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40여 명의 한인 교포들 신디 황의 카메라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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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인 교포들이 갖고 있는 문화와 정체성을 렌즈로 담고 싶었어요”

신디 황은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포토그래퍼다. 그녀의 사진에는 늘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곤 했다. 특히 지난 2004부터는 미국과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한인 2백40여 명의 사진과 인터뷰 글을 모아 「교포」를 출간했다. 이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무려 7년이나 걸린 대장정 프로젝트다. 그녀는 왜 교포들의 사진을 찍었을까?

2백40여 명의 한인 교포들 신디 황의 카메라에 들어가다

2백40여 명의 한인 교포들 신디 황의 카메라에 들어가다

교포를 찍는 교포, 신디 황
신디 황(37)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년 후인 두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시카고로 이민을 간 후 미국 메릴랜드 주 로크빌로 이주했다. 그 후 그녀는 뉴욕 패션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패션 광고 업계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수년간 일하다가 뉴욕 타임스에 사진이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시조(CYJ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 이름 ‘신디’와 한국 이름 ‘황조현’을 섞어 만든 예명이다.

신디 황은 ‘교포 프로젝트’ 를 통해 유망한 포토그래퍼로 주목받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 2백40여 명을 인터뷰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가 찍은 인물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미국 CBS 인기 프로그램 ‘서바이벌’의 우승자 권율부터 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한 배우 다니엘 대 김, 소설가 이창래, 클래식 뮤지션 안트리오 등 유명인사들을 비롯해 스님, 시민운동가, 세탁소 주인, 의사 등 지위, 출신, 성별, 나이를 망라한 인물들이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미국에서 한국과 관련된 사진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부재감에서부터 출발했다.

“서점을 돌아볼 때면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등장하는 책은 많은 반면 한국인과 관련된 책은 찾을 수 없었죠. 특히 한국 문화나 역사에 대해 사진으로 된 교육 자료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제 렌즈를 통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이민자들의 문화와 그들이 겪은 인생 경험들을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같은 교포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교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은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서로 확인하고 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저는 사실 1년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대신 제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고등학교 때가 떠올라요. 한국의 문화는 일관되고 통일됐었죠. 미국은 다양한 문화와 개성이 합쳐져 만들어졌거든요. 한국은 제가 자라온 미국과는 매우 달랐고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2백40여 명의 한인 교포들 신디 황의 카메라에 들어가다

2백40여 명의 한인 교포들 신디 황의 카메라에 들어가다

‘교포 프로젝트’의 인물 사진은 모두 무표정에, 같은 비중의 크기로 나열돼 있다. 그녀는 촬영을 위해 인물들과 의상이나 포즈에 대해 따로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패션 업계에서 일했던 그녀의 이력을 볼 때 좀 의외다 싶다.

“패션 비즈니스 업계는 모든 게 상업적이죠.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서는 개개인이 세밀하게 기록되고 관찰되어야 해요. 보는 이들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도록 말이죠. 제 작품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 배경이나 경제적 지위에 대한 설명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모델들에게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오라고 주문했어요.”

하나의 연결고리로 한인들 뭉치다
신디 황이 직접 섭외작업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비결은 릴레이 추천 방식 덕분이다.

“2004년 뉴욕의 쿠퍼 휴이스트 박물관에서 MIT에서 신경인지학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승 교수님을 만났어요. 교수님은 각 뉴런에 연결돼 있는 신경을 통해 두뇌의 새로운 모델을 지도화하는 연구를 하고 계셨어요. 제 프로젝트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그 자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교포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 완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인연 덕분에 교수님이 첫 모델을 해주셨고 이후 릴레이 방식으로 인물들을 추천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세바스찬 승 교수는 다음 인물로 두 사람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 추천 릴레이 방식은 쭉 이어져 2백40명을 넘어섰다. ‘교포 프로젝트’의 촬영은 2004년 11월에 시작해 2009년 5월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뇌의 신경세포처럼 교포들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로 완성된 프로젝트였다.

신디 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고리들이 ‘교포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의미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참가자들과 교포로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나눴다. 그럴수록 작업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미국에서 발간된 인터뷰 사진집 ‘교포’의 앞·뒷면.

미국에서 발간된 인터뷰 사진집 ‘교포’의 앞·뒷면.

“‘교포 프로젝트’ 전시회를 열었을 때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셨어요. 특히 뉴욕 한인협회에서 연 전시회는 여성 교포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죠. 왜냐면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과 한국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조국과 고립돼 있다고 생각해요. 이 프로젝트가 그들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민 1세대 교포다. 만약 그녀의 작업을 보았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만약 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작품을 보셨다며 더없이 좋아하셨겠지요. 그렇지만 다양한 환경과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교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
그녀가 촬영한 2백40여 명은 모두 각자의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신디 황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몇 사람이 있다. 덴마크 입양인 출신인 건축가 린다 최 베스터가드, 9·11테러 때 남편을 잃고 방글라데시에 고아원을 설립해 아이들을 돕고 있는 패트리샤 한, 알래스카에서 아픈 아들과 세 딸을 키우며 장애아 가족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세라 최 등이다.

