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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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2시, 잠깐 찾아든 포근한 날씨에 산책을 나선 이외수의 부인 전영자씨와 마을 어귀에서 만났다. 오늘의 주인공 이외수는 동이 튼 뒤에야 잠이 들어 아직 깨지 않았다고 했다. 감성마을 곳곳을 안내해줬던 ‘친절한 매니저’ 전영자씨가 일단 김진세 박사와 마주 앉았다. 사실 우리는 그녀에게 더 궁금한 것이 많았을 수도 있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 1. 평생의 매니저 전영자씨와 만나다
김진세_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시죠?
전영자_ 아주 북적거릴 때도 많아요. 가끔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분들도 있긴 하죠.
김진세_ 잠깐 선생님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전영자_ 네! 선생님 주무시는 동안에는 제가 말동무 해드려야지요. 뭐가 궁금하세요?
김진세_ (웃음) 뭐부터 물어볼까요? 아, 1976년에 결혼하셨죠?
전영자_ 네. 삼십 몇 년 됐을 거예요.
김진세_ 어떠세요?

전영자_ 이제는 남자다, 여자다 이런 느낌은 없고 우린 전우애로 산다고 해요. 동지 같은 느낌? ‘당연히 그의 생각도 나와 같을걸’ 하는 이런 마음이요.
김진세_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에 두 분이 처음 만난 에피소드가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이외수 선생님께서 대시를 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사모님께서 그의 무관심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전영자_ 좀 문학적으로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이에요. 제가 앉아 있는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아서 “아가씨 예쁜데 자주 보자”고 하면서 “이왕 좋아해줄 거 미리 좋아해달라”고 하고는 어깨를 톡톡 치고 갔죠. 보통 여자들이 사람을 볼 때 밑에서부터 올려보거든요. 근데 양말도 안 신고 신발은 비에 젖어서 가죽은 벌어졌고 옷은 더럽고… 너무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 사람이 치고 간 어깨를 도려내고 싶었어요(웃음).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죠 뭐.
김진세_ 어떤 점이 끌리셨어요?

전영자_ 이 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의 순수를 보여줬어요. 전에 제가 만나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통속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게 식상했거든요. 저도 좀 별났었나 봐요.
김진세_ (웃음) 그럼 동지 말고 남편으로는 어떠세요?
전영자_ 동지로서는 백점 만점이에요. 남편으로서는 50점 정도? 의외로 자상한 면도 있지만, 자기 일에 열중하다 보면 다른 하나를 놓치게 되잖아요. 글을 한 번 쓰면 3, 4년 걸려요. 되게 못 써요, 글도.
김진세_ (웃음)

전영자_ 글쓰는 3, 4년 동안 아이들은 아빠 방 앞을 지나갈 때 까치발로 다녀요. 새벽에 자고 낮에 일어나니까 아이들하고 시간이 안 맞잖아요. 그러다가 보면 문득 아이들을 등한시한 게 느껴지나 봐요. 그럼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봐요. 애들은 오락 같은 거 좋아하잖아요? 2, 3일 동안 열 몇 시간씩 열심히 게임 연습을 해요.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요(웃음). 그리고 같이 놀아주는 거예요.

김진세_ 물집 잡힐 때까지 연습하신다는 건 몰랐어요.
전영자_ 너무 동떨어지면 아이들이 안 놀아주니까요. 그렇게 놀아주고 나서 아이들로부터 “아빠 대단하다!” 이런 소리 듣는 거 남자들은 되게 좋아해요. 남자들은 꼬드기기 ‘대따’ 쉬워요(웃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하는 줄 알고 되게 흐뭇해해요. 박사님은 못 들은 척하세요(웃음).
김진세_ 네, 그럼요(웃음). 그래도 힘드신 적 많으셨죠?

전영자_ 힘들었었죠. 가난이라는 거에. 가난이 너무 자존심 상하게 해요. 그 작은 것에 모든 걸 다 낮춰야 하죠. 아이를 가졌는데 임부복을 살 형편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뚱뚱해졌지만 한때는 내가 날씬하던 때가 있었다우(웃음). 요만 한 개미허리에 배가 불러오니까 당연히 옷이 맞는 게 없죠. 그럼 바지 여미는 양쪽에다가 끈을 꿰서 묶는 거예요. 흘러내리지 않게만 하고 살았는데 그게 여자한테는 치명타였어요. 긴 윗옷을 걸치면 안 보이겠지, 하면서도 결국 현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죠.
김진세_ 아, 자존심?

