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신장과 간 모두 기증한 조성현·전형자 부부

국내 최초 신장과 간 모두 기증한 조성현·전형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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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어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성현·전형자 부부는 한 번도 하기 힘든 장기 기증을 두 번이나 했다. 부부 모두가 간과 신장을 기증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국내 최초 신장과 간 모두 기증한 조성현·전형자 부부

국내 최초 신장과 간 모두 기증한 조성현·전형자 부부

초록이 짙어져가던 6월의 어느 날, 조성현(52)·전형자(51) 부부를 만났다. 지난달 말 서울아산병원에서 간 기증 수술을 받은 전형자씨는 2주 동안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퇴원을 하는 길이었다.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을 끝내고 가족들이 있는 강원도 정선으로 돌아가는 길, 조금은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편안해요. 오랜만에 집에 가니까 좋고요. 병원에서 나오기 전에 제 간을 이식받은 이식인 청년을 만났는데 왠지 모를 감정에 울컥했어요. 스물한 살이라는데 우리 아들 같기도 하고, 아들과는 또 다른 애틋한 기분이 들더군요.”
전형자씨의 장기 기증은 지난 2006년 신장 기증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남편 조성현씨 역시 2001년과 2006년에 간과 신장을 기증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부 모두가 간과 신장을 기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부의 장기 기증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이었어요.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남편이 신장 기증을 하려고 왔는데 아내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저에게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그런 결정을 하다니,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나중엔 화가 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 무척 생소했거든요. 화가 나서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사실 조성현씨는 TV에서 장기 기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아내에게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는 말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다. 큰 관심이 없었던 전형자씨가 그때마다 “알아서 하슈”라고만 대답했을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랬어도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에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몇 해 전 위암 수술을 받고 건강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던 때였다. 그런 그에게 남편의 신장 기증 소식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장기 기증을 할 때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지 몰랐어요. 내 것이니까 내 동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알아서 하라는 아내의 대답을 듣고 잠시 ‘화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후였어요.”

조성현씨는 결혼 5년 만인 1991년, 위암 진단을 받고 위의 75%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외삼촌께서 돌아가시면서 장기 기증 서약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장기 기증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한 번 암 수술을 치렀던 터라 진지하게 마음을 먹지는 못했다.

“2000년에 장기 기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때쯤 나도 기회가 되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제 마음을 움직인 건 스스로의 욕심이었어요. 내가 건강하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다분히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장기 기증, 생애 최고의 결혼 기념 선물
그렇게 그는 2001년 8월 신장을 기증했다. 스스로의 건강을 입증해보고 싶었다는,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 계기가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장 기증은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2006년 두 사람이 함께한 장기기증은 결혼 20주년 최고의 선물이었다.

2006년 두 사람이 함께한 장기기증은 결혼 20주년 최고의 선물이었다.

“기증을 하고 나니 내가 남에게 준 것보다 스스로 받은 것이 훨씬 많아요. 제가 참 고지식해요. 농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기증 후 밤송이 같았던 마음이 깎여 동글동글해졌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속에 있던 차가운 것이 풀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내가 이 좋은 걸 마흔이 넘도록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서 억울한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몰랐던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니 사람이 달라지더라고요.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어요.”

아내 전형자씨는 그러한 남편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대쪽 같은 남편의 성격은 공무원으로서는 만점이었지만 집에서는 찬바람이 불었다. 오죽하면 두 아들들도 집에 산소가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남편이 부드럽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형자씨도 자연스럽게 신장 기증과 만성신부전 환우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그녀가 신장 기증을 결정하게 된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을 통해 신부전증 환자들에 대해 알고 난 후로 신장을 두 개 가지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더라고요. 누구는 하나가 없어서 죽는데 난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 게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먼저 말을 꺼냈죠.”

신장 기증을 하고 싶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조성현씨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장 기증 이후 간 기증도 생각하고 있던 그는 아내와 함께 수술을 하기 위해 5년 후쯤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간 기증 계획을 앞당겼다.

“2001년에 신장 기증을 했으니까 간 기증은 10년 후쯤에 하려고 했어요. 그동안 몸을 더 만들고 관리를 할 계획이었는데 2005년에 아내가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럼 같이하자’라고 했죠. 그러고 보니 2006년이 결혼 20주년이었어요. 마침 20년 장기근속 휴가를 열흘 정도 받아서 아내와 함께 서울에 와 수술을 받았죠.”

2006년 6월, 1주일 간격을 두고 남편은 간을, 아내는 신장을 기증했다. 모두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날 때 두 사람은 병원에서 휴가를 보냈다. 함께였기에 무섭기는커녕 하루하루가 즐거웠단다. 그때 서로의 병실을 오가며 병원에서 보낸 20일은 그들 생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추억한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전형자씨 역시 신장 기증 후 자연스럽게 간 기증을 생각하게 됐다. 한 번 했는데 두 번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줄 수 있는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무겁게 느껴졌어요. 나이가 들어 병들기 전에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편도 흔쾌히 동의해줬고 이번에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수술을 받았어요.”

장기 기증을 통해 부부는 하루하루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됐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해온 내 몸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됐다고. 부부는 일단 용기를 내보라고 말한다.

“시작하는 게 힘들지 한 번 마음먹고 나면 다음엔 쉬워요. 내가, 우리 가족이 아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내가 한 번 용기를 내면 한 사람과 그 가족이 살 수 있어요. 두 번 해본 사람으로서 드릴 수 있는 말이에요. 삶은 나눌수록 채워집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안진형(프리랜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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