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은 그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여자였다. 골대를 향해 쉴 새 없이 뛰고 땀 흘리며 모든 청춘과 열정을 다 바쳤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프고 힘들었다. 사랑했던 만큼 실망이 컸고 소중했던 만큼 좌절감도 깊었다. 결국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더 이상 자신처럼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을 세상에 당당히 알렸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뒤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온 그녀를 직접 만났다.
견디기 힘들었던 정신적 핍박 “술과 폭언에 시달려”

농구선수 김영옥, 충격 고백 이후 첫 단독 인터뷰
김영옥은 “조용히 은퇴를 해야 할지, 가슴에 맺힌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떠나야 할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농구를 하기 위해 참아왔던 말들은 꼭 하고 떠나고 싶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지난 시즌을 끝낸 후 소속팀으로부터 빨리 재계약을 체결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구단의 호의적인 제안이 고맙고 좋았지만, 평소 같은 팀에서 함께 뛰기를 바랐던 후배 정선민을 먼저 추천하며 자신은 그 이후에 계약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정선민의 영입이 성사되면서 김영옥에 대한 구단의 태도가 달라졌다. 김영옥은 “구단에서 이전보다 30% 삭감된 연봉을 제시했다. 재계약을 서두르던 지난번과 180° 바뀐 싸늘한 태도였다. 계약을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었다”라며 정 선수를 데려오자마자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소속팀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그녀는 팀의 주장이자 후배들의 맏언니로서 연습과 경기에 임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시즌을 준비할 때도, 팀이 큰 점수차로 지고 있을 때도, 팀이 연패를 당해 분위기가 최악일 때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면 늘 앞장섰다. 심지어 부상으로 몸이 아플 때도 치료를 시즌 뒤로 미뤄가며 경기에 출전했다.
김영옥의 고백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동안 감독으로부터 들어야 했던 욕설, 그에 따른 인간적인 모욕감과 체력 관리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잦은 술자리 강요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 무척이나 컸다고 밝혔다.
김영옥은 “‘늙은 것들이, 나이 처먹은 것들 때문에…’, ‘나 같으면 입에 칼 물고 자살한다’, ‘이런 ○○ 같은 것들’, ‘장애인이냐?’, ‘너 그렇게 살고 싶냐?’ 등의 폭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라며 “부끄러워서 차마 누구에게 옮기기도 힘든 말들을 들어가면서도 평생 농구만 바라보고 살아온 내가 잘할 수 있는 단 하나가 결국 농구였기에 계속 참았고, 이 팀이 나와 함께할 마지막 소속 구단이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라고 그간의 억울했던 심경을 드러냈다.

농구선수 김영옥, 충격 고백 이후 첫 단독 인터뷰
감독과 구단 측은 강하게 반박 “말도 안 된다”
술자리를 강요당하고 심한 욕설에 시달렸다는 김영옥의 글은 인터넷에서 일파만파로 퍼지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몇 년 전에도 여자 농구선수들이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사건이 크게 물의를 일으킨 바 있어 그녀의 이번 고백에 대한 관심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네티즌들은 “여자 선수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니 열심히 뛰는 그들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김영옥의 전 소속팀 KB국민은행의 정덕화 감독은 “어이가 없다. 술을 강요한 적이 없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정덕화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할 말은 많지만 선수와 다투고 싶지 않아 말을 아끼는 것뿐이다”라며 “팀이 연패에 빠지거나 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술자리를 가진 적은 있다. 하지만 술을 강요한 적은 없으며 김영옥에게도 사이다를 마시게 했다. 폭언 역시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긴 어렵다. 다만 노장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하려고 했던 말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진실을 밝혀야만 했던 이유
농구계를 발칵 뒤집은 김영옥의 충격 발언 이후 정확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자 그녀를 직접 만났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최근 김천시청 구단으로 소속을 옮겨 다시 농구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이적 후 처음으로 출전한 2011국제초청 여자농구대회에서는 말레이시아 국가대표와의 열띤 대결 끝에 빠른 발과 끈질긴 승부근성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를 마친 김영옥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아주었다. 논란이 불거진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았기에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갔지만 의외로 그녀는 밝고 담담했다. 그러고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프로 무대를 은퇴하고 나서 두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함께 운동하던 후배들이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그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나아진 분위기에서 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물론 그 글을 올리는 저도 매우 괴로웠지만, 은퇴한 선배로서 총대를 메고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고백을 했던 거고요. 저처럼 힘든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동료와 후배들은 누군가 밝혀주기를 원했던, 그래서 좀 더 개선되기를 바랐던 일을 대신 해준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에 무척 고마워하면서도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농구선수 김영옥, 충격 고백 이후 첫 단독 인터뷰
김영옥은 자신이 쓴 글에 담긴 내용들은 모두 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 소속팀과 정덕화 감독이 그녀의 주장에 반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적어도 자신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밝히고자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팀 성적이 부진했을 때 감독님이 저희들을 혼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술을 강요하고, 폭언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선수들은 몸 관리도 잘하고 틈틈이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술을 마시라고 하니까…. 물론 시합이 잘 안 풀려서 격려 차원으로 술자리를 만들어주시는 거라면 저희도 당연히 좋게 받아들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계속 강요를 당하니까 힘들었다는 거예요.”
파문 이후 김영옥과 정덕화 감독 모두 연일 인터넷의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큰 고초를 치렀다. 급기야 그녀는 정덕화 감독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더 이상 언론에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더 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제 주장에 대해 반박 인터뷰를 하신 걸 보고는 기분이 좀 그랬어요. 처음에는 ‘술을 한 잔 준 적 있다’라고 하셨다가 이후에는 ‘사이다만 줬다’라고 말을 번복하셨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새로운 팀에서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다
그래도 김영옥은 일어섰다. 다시는 농구공을 손에 잡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은퇴 선언까지 했지만 이대로 팬들을 떠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은퇴를 하더라도 제대로,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농구선수 김영옥, 충격 고백 이후 첫 단독 인터뷰
김천시청 구단의 끈질긴 러브콜에 결국 그녀는 다시 농구 코트에 섰다. 올해 전국체전에서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뒤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은 바람이다. 이후에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남편 곁을 지키는 평범한 아내의 일상으로 돌아가 2세 계획도 세우고, 어학연수도 떠날 계획이다.
“168cm의 작은 키로 프로선수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힘든 기색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악착같이 뛰어다녔던 숱한 시간들이 가슴 한편에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농구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고, 팬들로부터 과분한 사랑도 받았어요. 저는 정말 코트에서 뛰어다닐 때 가장 행복했어요.”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김영옥의 용기 있는 고백은 뒤를 이을 후배들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인권을 보장받으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