전영자_ 네. 내가 이렇게 산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운 거예요. 왜냐면 내가 잘나갔었거든요(웃음). 웬만한 남자들은 상대도 안 해주고 콧방귀 뀌었었어요. 영화표, 화장품, 스타킹 이런 거 내 돈으로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어요. 그랬는데 결혼을 하니까 이상한 거예요. 결혼하면서 (남편이) 직장을 때려치우기에 ‘뭔가 있겠지’ 했어요. 그런데 없어요. 그냥 앉아서 같이 굶자는 거죠. 아, 이건 뭔가! 정말 다른 세계다. 완전히 다른 세계다. 정말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갔죠. 할 수 없이 친정에 가서 쌀을 훔쳐오기 시작했어요.
김진세_ 진짜 훔치셨어요?

전영자_ 제가 갈 때쯤 되면 어머니가 아예 문을 열어놨어요. 그래서 양심껏 훔치면 아홉 되, 욕심껏 훔치면 한 말 한 되. 그걸 메고 나와서 팔았어요.
김진세_ 세상에.
전영자_ 자존심 상하죠. 그런데 가난이라는 건 나를 급하게 만들지 느긋하게 만들지 않아요. 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팔아서 새마을담배, 원고지를 사고 연탄을 새끼줄로 엮어서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 식으로 한 달에 몇 번씩 가서 훔쳐왔어요.
김진세_ 도망가고 싶으셨을 거 같아요.
전영자_ 도망가고 싶은 적이 참 많았어요. 그런데 그 손아귀를 못 벗어나겠더라고요. 저 없으면 죽을 것처럼 얘기를 해요. 남자들 그러는 통에 여자들 죽잖아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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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_ (웃음)
전영자_ 정말, 제가 어디라도 잠깐 눈을 돌리면 큰일이 나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먹고 마냥 앉아만 있어요. 그래서 시장도 한달음에 다녀와야 했어요.
김진세_ 요즘도 그러세요?
전영자_ 많이 덜해졌어요. 그래도 역시 불안해해요. 모성애를 어려서부터 못 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
김진세_ 아, 그래요?

전영자_ 엄마 젖도 못 먹어보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였대요. 엄마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사랑과 모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어요. 이렇게 ‘숭’ 봐서는 안 되는데…. 그런 것들을 저한테서 찾으려고 그래요. 어떤 때 너무 힘들어하면 (품으면서) ‘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라고 하고(웃음). 너무 투정이 심하면 이게 남편인지 아들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어요. 그럼 ‘그래그래 내가 누나야, 누나’라고도 하고요. 여섯 살 차이 나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김진세_ 사모님께서 거의 정신과 의사신데요(웃음).
전영자_ 아유, 일어나셨다네요. 그만 ‘숭’ 봐야 될 거 같아요. 멋있는 남자예요(웃음).

# 2. 오후 3시, 드디어 세수를 마친 이외수 등장
김진세_ 안녕하세요, 선생님. 행복의 힘에 대한 말씀 듣고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외수_ 제가 그럴 힘이 있나요? 거의 삭아가지고 골골거리는데…(웃음).
김진세_ 별말씀을요.
이외수_ 저는, 살아온 생애가 첩첩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왔어요. 생모는 제가 두 살 때 돌아가시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죠. 전쟁 직후니까 다들 어려웠고요. 할머니하고 저하고 동냥밥 얻으러 다니기도 했어요. 더 어려운 것은 아버지께서 전쟁 직후 행방불명이 된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 새장가를 드시고 그걸 가족에게 밝힐 수가 없어서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예요. 결국 가족 상봉을 하고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있던 강원도로 왔죠. 어쨌든 요즘은 교육자보다는 교직자가 많다는 얘기를 하는데 제가 뵌 아버지는 진정한 교육자셨어요.

