싶어요.”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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