“세라 최는 촬영 전부터 이미 그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눈물과 열정이 묻어나는 인생 이야기였죠. 또 바비 리라는 한인 코미디언은 두 번째 이미지에서 양말만 신고 전라 상태로 하늘을 가리키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촬영해달라고 해서 곤혹스러웠죠. 소설가 이창래씨나 배우 다니엘 대 김은 모든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유명인임에도 매우 겸손하고 친절해서 인상 깊었어요.”

스탠퍼드대와 예일대 법대 출신으로 2006년 미국 CBS 리얼TV쇼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권율도 그녀의 카메라 앞에 섰다. 권율은 뉴질랜드 쿡 아일랜드에 옷 두 벌과 신발 하나만 가지고 들어가 생존 게임을 벌여 최후의 승자가 된 의지의 인물이다.

“권율은 매우 지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특히 미국 사회에서 우리 교포가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죠. 2008년 재외동포재단에서 그를 처음 만나서 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했어요. 지금도 ‘교포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컨설팅해주는 고마운 분이죠.”

<B>Beauty(아름다움)</B> 아시아 여성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선호하며 서구화되기 위해 성형 수술을 감행한다. 가장 보편적인 수술이 쌍꺼풀 수술이다. 원본 사진과 조작된 사진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의 문화적 측면을 나타낸 신디 황의 작품이다.

Beauty(아름다움) 아시아 여성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선호하며 서구화되기 위해 성형 수술을 감행한다. 가장 보편적인 수술이 쌍꺼풀 수술이다. 원본 사진과 조작된 사진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의 문화적 측면을 나타낸 신디 황의 작품이다.

또 그녀의 사진 속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은 승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승려다. 신디 황은 그녀에 대해 뉴욕 할렘가에 절을 지은 비구니라고 소개했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할렘가에 지은 절에서 수행과 함께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이에요. 전 그녀와 작업을 하면서 승복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죠.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신비로웠어요. 그 움직임은 방 전체를 특별한 에너지로 가득 채웠죠.”

신디 황은 사진을 찍으며 참가자들의 프로필과 정체성에 대해 공통 질문을 했다. 그녀는 그중 인상적이었던 몇몇 답변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국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향수(Perfume)를 갖고 있는 것과 같아요. 다른 여러 가지를 제게 끌어당기죠.” (이경화)

“제가 아는 한국은 1968년 건너온 부모님의 나라죠.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의 문화, 정체성, 가치는 그분들이 가져온 상자 안에 고스란히 봉해져 있어요.” (이창래)

“정체성은 고향이나 이웃 공동체보다 더 강하고 깊은 존재예요. 전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에요. 그저 제가 보아왔고, 해왔던 일들이 제 정체성이라 할 수 있죠.” (데일 피트너)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혹은 그 어떤 인종이라 할지라도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것은 참 가치 있는 일이죠. 전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문화를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패트리샤 한)

“전 회사의 경영진들이 아시안계 미국인을 ‘노예’가 아닌 ‘파트너’의 입장으로 이해해주길 바라요.” (그레이스 류 볼크하우젠)

<B>Substructure(하부구조) </B>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디 황의 프로젝트 사진 중 하나. 상위 계층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결국 하위 계층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베이징 이주민들의 손을 통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Substructure(하부구조)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디 황의 프로젝트 사진 중 하나. 상위 계층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결국 하위 계층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베이징 이주민들의 손을 통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전 정체성에 대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어요. ‘난 한국인인가? 흑인인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제 핏줄 안에는 또한 아프리카와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조나단 립케)

현재 신디 황은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는 국제적으로 기회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베이징의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비디오로 작업하고 있다.

“베이징은 기회의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큰 도시이기도 해요. 그 안에 중국 이민자들이 있죠. 그들의 생활을 렌즈에 담아보려고요. 이 프로젝트는 ‘이민자 아이들을 위한 모금 기구’와 함께하고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은 ‘하부구조(Substructure)’로 중국 이민자 중 5세부터 80세까지 50명의 손을 담았다. 전시는 오는 9월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다. 상하이, 홍콩,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전시도 추진 중이다.

“한국에서도 저를 도와줄 기업이나 후원자가 나타난다면 기쁜 마음으로 ‘교포 프로젝트’를 비롯해 제 모든 작품을 가져가고 싶어요. 물론 기회가 되면 책 출간도 하고 싶고요.”

신디 황은 자신의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 방문해달라며 프로젝트 홈페이지(www.kyopoproject.com)를 소개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조국인 한국에서도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금은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 달려갈 거예요!”

인종과 문화를 넘어 낯선 곳에서 자신만의 터전을 개척한 교포들의 삶은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인 교포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삶을 꺼내 하나하나 렌즈에 담아낸 신디 황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인 교포 중 한 사람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제공 / 신디 황(CY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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