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에게 ‘집’은 곧 ‘부동산’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집’ 한 채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 인생의 ‘키’를 움켜잡아야 했고, ‘사람’은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집’이 ‘사람’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그 안에서 ‘나’의 삶,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집’에 대한 올바른 상식을 정립하고자나선 이들이 많아졌다. 나와 가족이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 그곳이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땅콩집’에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땅콩집’ 이야기
건축가 이현욱 소장(42)은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조언을 하다가 함께 ‘땅콩집’에 살게 된 경우다. 건축에 관한 기사를 쓰는 16년 차 기자였던 친구는 늘 마음속으로는 ‘언젠가는 단독주택에 살 것’이라 꿈꿔왔다고 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에게 “뛰지 마, 살살 걸어.
아랫집에서 싫어해”라는 잔소리를 해야 하는 것을 무척 미안해했다. 누구나 아이들에게는 마당이 있는 집이 좋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활과 취향을 반영한 집이 편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선뜻 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듯이, 친구 또한 그랬다. 하지만 ‘단독주택’을 꿈꾸면서 몇십 년을 아파트에 갇혀 살다가 자녀들이 성장해 분가한 뒤에야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반드시 주택을 고집해야 할 시기는 아이들이 어릴 때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도달했을 때, 이 소장은 친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집을 짓자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이제껏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가 집을 짓는다는 것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 아파트만 보고 살아왔을 터. 하지만 실제로 집을 짓는 데는 비용도, 시간도, 힘도 그리 크게 들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집이냐’ 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취향도 없이 그저 넓고 큰데다 멋까지 잔뜩 낸 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부엌과 거실이 자리한 1층. 통창을 통해 햇빛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마당을 밟을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이현욱 소장은 “마당은 집의 얼굴이다”라고 강조한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긴 두 집은 마당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아이들까지 참여해 두 가족이 직접 가꾼 마당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상한선을 정하고 나서 이를 다시 땅값, 인테리어를 포함한 공사비, 설계비 및 취등록세 등의 항목으로 나눠 각각 가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정했다. 계산 끝에 40평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사실 이 소장의 집은 등기상 32평이지만 실제 평수는 48평 정도다. 등기에는 포함되지 않는 다락방 면적이 16평가량 되기 때문이다. ‘땅콩집’에서 다락방은 여러모로 ‘효자’ 공간이다. 경사 지붕으로 집을 지으면 공짜로 생기는 공간인데다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락방은 그 자체로 공기 단열층 효과를 내기 때문에 단열에도 도움이 되며 환기도 쉽고 자연 채광도 가능하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1.5m 이내였던 다락방 평균 높이가 최근 1.8m로 높아졌다. 따라서 중간 부분은 2m 이상이 되므로 실내 공간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땅을 확보한 뒤에는 본격적인 설계에 착수했다. 땅을 고르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땅값을 3억원 이하로 맞추기로 했으나 마음에 꼭 드는 땅이 3억6천만원이라 시작부터 예산을 초과하고 말았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는 인테리어에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추고 사는 것보다는 살면서 하나하나 장만해가는 ‘즐거움’을 맛보자는 생각이었다.

이현욱 소장은 ‘집에 대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다.
키가 크고 멋진 나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고 키우기 쉬우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나무들을 선택했다. 먼저 온 식구가 함께 옹벽에 타일을 붙이고 간이 담을 만들었다. 삐뚤빼뚤, 자세히 보면 무척 엉성하지만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었다. 종일 삽질을 하고 돌을 고르며 나무와 꽃을 심었다. 이 소장네 마당은 아직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살면서 심고 만들고 고쳐나가며 집도, 삶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 소장의 집은 따뜻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나무’를 소재로 한다. 공사 기간과 단열 등을 고려해 목조 주택을 선택했지만 사실 겉보기에는 일반 주택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나무는 뼈대로 사용하고, 철제 강판이나 시멘트 패널 등으로 외벽을 꾸몄기 때문. 따라서 집이 튼튼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콘크리트 집보다 벽을 얇게 할 수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고, 집을 건조하지 않게 유지해주기 때문에 가족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3층은 거실 겸 AV감상실로 활용하고 있다. 소파와 책장을 배치해 TV를 보고 음악을 듣는 곳으로 만들었다. 사진에 나오지 않는 반대편에는 아이들의 놀이방이 있다. 경사진 구석은 장난감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쓴다.
인테리어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번잡하지 않게, ‘최소한’의 인테리어를 시행했다. ‘땅콩집’은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지만 양쪽 집에 사는 구성원들이 다른 만큼 공간 활용과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이 소장과 친구의 집도 각 가족의 개성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 소장은 일단 1층의 중심에 주방을 배치했다. 남쪽에 주방을 두고 햇빛이 들어오는 통창 앞에 크고 긴 식탁을 놓았다. 식구는 4명이지만 식탁은 10인용으로 맞췄다. 이 식탁 하나가 집 안의 안방 역할을 하는 일종의 ‘한국형 다목적 가구’가 되는 컨셉트다. 또 2층 방을 네 살배기인 딸의 방으로, 3층 다락방을 여덟 살짜리 큰아들 방으로 정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잠은 2층에 있는 침대에서 함께 자고 3층 다락방은 장난감을 두는 놀이방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3층 거실은 진짜 거실 역할을 하도록 했다. 소파와 책장을 배치해 텔레비전을 보고 음악을 듣는 곳으로 쓰고있다.