김진세_ 선생님께서도 교대에 진학하셨잖아요?
이외수_ 요행히 춘천교대에 입학했는데 아버지께서 자수성가를 강조하시는 바람에 한 학기 다니다 휴학해서 등록금 벌고, 다음 학기 다니고 또 돈 벌고…. 그걸 반복하다가 학칙에 의해서 잘렸어요. 제가 춘천교대 제적 1호입니다. 희망이라는 게 없었죠. 방세가 하도 밀려서 그걸 갚으려고 글을 썼는데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어요. 지방지에서 당선되면 지방에서 작가 행세하는 게 고작입니다. 그래서 중앙지 데뷔를 위해 산에 들어가 문장 공부를 하고 3년 뒤에 중앙 문단에 데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새 인터넷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듣보잡’이었어요(웃음). 때문에 빛을 볼 수가 없었어요.
김진세_ 아니, 왜요?

이외수_ 제가 등단했을 때 문단에서는 떠들썩했거든요. 천재가 났다는 둥, 이상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둥 했는데, 3년 동안 한 번도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제 나름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까, 쉽게 말해 줄이 없는 거였죠. 그때부터 저는 독립선언을 하고 어떤 단체든 가입하지도, 활동하지도 않았어요. 작가-출판사-독자, 이렇게 삼각구도만을 유지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했죠. 어려웠어요. 전 지면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주간지라도 청탁만 들어오면 투고를 했습니다. 그 대신 문예지는 모두 사절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서 평론가 30명을 대상으로 데뷔 3년 이내의 작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와 작품을 뽑아달라는 내용의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다섯 명 중에 제가 끼어 있었어요. 그래서 제 책을 내게 됐습니다.
김진세_ 그 책이?

이외수_ 「꿈꾸는 식물」이죠. 처가살이를 할 당시여서 어른들께 아이들과 처를 맡기고, “제가 1년 뒤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글을 못 써서 자살한 줄 아십시오”라고 배수의 진을 치는 기분으로 정선으로 들어가 쓴 책입니다. 그 책이 제 출세작이 됐지요. 그때부터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출판사에서 하는 얘기로는 제 고정 독자가 4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쯤 되면 작가로서는 최고의 영광과 행복을 누리는 겁니다. 그것도 독립군과 같은 제 경우에는 더 큰 자부심이고 기쁨이 되죠.

김진세_ 그 기쁨을 구체적으로 느끼신 건 언제였나요?
이외수_ 얼마 전에 (치킨 프랜차이즈) 비비큐에서 제가 트위터에 아무 글이나 쓰고 괄호 열고 회사 이름만 쓰면 된다며 그걸 네 번 하면 1천만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집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이제 우리는 1천만원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돈 없어서 학업 중단하는 농촌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해요.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니까 (트위터를)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김진세_ 그럼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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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_ 저는 정말 남의 도움만 간절히 바라던 인생이었는데(웃음),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거든요. 이젠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그게 저한테는 큰 에너지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김진세_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까요?
이외수_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가죠. 가슴 안에 만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자꾸만 줄어들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을 때 그 행복감이 증폭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도 가급적 저 좋으려고 쓰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걸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고요. 그런 맥락에서 트위터도 하는 거고요.

# 3. 이외수, 본격 소통의 시대 열다
김진세_ PC통신 시절부터 활발하게 활동하셨잖아요? 예전에는 일부러 소통을 안 하시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외수_ 그렇죠. 아예 단절하다시피 하고 폐쇄된 상태를 많이 유지하면서 살았죠. 사실 그건 제 자신이 너무 자유분방하니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으면 글 쓸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겁니다. 술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마셨죠. 주량을 이야기할 때 ‘몇 병’ 이런 건 가당찮아 하고 ‘무박 3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실제로 대개 술친구들이 그랬고, 다 일찍 죽었습니다(웃음).

김진세_ 소통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나 사건이 있으셨나요?
이외수_ 화천으로 오면서 제가 생활을 완전히 바꿨죠. 감성마을은 지자체에서 생존 작가에게 집필 공간을 내준 최초의 사례입니다. 어쨌든 제가 잘해야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줄 뿐만 아니라 특히 다른 작가들에게는 ‘특별하게 빽이 있거나 연줄을 타지 않아도 혼자서라도 열심히 하게 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는구나’ 하는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예술가한테 더 이상 헝그리 정신, 가난을 강요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술가는 멋있게 살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예술도 저변 확대가 되죠.
김진세_ 그렇습니다.

