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앵커 때처럼 제 진정성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엄기영(60)은 트레이드마크인 짙은 트렌치코트 차림이었다. 정치인으로는 신인이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그가 언론인이 아닌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엄기영은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대해 당당히 자신의 선택이라 말한다. 이제 돌이킬 수도, 돌아보지도 않을 거라는 엄기영. 선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채, 달려갈 일만 남았다.
강원도민 위해 힘닿는 데까지 봉사할 것
LADY 요즘 바쁘시지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엄기영 눈코 뜰 새 없지요. 따로 건강 챙기는 건 없어요.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 정도. 일정이 바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볼에 살이 좀 있었는데 빠졌어요. 실제로 선거 운동해보시면 살이 빠질 거예요. 다이어트에는 최고입니다(웃음).
LADY 오랫동안 언론에 몸담고 계셨는데 사실 정치권이라는 곳이 험하고 거친 곳 아닌가요?
엄기영 네. 제가 사회부에서 사건기자도 했습니다만, 기자들은 초선 의원들은 안 만나잖아요. 그런데 막상 이쪽에 발을 담그고 보니 선출직에 계신 분들은 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노력한 결과인지 절감하다 보니 시의원, 군의원도 결코 가볍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당선되는 것이니까요.
LADY 직접 해보시니까 어떠세요? 정치하고는 잘 맞으시나요?
엄기영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 만나고 악수하고 이야기하는 게 일이지요. 저한테도 숨겨진 끼가 좀 있었구나 싶어요(웃음).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진심을 보여주고, 저를 지지하게끔 하는 일이요.
LADY 사람들이 무엇보다 궁금해하는 것이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출마를 하실 수밖에 없었던 대의가 아닐까요?
엄기영 작년 2월에 MBC 사장직을 그만두고 나서 뭘 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강단에 서서 방송 관련 강의를 할까,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까, 제 문학적 소양을 살려서 책을 써볼까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서 틈틈이 곳곳을 다녀보니 마지막으로 고향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유명해졌다면 국민과 도민들의 사랑을 받아서이지 제가 혼자 잘나서가 아닌데, 그동안 제가 받은 응원과 격려를 이제 고향에 돌려줘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둘러보니 강원도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침체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탈출구로 동계올림픽이 있더라고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도민들에게 굉장한 자극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월드컵 유치도 안 됐잖아요. 더 이상 큰 행사가 없단 말이에요. 국제적 스포츠 행사로 국가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된 것이 바로 88올림픽이었어요. 올림픽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서른 살이 되는데 다음 세대에 대한 선물이 되겠다 싶었어요. 올인하겠다는 마음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성원해주셔서 짧은 시간에 140만 명의 서명을 받았어요(엄 후보는 민간단체 협의회장으로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1단계 숙제는 한 셈이지요.
LADY 임기를 채우지 못한 이광재 전 도지사로 인해 도민들의 낙담이 클 텐데요.
엄기영 강원도를 위해서 몸을 바치려고 합니다. 작년 지방 선거 이후 다른 도들은 활기차게 지역 발전을 위해서 뛰고 있는데 강원도만 두 차례나 도정 중단 사태가 벌어졌어요. 동계올림픽도 제가 몸을 던져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한나라당은 정치인으로서의 ‘선택’일 뿐
엄기영 기자와 파리 특파원으로 국민에게 친숙해지고, 앵커로서 사랑을 받았다면 시청자들이 저를 잘 봐준 덕분이고 언론인으로서의 진정성을 평가받은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서민의 편에서 뉴스를 전하려고 했던 진정성 말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정치인 엄기영과 언론인 엄기영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고 저의 정치적인 선택에는 자유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한나라당을 택했고, 제 발로 찾아가서 입당한 것입니다. 사실 각 정당에서 러브콜이 줄곧 있었어요. 1989년부터 앵커를 했는데 제일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이 1992년부터 영월평창 보궐선거입니다. 만약 계속 당선이 됐다면 4, 5선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때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언론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LADY 그래도 굳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데는 특별한 계기나 의지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엄기영 분명히 그것은 제 자유의사로 한 것입니다. 민주당에서도 제가 흠결이 없고 괜찮으니까 입당 제안을 했을 텐데,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비난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원도민과 강원도에 한나라당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출마 기자회견 때도 말씀드린 것처럼 동계올림픽 유치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춘천-속초 간 복선 전철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제2영동고속도로처럼 수조원이 들어가는 인프라는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이라든지 폐광 지원법을 특별법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여당의 지원이 있어야 하고요. 휴전선과 맞닿은 접경 지역 규제 철폐 같은 문제도 강원도민 전체에게 해당되는 사안입니다.
