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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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인 환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기 때문일까. 얼굴은 화사하고 목소리는 명랑했으며 웃음은 해맑았다. 암 투병 중에도 주위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이해인 수녀를 만났다.

행복은 언제나 내 옆에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기쁨’. 이것은 이해인(66) 수녀의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의 표지 문구다. 지난 2008년 직장암 판정을 받고, 4년째 암 투병 중인 그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다른 어떤 때보다 더 새롭다고 한다.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는 암 투병 중에도 주옥같은 글들을 엮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발간했다. 지난 4월에 세상에 처음 나온 이 책은 6월 초 현재 20쇄를 발행해 1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에 이해인 수녀는 지난 6월 11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화답하기 위해 ‘북 콘서트’를 열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11일 저녁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북 콘서트 현장은 400석 공연장이 순식간에 꽉 차 그의 인기를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6월의 장미가/내게 말을 건네옵니다.//사소한 일로/우울할 적마다/“밝아져라”/“맑아져라”/웃음을 재촉하는 장미//삶의 길에서/가장 가까운 이들이/사랑의 이름으로/무심히 찌르는 가시를/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이해인 수녀는 독자와 함께 ‘6월의 장미’라는 시를 낭독했다. 그러고는 말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며 사람들의 입에 장미 향기가 가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민들레, 냉이꽃 등 수수한 꽃을 좋아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화려한 꽃들이 좋아지네요. 여러분은 가시 돋친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도 다시 가시 돋친 말로 되갚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는 게 힘들다고/말한다고 해서/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아닙니다.//내가 지금 행복하다고/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정말 아닙니다.//마음의 문 활짝 열면/행복은 천개의 얼굴로/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어디에 숨어 있다/고운 날개 달고/살짝 나타날지 모르는/나의 행복//행복과 숨바꼭질하는/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오늘도 행복합니다.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를 낭독한 이해인 수녀는 “투병 이후, 진짜 행복이 뭔지 깨달았다”며 인생에서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사선 항암 치료를 받아보니까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오히려 내면의 행복 지수는 올라가는 것을 느꼈죠. 그래서 고통이 쾌락의 반대일 수는 있지만, 기쁨의 반대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질수록 행복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행복은 내가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나 내 옆에, 내 집 안에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봄에 떠나고 싶다
이해인 수녀는 산문집을 통해 “요즘은 매일이라는 바다의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또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주변에는 보물 아닌 것이 없는 듯하다는 겸손의 말도 내비쳤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도 찾아낼 보물이 많다는 것에 새롭게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이와도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되고, 모르는 이웃과도 하나가 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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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즘 유독 ‘봄’에 대한 찬양을 많이 한다. 과거에는 누군가 봄이 좋다고 하면, 봄이 아름답긴 하지만 온천지에 꽃이 너무 많이 피어 정신없고,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낙엽과 함께 쓸쓸하더라도 차분한 느낌이 드는 가을이 더 좋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암 투병 이후, 그는 자연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지금은 암 환자가 되어서인지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봄이 무척이나 황홀한 선물로 다가오고, 순간순간이 아름다워서 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계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봄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이해인 수녀는 “절친했던 화가 김점선, 에세이스트 장영희가 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봄에 떠나면 남은 이들이 좀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암투병 이후, 삶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늘 초조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느긋하게 웃을 수 있게 됐다고. 그 이유가 바로 “이별의 슬픔과 몸의 아픔을 견디어내며 아직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고 전했다.

명랑 투병 환자, 이해인 수녀
사람들은 이해인 수녀를 만날 때마다 “좀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주춤할 때가 많았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때가 대부분인 것이 암 환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의사나 환자의 한마디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지고 예측 불허인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의기소침해지면서 ‘암 환자의 고통은 설명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자주 실감하곤 합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몸의 아픔 못지않은 마음의 아픔이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일도 많아요. 늘 ‘명랑 투병’을 하겠노라고 자부해왔지만 실은 저 역시 저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 지내느라고 마음의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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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는 병이 주는 쓸쓸함에 길들여가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는 것을.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겠다고 작정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아픈 중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고 한다.

“마음이 담백해지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 때문에 전보다 더 웃고 다녔더니, 동료들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묻곤 했어요. 그래서 몇 가지 행복의 작은 비결을 알려줬지요.”

이해인 수녀가 동료들에게 알려준 행복의 작은 비결 중 첫 번째는 ‘받은 것에 감사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의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을 읽어주는 작은 위로자가 되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늘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들에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장으로 열리게 되고, 또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웃조차 정겹게 느껴져 사랑의 인사를 하게 된다.

세 번째는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쓰는 것’이다. 나의 실수를 웃음으로 이해해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우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고 애쓰는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이 고개를 들 때,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때,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금방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이별’을 생각해보자
북 콘서트 마지막 순서로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 이해인 수녀. 그는 “왜 수녀가 되셨느냐”라는 한 독자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초등학교 때 인간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결혼을 안 하고도 인생과 청춘을 멋있게 사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때마침 언니가 수도원에 가면서 그 생활이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기심에 언니를 따라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별로 대단한 이유는 아니죠?(웃음)”

암 투병 중에도 내면 행복 지수 업!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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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열일곱 살의 소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짝사랑을 고백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소녀의 질문에 이해인 수녀는 크게 한번 웃더니, “짝사랑의 장점은 선택의 자유가 있어서 좋고, 자금이 안 들어서 좋고, 버림받을 염려가 없어서 좋다”라며 “나도 중2 때 나 좋다는 남학생에게서 편지를 받아봤다”라고 소녀 시절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받은 편지에는 ‘나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댁의 얼굴을 떠올려본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댁이 뭐예요. 소녀도 아니고. 그래서 거절했죠. 저를 꽃에 비유하거나 시를 써서 줬으면 만났을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좋은 시를 써서 선물로 줘보세요.”

이해인 수녀의 재치 있는 답변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짝사랑 고민에 빠진 소녀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독자는 나이가 들면서 부부간에 잔소리와 다툼이 많아지는 데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해인 수녀는 “저는 연애 생활을 못해봤는데, 많은 분들이 저에게 결혼과 이성 간의 고민 상담을 많이 한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해요. 무관심하면 싸우지도 않죠.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 같아요. ‘상상 속의 이별’을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싸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해인 수녀는 부부 간의 불화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불화, 친구 간의 불화 등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통의 모든 순간에는 ‘상상 속의 이별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용서 못하고 이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암 투병 이후, 일상의 소소함을 더욱 기뻐하게 됐다는 이해인 수녀.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글을 쓰면서 희망을 나누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또한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병마와 싸울 뿐 아니라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일도 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원상희 ■참고 서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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