이외수_ 자식이 예술 하겠다고 하면 궁상떤다며 부모들이 머리를 쥐어박지 않습니까. 당연히 문화는 낙후될 수밖에 없고,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는 어쨌든 화천에 오면서부터는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왜냐면 수십억원을 들여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줬는데 뭐라도 보답해야 된다는 생각이죠. 술 담배 다 끊고, 어떤 것이든지 섭외가 들어오면 좌충우돌 다 도전합니다(웃음).
김진세_ 참 큰 힘을 가지셨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바뀌셨잖아요? 20대도 아니신데 말이죠(웃음).

이외수_ 저는 저 때문에 어떻게 하는 건 못해요. 정말로 힘도 안 나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드는데, 어쨌든 남을 위해서 뭘 한다는 생각이 들면 몇 배로 열심히 합니다(웃음). 물론 재미도 있고요.
김진세_ 트위터계의 스타시잖아요? 저는 트위터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거든요. 선생님께는 어떤 특별한 재미가 있으세요?
이외수_ 예를 들자면 사람들의 ‘치수’가 보입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 무엇을 갈망하면서 사는가가 보이죠. 또 현대인들은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도 한눈에 파악이 되죠(웃음). 글쓰는 데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제가 공부를 하는 거죠.

김진세_ 소통의 도구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140자에 담아야 하니까요.
이외수_ 그렇습니다. 부연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오해를 사는 수도 있지요. 현대인들은 입시 위주 논술이나 독해 방식을 배워서 의외로 난독증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재수가 없으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면 그걸 따진단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웃음).
김진세_ (웃음)

이외수_ ‘사람의 키가 얼마인데, 접시의 깊이는 얼마가 될 것이며…’ 이런 식으로 따지면, 잠언이라든가 속담의 효율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 속에 숨어 있는 행간을 읽어내지 못해요. 웬만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 정도라는 건 정말 절망적인 거 아닙니까(웃음). 얼마나 책을 읽지 않았으면, 얼마나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저렇게 비유법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트위터에 글을 쓰기가 두려울 때가 있어요.

# 4. 이외수, 알고 보면 소심한 남자
김진세_ 이번에 며느님께서도 등단을 하셨잖아요. 선생님 보시기에 요즘 주부들은 어떻습니까?
이외수_ 일단은 저도 손자를 보고 싶은데, 아이를 안 낳는단 말입니다(웃음).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경제력의 부족감이 아닐까 싶어요. 가치관의 차이죠. 우리 때는 부모님들께서 심하면 여덟 명씩 낳기도 하고(웃음). 일반적으로 세 명 이상을 뒀지만 돈으로 안 키웠거든요. 그저 부모의 사랑이면 족했죠. 또 매질도 서슴지 않고 저주에 가까운 욕설도 불사했었는데(웃음), 그러면서도 다들 잘 컸어요. 그런데 요즘은 여러 가지를 따지고 챙기는데도 애들을 보면 썩 잘 크는 거 같지 않아요. 어떠한 가치관이나 철학이 없는 삶에서 의식 자체도 방황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그것도 책을 읽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지닌 여러 가지 희로애락을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TV나 영화도 있지만, 손끝에 침 발라서 책장을 넘기면서 빠져들어가는 그런 거와는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김진세_ 예전에 읽었던 소설 「들개」에서 선생님의 표현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외수_ 감사합니다.
김진세_ 정말이에요. 그때 책만 읽었을 때는 여성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외수_ 잘 웁니다(웃음). 여성적인 면이 좀 있죠.
김진세_ (웃음) 그런 여성적인 섬세한 표현도 연습을 통해서 나오는 건가요?
이외수_ 바둑 두는 사람들을 보면 바둑판을 다 외잖아요. 저는 장편을 하나 쓰면 다 외웁니다. 필연성을 따지면서 한 단어, 한 단어 고르고 바꾸기 때문에 나중엔 거의 외우게 되죠. 지금은 못 그러는데 「벽오금학도」까지는 다 외웠어요. 그때는 철문 쳐놓고 5년 걸렸거든요. 사람들이 읽을 때는 줄줄 읽었는데 뭐가 그리 오래 걸렸느냐고 하는데, 줄줄 읽게 하려고 그렇게 걸리는 거죠.