LADY 언론인에서 포지션을 바꾸면서 전에 없이 국민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되셨습니다. 지나친 비난에는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엄기영 언론인으로서 엄기영은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고 경영자로서도 각 정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언론인 생활을 접고 정치에 발을 들이면 어느 정도 비난받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전임 MBC 사장인 최문순 후보도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비난이 쏟아졌는데, 저는 1년 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이제는 하는 수 없으니 욕은 먹을 만큼 먹어야지요(웃음).
LADY 최근에 ‘PD 수첩’ 관련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엄기영 언론의 속성은 원래 비판하는 겁니다. 정권과 늘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국민건강, 검역주권을 생각해서 문제를 짚은 것은 당연히 언론으로서 해야 할 프로그램이에요. 다만 비판의 자유가 있는 만큼 좀 더 정교했더라면 하는 입장이에요. 제가 사장일 때 제작과정의 문제로 사과까지 했었습니다. 잘못도 잘못이지만 모든 문제를 다 ‘PD 수첩’에 전가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도 옳지 않아요. 정당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쇠고기 문제 재협상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LADY 도지사 출마를 앞두고 부인과 가족은 어떤 의견이신지요?
엄기영 정치 입문을 사양했던 것은 저도 내키지 않았고 집사람도 반대했기 때문이에요. 사장직 그만두고 고향을 돌아보는 저를 보며 집사람도 제가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과 도민을 위해 봉사하는 도지사나 시장, 군수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제의는 응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내도 동의했어요. 하지만 요즘 인기가 없는데 왜 한나라당이냐고는 하더군요. 저는 지난 6·2 지방 선거 때 뭐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며 몸만 오라고 제안했던 민주당에 가는 것이 강원도를 위해서는 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LADY 부인께서 여성들을 위한 정책적 조언을 해주시나요? 그리고 여성을 위한 정책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엄기영 아니요. 요즘은 선거 때문에 돌아다니느라 바쁩니다(웃음). 경제 살리기에 여성을 위한 정책도 포함됩니다. 여성들은 보육 문제까지 다 책임지고 있어서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여성·아동 안전조례를 만들려고 합니다. 보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관건인데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비를 줄이고 아이들, 여성을 위한 안전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강원도의 친환경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먹일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홀로 된 여성 등 소외계층을 위한 대책도 준비할 작정입니다. 잘 살펴보면 아주 좋은 인력들이 쉬고 있거든요. 기업도 많이 유치하고 콜센터 등도 만들어서 여성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일에 특히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LADY 슬하에 1남 1녀를 두셨는데 평소 어떤 아버지이신가요?
엄기영 자녀들은 다 결혼했고 손자도 하나 있습니다.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며느리가 친정 들르느라 잠시 들어와 있는데 곧 미국으로 돌아갈 손자가 자꾸 눈에 밟히네요(웃음). 자녀들에게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는 않았고 늘 모범을 보이려고 했어요. 방송기자 시절 오전 5시면 일어나서 새벽 신문 보고 밤 9시 뉴스 방송을 준비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어요. 같이 놀고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들하고는 한강둔치에 나가서 공도 차고 제기차기도 했어요. 권위적인 아버지는 아니에요. 애들은 그런 걸 좋아하잖아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은 와 닿는 법이니까요. 그냥 잘 커줬어요. 고마운 일이에요. 과외도 많이 안 했는데 알아서 공부도 하고, 결혼도 알아서 잘했어요.
LADY 오늘 의상 스타일링은 누가 해주셨나요. 부인께서?
엄기영 아니요, 제가 그냥 대충 꿰어 입고 나왔습니다. 제가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라서요. 물론 옷은 아내가 본인 취향에 맞춰서 준비합니다.
LADY 정치인으로서 첫 번째 큰 도전을 하는 셈인데 이후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엄기영 다음 계획은 전혀 없고,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언론 권력도 누릴 만큼 누렸고 대통령급 이상일지도 모르는 명예도 누려봤어요. 그렇게 쌓은 명예나 권력을 버리고 표를 호소하러 다니는 입장이에요. 제가 도지사가 된들 그 이상의 권력이나 명예가 있겠습니까. 도민들과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고민해서 해결책을 찾을 거예요. 앵커 때처럼 제 진정성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당한 강원도를 만들 겁니다.
LADY 상대 후보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엄기영 최문순 후보는 회사 후배이지만 MBC 사장으로서는 선배고 정치권에서도 선배입니다. 또 훌륭한, 아끼고 사랑하는 고등학교 후배(춘천고 5년 후배)입니다. 언제 만나서 소주 한 잔 해야 하는데….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고 보고 강원도 발전과 미래를 위해 정책으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