2층에는 네 살배기 딸을 위한 방이 있다. 그동안 쌓은 단열 노하우를 집약한 이 방은 겨울에도 무척 따뜻하다. 전망을 고려해 남쪽으로 내는 창은 크게 하더라도 다른 쪽 창은 최대한 작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5년 정도는 같이 산 뒤에, 그때 가서 계속 살고 싶으면 함께 살고 그렇지 않으면 같이 팔기로 약속했다. 짓는 것도, 떠나는 것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등기 부분도 처음부터 확실하게 해두었다.
그동안 이 소장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정말 ‘자신이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공개해왔다. ‘땅콩집’에 관한 정보를 담은 블로그와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그가 우려하는 것은 ‘땅콩집’이 또 하나의 고정화된 재테크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는 ‘땅콩집’이 누구에게나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철학’을 갖고 ‘집’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이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집’의 진짜 정의라고 그는 강조한다.
윤상희씨 집
주부 윤상희씨(36)는 2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해 10월 지금의 집에 입주했다. 처음 단독주택에 살 결심을 하고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2년 전이고, 실제 본격적인 공사는 2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에 소요된 시간이 많아 여느 ‘땅콩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집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윤상희씨가 직접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수정을 거치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 셈이다.

1 윤상희씨는 “나만을 위한 푸른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살아가는 데 커다란 위안을 준다”라고 말한다. 볕이 좋을 때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꽃을 심어두고 들여다보기도 한다. 마당 한가운데 설치해둔 작은 텐트는 딸들의 놀이터가 된다. 2 2층은 공간을 넓게 터 아이들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윤상희씨가 처음 ‘땅콩집’에 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저 ‘아이들에게 마당이 있는 집을 선물해줘야겠다’는 이유 때문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병아리나 강아지를 키우며 같이 놀 수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변 사람들처럼 투자 가능성과 시세 차익 등을 따져 아파트를 사고 또 되팔면서 골치를 앓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땅을 확보하는 것. 비용은 물론, 처음 결심했던 취지에 잘 맞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라도 땅을 잘 고르는 것이 관건이었다. 안 다녀본 곳 없이 방방곡곡 발품을 판 끝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면서도 자연환경이 빼어난 용인 동백지구로 최종 결정했다. 육아나 교육에 있어 적합한 곳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윤상희씨 가족은 형태는 ‘땅콩집’이지만 단독으로 살 수 있도록 한 필지에 하나의 집을 지었다. 땅 계약을 마치고는 건축가를 만나 우리 가족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를 함께 논의했다. 설계와 시공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바로 시공업자에게 맡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었지만, 예산 및 계획에 맞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가와 상의하고 디자인을 맡기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설계 과정에서 윤상희씨가 가장 크게 어필한 부분은 바로 마당이다. ‘행복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마당이 필수조건이었고, 가능한 한 크게 만들고 싶었다. 집 내부는 너무 작아도 곤란하겠지만 네 식구에게 맞지 않게 지나치게 커도 불편할 거라는 생각에 적당할 만큼으로만 짓고 땅의 나머지 공간은 모두 마당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단열과 보온에 신경을 썼다. 그녀 또한 처음에는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이 추울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로 살아보니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집을 지을 때부터 단열과 보온을 고려해 창문, 단열재, 다락방 등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로 아이들이 쓰는 2층은 1층에 비해 더욱 따뜻하다. 나무 자체가 주는 따스한 느낌도 한몫한다. 난방비와 관리비는 아파트에 살 때보다 오히려 적게 납부하고 있다.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달리 엘리베이터 유지비, 복도 청소비, 공동 전기요금, 인건비 등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생긴다. 하지만 단독주택은 실제로 사용한 만큼만 내면 된다.

1층은 거실로 사용하고 한쪽 편에는 주방을 마련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나도록 인테리어에 신경 썼다. 평소 실내 장식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소소한 부분까지 직접 꾸몄다.
사실 윤상희씨보다 더 땅콩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여덟 살, 여섯 살인 두 딸은 땅콩집에서 살게 된 뒤로는 그동안 아파트에서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쿵쾅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목청껏 소리도 지르고, 해가 진 뒤에도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친다. 특히 아이들이 열광하는 곳은 마당이다. 강아지와 함께 잔디 위를 뒹굴고, 카페놀이를 하고, 놀이 삼아 물을 뿌리고,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한다. 땅콩집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의 삶에 결을 새기게 될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