김진세_ 철문 일화는 유명하잖아요. 어떤 면에서 굉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그러신 건 아닌지?
이외수_ 그렇죠. 왜냐면 언제 술 처먹고 바깥으로 뛰쳐나갈지 모르니까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게 하고 제가 안에서 열 수 없도록 만들었죠.
김진세_ 밖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쓴 적은 없으세요?
이외수_ 마누라를 부르는데 응답이 없거나, 집이 텅 비어있으면 엄청나게 불안해져서 어떻게든 철문을 ‘뽀개고’ 나가보려고 했는데, 원체 감옥 납품업자에게 맞춘 문이라서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웃음).
김진세_ 본인께서 생각하시는 성격은 어떤 거 같으세요?
이외수_ 저는 트리플 소문자 A(aaa)형입니다. 아주 엄청나게 소심합니다.
김진세_ 저도 AAA형인데요(웃음). 전에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글이 불안에서 나온다고 했어요. 창작의 근원이 불안이라고요. 선생님도 동의하시나요?

이외수_ 저 같은 경우에는 존재감의 확인 같아요. 저는 예술하는 사람은 ‘자뻑’을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어떤 때는 ‘이걸 정말 내가 썼어!?’ 하고 스스로 탄복하는 그런 게 필요해요. 내가 쓸 때 재미없으면 독자들도 재미없어 해요. 쓰는 즐거움이란 곧 독자들에게 읽는 행복감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즐거움이죠. 물론 그게 줄줄줄 나와주는 건 아니니까 고통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라고 저도 늘 복창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각이 뛰어난 둘째 아이에게 글을 보여줍니다. 한 단락 보여주고는 “너 이 부분 읽을 때 갑자기 오줌이 마려우면 책을 들고 화장실 가겠냐, 놓고 가겠냐”라고 물어봐요. 그 놈은 냉정합니다. “놓고 갑니다”라고 하면 다시 써요(웃음).

김진세_ 선생님께서는 문하생도 많이 두고 계시잖아요. 주부들 중에서도 작가의 꿈을 꾸는 분들이 많습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외수_ 일단 감성을 되살려야 됩니다. 무엇인가를 많이 아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많이 알려고 애쓰기보다는 많이 느끼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고, 많이 느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많이 깨달으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 보던 하늘과 오늘 보는 하늘이 똑같으면 안 됩니다. 느낌이 그때그때 달라야 하거든요. 거의 습관적으로 어떤 사물을 대하는 것, 그걸 빨리 버려야 합니다. 글쓰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물과의 대화입니다. 마음속으로라도.

김진세_ 그런 걸 통해서 감성을 충만하게 하면, 그 다음은?
이외수_ 글은 저절로 됩니다. 다양한 상상력이 발동이 되면 당연히 쓸 때도 즐겁죠.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내가 발견하고 쓰게 되니까요. 사물들하고 대화를 하는 동안에 애정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가장 좋은 문체는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김진세_ 그럼, 선생님께서는 살면서 가장 고통스럽게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나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이외수_ 돈 없어 사람 취급 못 받을 때 가장 힘들죠. 그것도 사람으로부터 소외될 때 가장 견디기가 어렵죠.
김진세_ 그럴 때 탈출법, 극복법이 있으시다면?
이외수_ 거의 없죠. 제가 노숙을 4년 정도 했거든요. 그러면 그냥 희망이고 뭐고 없습니다. 내 스스로를 그냥 유기시켜버리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인간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상태로 행려병자가 되어서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어쨌거나 저는 예술을 해야 한다는 걸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김진세_ 희망 말씀이신가요?
이외수_ 꿈이죠. 그 꿈의 실현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 5. 이외수를 꿈꾸게 만드는 사람들
김진세_ 형제분들도 있으시지요?
이외수_ 많습니다(웃음). 밑으로 여동생이 셋 있고,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김진세_ 기사를 보니 막내 동생분이 금융 쪽에서 일하시더라고요.
이외수_ 자산관리 분야죠. 어쨌든 걔는 별난 거예요(웃음). 돈하고는 참 거리가 멀고 상관이 없는 집안인데, 걔는 경영대 나와서 금융계로 빠져 어쨌든 성공했으니까요. 요즘은 그걸 그만두더니 연극을 하러 다녀요. 그 친구도 아주 재밌습니다. 나머지 동생들은 다 교편 잡고 있어요. 여동생들은 이상하게 시집도 안 가고. 나를 보고 남자에 대해서 절망을 했는지….
김진세_ (웃음)

이외수_ 한 애는 얼마 전에 중학교 교장이 됐고, 한 애는 중학교 교감입니다. 아버지한테 원체 철저하게 배워서 원리원칙주의자들이에요. 어떤 땐 좀 답답하죠.
김진세_ 선생님께서도 글이 완벽할 때까지 쓰시잖아요.
이외수_ 아마 저도 아버지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김진세_ 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을 두 분 두셨죠?
이외수_ 효자들이죠(웃음). 참 요새는 보기 드문 효자들입니다. 부모 걱정 많이 하고 “아니오” 소리를 거의 안 합니다. 큰아이는 영화 공부를 하고 있고, 작은아이는 감성마을 총 운영을 담당하고 있어요.
김진세_ 자녀 교육에서는 어떤 점을 강조하셨어요?

이외수_ 잔소리를 많이 하면서 키우지 않았어요. 학교 다닐 때는 가급적이면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도록 배려를 많이 했어요. 아이들이 “공부하라는 소리를 좀 들으면서 학교 다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웃음). 정말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어디 가고 싶은지 물어서 훌쩍 떠나기도 했죠. 담임한테는 애가 독감이라 한 3일 못 간다고 하고(웃음).
김진세_ 사모님도 같은 생각이셨나봐요?
이외수_ 애들 엄마는 “무슨 청소년이 가출도 안 하냐? 야, 가출해!”라며 강제 가출을 시켰어요(웃음). 정말로 싫어서 가출을 하면 안 돌아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가출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야 된다는 거죠. 집 나가면 무조건 개고생 아닙니까(웃음). 징징 울면서 다시 돌아오는 거죠.

김진세_ (웃음)
이외수_ 특히 중요한 것은 반드시 노력한 것만큼은 바라야지, 더 이상 바라지 말라는 거예요. ‘인생에서든 예술에서든 무통분만이나 불로소득은 강도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라.’ 그런 건 잘 지킵니다. 재밌었던 게, 아이들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면 “너희 반에서 가장 어려운 놈이 너희들 몫이야. 그것만 3년 동안 실천하면서 다니면 학교 다닌 보람이 있는 거야”라고 강조했어요. 한번은 한 아이가 도시락도 못 싸와서 겉돌고 있다고 해서 그 아이의 도시락을 챙겨 보냈어요. 먹기 싫다고 하면 미안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둘째 아이가 강제로 같이 먹고 놀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은행장 아들이야(웃음).

김진세_ (웃음)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겉돌았대요?
이외수_ 그 애 부모가 무지하게 여행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때 마침 부모가 유럽 여행을 가고 없었대요. 돈은 많으니까 매점 가서 사 먹어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둘째 아이가 붙어서 도시락을 강제로 먹으라고 했으니(웃음). 나중에 제일 친해졌어요. 그놈 결혼할 때 제가 주례를 서줬죠.
김진세_ 사모님 얘기도 좀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금 옆에 계셔서(웃음).
이외수_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해(웃음). 저희는 처음 10년 정도 극렬하게 부부싸움을 했어요. 우리는 부부애가 아니라 전우애로 산다고 하는데(웃음). 하도 열심히 싸우다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 “틀림없이 내일쯤은 이혼할 거다”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어느 날부터인가 제가 “열 번 양보하고 열한 번째는 내 의견을 관철시키겠다”고 했는데, 열 번 양보해도 열한 번째도 양보를 안 해요.

전영자_ 여자니까!
이외수_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아, 참 우리 마누라가 여자였지(웃음)’.
김진세_ (웃음) 그게 되세요?
이외수_ 그럼 안 싸우게 돼요. 20년 넘게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어지간하면 다 맡겨놨으니까요. 저는 글쓰는 일 이외에는 안 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더 싸울 일이 없어져요. 어쨌든 글은 맡길 수가 없잖아(웃음).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_ (웃음) 사모님 자랑 좀 해주세요.
이외수_ 성격이 비교적 쿨한 편입니다(웃음). 그야말로 ‘쪼잔하지’ 않으니까요. 손도 커서 퍼주기 좋아하죠. 저도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건 잘 맞죠.
김진세_ 되게 매력적인 분 같으세요. 아까 잠깐 말씀 나눴는데, 사모님을 따로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외수_ 책 내자고 쫓아다니는 출판사도 있어요.
김진세_ 마지막으로 저희 독자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이외수_ 예술의 가치에 대해서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라도 올바로 인식하는 그런 공부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지금껏 대통령 출마자 중 4대 공약 가운데 문화예술을 언급한 분을 본 적이 없어요. 그건 국회의원도 마찬가지고요. 사전적으로도 예술은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행위라고 했는데, 그게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진정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은 등한시하고 그거와 상반되는 것에만 천착하고 결국 행복과는 자꾸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김진세_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을 키울 수 있을까요?
이외수_ 어떤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운 행위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곧 가슴 안에 사랑을 키우는 것이거든요.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발로는 반드시 아름다움에 기인하거든요.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야니까, 그것을 좀 가까이 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가슴 안에 사랑을 키우는 일과 같습니다.
김진세_ 그게 곧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말씀이군요.

이외수_ 자, 그럼 이제 사진 찍어야죠? 화천(인터뷰가 있던 3월 13일은 산천어루어낚시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에 나가서 찍을까?
전영자_ 어제 갔는데 오늘 또 가게요?
이외수_ 나 사진만 찍고 들어올게. 그리고 산천어구이….
전영자_ 먹고 싶어서? 집에 많은데 구워줄게.
이외수_ 알았어. 살짝 소금 뿌려서…. 그런데 분명히 봄인데, 여긴 이렇게 눈이 허옇게 쌓여서 괜찮겠어요? 4월호라고 했죠?
전영자_ 괜찮아요. 여긴 5월까지 눈이 와요.
이외수_ 난 잡지가 걱정스럽네.

김진세의 에필로그
이외수, 소셜네트워크의 소통 귀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난했고,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글을 쓰고, 세수는커녕 머리도 안 감던 사람. 마치 이 세상 사람들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숨어 살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소셜네트워크인 트위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기인(奇人)’이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인(人氣人)’이 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소통을 끊고 살았던 옛이야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외수 선생님. 그분에게는 어떤 힘이 있을까? 어떤 힘으로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흡인력을 갖게 되었을까?

인연(因緣)은 소중하다. 인연은 수많은 관계 맺음 중 가장 드라마틱하다. 일부러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그런 관계가 소중하고 남다를 수도 있다. 억지로 시작해서 평생 동지가 되기도 한다지만, 쉽지 않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인연의 관계는 꾸미지 않아도 평생 가기 쉽다. 마치 운명처럼, 만나기 전부터 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우연히 어린 시절 선생님을 몇 번 뵈었다. 천방지축 청소년 시절 누구나 그러하듯이 선생님 앞을 그냥 지나쳤다. 글 좀 쓴다는 사람이라지만 남루하기 그지없고, 인상도 날카로운 것이 도인(道人) 흉내나 내는 기인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쨌든 그때는 인연을 몰랐다. 우습게도 사모님은 기억한다. 미스 강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남자 흉내 내던 꼬맹이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사모님이었다. 눈이 채 녹지 않은 3월의 감성마을에서 필자를 먼저 사로잡은 주인공은 사모님 전영자 여사였다. 선생님께서 일어나시기 전, 짧은 인터뷰에서 이미 다 알아버렸다. 선생님의 힘은 ‘아내’이다. 아내는 어머니이자, 동무이자, 선생님 자신이었다. 스스로 “이외수를 키운 8할은 가난”이라고 했다. 보나마나 나머지 2할은 아내 덕일 터이고, 8할의 가난은 부부가 나누어 가졌으니, 6할은 아내의 공이라는 단순한 셈이 나온다. 선생님의 6할을 키워온 아내는 그저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첫 만남의 믿지 못할 로맨스부터도 다 이외수 귀신에 홀려서 그런 것이다. 홀리지 않고서는 지금도 고운 자태를 뽐내는 분이 어떻게 친정집 쌀 도둑질까지 할 생각을 했을까!

부러운 귀신, 아니 귀신님이다. 아내를 홀린 것 말고도 귀신님의 재주는 다양하다. 우선 엄청난 정신력이다. 듣기만으로도 힘겨운 밑바닥 인생을 참아내고, 이제는 다른 이들의 인생 고충을 품어주신다. 수컷의 기운도 그렇다. 미녀를 사로잡은 기세뿐만 아니다. 젓가락 하나로 소위 ‘어깨들’을 무릎 꿇렸다는 일화며, 무박 3일의 술잔치 등은 호리호리한 몸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컷다움이다. 솔직함도 귀신님의 재주이다. 예전의 안 좋았던 실수들을 미사여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으로 사죄하고 털어낸다.

그리고 소통의 재주는 정말 남다르다. 140자 트위터 세계에서 그는 최고다. 얼마나 대단한 소통력인지, 무려 65만 명의 제자를 이끄는 교주가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우주와도 소통을 하신다고 했다. 믿는다. 어디 우주뿐이랴. 무생물과도 대화를 통해 감성을 이끌어내시는 분이다. 세상 어떤 것과 소통하지 못하랴! 그러고 보니 사모님을 홀린 것도 신통력 있는 소통이었다. “날 좋아할 거면 미리 좀 좋아해주구려.” 그랬다. 이외수 선생님의 소통은 어울려 사는 사회의 가장 큰 긍정의 힘이다.

선생님과 인터뷰 중에 ‘시대의 어른’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적이지도 않고 인기에 영합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정의롭고 지혜로운 분. 선생님이라면 나라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천만 온 국민을 소통의 힘으로 홀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길 기다린다.

긍정의 힘을 더하는 선물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참 안타까운 것은 인터뷰 전체를 지면에 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해서 밤 9시 가까운 시각까지 얘기를 나눴으니, ‘긍정의 힘’ 인터뷰 사상 최장 시간이었죠. 상당히 긴 시간이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꿈결처럼 휙 지나갔답니다. 선생님 특유의 위트 속의 교훈, 딱 맞아떨어지는 현상과 사물에 대한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감성적 표현에 홀리고 말았습니다. 독자들께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선생님의 신간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로 달랠까 합니다. 다들 선생님의 ‘글발’ 잘 아시지요? 감성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짧고도 깊은 맛이 나는 글들…. 아! 또 전해드리지 못한 것이 있네요. 감성마을에서 맛본 건강식 시골 밥상의 저녁! 음식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선생님 내외분의 넉넉한 인심과 정겨움이 몸과 마음을 살찌운 하루였습니다.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이외수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해냄)를 보내드립니다.

이외수는…
1987년작 「이슬 속에 갇힌 영혼」에는 ‘미녀 킬러’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는 우리의 답답한 수평적 삶에 뛰어든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해머’라고 저자 소개가 되어 있다. 「칼」, 「들개」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이외수는 광인(狂人) 혹은 기인(奇人), 그리고 치열한 글쓰기의 상징이었다. 호수, 막국수와 함께 춘천의 ‘3수’로 불리던 그는 2006년 화천 감성마을로 터전을 옮긴 뒤 본격 소통의 시대를 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도전’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구사하는 그는 65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며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린다. 구제역의 여파로 산천어축제가 취소되는 바람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화천군민을 위해 감자떡과 찐빵을 팔고 산천어루어낚시대회 홍보에 나서 큰 도움을 준 것도 ‘소통의 힘’ 덕분이었다. 미스 강원 출신의 부인 전영자씨와 올해로 결혼 36주년을 맞이하는 그는 돌아오는 여름 감성마을 내에 이외수 문학관을 개관하면 벗들과 함께 신나는 콘서트를 벌일 계획에 벌써부터 들떠 있다. 트위터 @oisoo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트위터 대통령과의 하루 이외수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으며,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Love Myself’를 연재하고 있다.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에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yourden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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