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가명)는 주인으로부터 버려져 길거리를 떠돌다가 한쪽 눈을 잃은 채 동물보호소에 맡겨졌다. 처음 보호소 문턱을 넘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 때문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고 강한 경계심을 보였지만, 지금은 건강을 되찾고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봐온 임순례 감독의 마음은 무척이나 뭉클하다. 그래서 요즘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사랑이와 같은 유기동물들을 돕기 위해 전국 곳곳의 동물보호소를 찾아다닌다. 임순례 감독과 함께한 동물보호소 봉사활동 체험기.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얼마 전 한 남자가 황구를 각목으로 잔인하게 폭행한 동물학대 사건이 SBS-TV ‘동물농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깜짝 놀라게 했다. 제작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남자는 사라진 뒤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처참한 모습의 황구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황구는 심하게 맞은 충격으로 절규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검사한 결과 황구는 눈을 감싸고 있던 뼈가 부러져 한쪽 안구가 터지고, 턱은 심하게 쪼개져 위아래로 어긋나 있었으며, 이빨은 모두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이후 제작진은 목격자의 신분으로 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해 용의자 찾기에 나섰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대대적으로 황구 살리기 서명운동을 펼치며 동물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는 유기동물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지난 6월 중순,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와 함께 충청남도 청양에 있는 동물보호소에 다녀왔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의 영화를 연출하고 2년째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순례(51) 감독을 비롯해 서울, 광주 등 전국 동물병원의 수의사들과 애견 미용사들로 이뤄진 의료·미용 봉사대도 동참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2시간여의 짧은 여정 끝에 도착한 청양 동물보호소는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자리해 있었다.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에 주변에는 산딸기와 야생초들이 가득했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고, 보호소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두 눈을 의심할 만큼 엄청난 수의 유기견들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청양 동물보호소에서 살고 있는 유기견은 총 450여 마리로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주인에게 버려져 이곳에서 지내게 됐다고 한다. 대부분 늙고 병들거나 더 이상 부양할 능력이 되지 않아 버려진 동물들이다. 아직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된 어린 강아지들부터 한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의 잘생긴 견종들도 더러 있었다.
애완견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은 유기동물 신세가 된 개들은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간절히 원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철창에 매달려 꼬리를 흔들고, 눈빛을 마주치는 등 자신을 봐달라고 갖은 애교를 부렸다. 반면 살짝 다가가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는 개들도 많았다. 아직 사람에게 입은 상처가 깊어 마음을 열지 못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파서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나 훔쳤는지 모른다.
카라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곳곳의 동물보호소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수의사들과 애견 미용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고 의료·미용 봉사대를 결성해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날 청양 동물보호소에서는 견사 청소를 비롯해 중성화 수술, 백신 예방접종, 유기견들이 무더운 여름을 잘 버틸 수 있도록 시원하게 털을 밀어주는 미용 시술 등의 활동을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유기견들을 챙기는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봉사활동을 마친 뒤 임순례 감독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임 감독은 그동안 영화를 연출하는 틈틈이 동물보호운동에 앞장서온, 누구보다 유기동물에 대한 관심이 큰 여장부다. 2009년에는 MBC-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헌터스’에서 연예인들이 멧돼지 소탕 작전을 벌이는 모습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켓 시위를 하는 등 방송 제작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노력 끝에 해당 코너는 방송 몇 회 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말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에는 주민들이 떠나면서 졸지에 유기동물이 된 개와 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직접 섬에 들어가 사료와 거처를 제공했고, 얼마 전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의 모피 쇼가 한강 둔치에서 개최됐을 때는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 모피 쇼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도 벌였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개를 좋아했어요. 제가 살던 동네의 개들을 다 보살필 정도였죠. 주위 어른들 말로는 제가 개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대요(웃음).”
타고난 동물 사랑은 때때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안겼다. 복날마다 동네 사람들이 개울가에서 개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때려 죽게 한 후 즉석에서 보신탕을 끓여 먹었던 충격적인 모습은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제가 좋아하던 옆집 개가 끌려가서 처참한 일을 겪는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던지…. 어린아이였던 제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더 괴롭고 마음 아팠어요. 그런 일들이 제게는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동물보호활동을 하는 이유도 그때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에요.”
고등학생 때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재롱이’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 재롱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한동안 실성한 사람처럼 매일 눈물 바람으로 동네를 배회했었다고.
“정말 영리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만 되면 어쩜 그렇게도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지 엄마한테 저를 마중 나가자고 낑낑대며 문 앞에서 서성였대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방에서 혼자 자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었는데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제 신음소리를 들은 재롱이가 새벽에 크게 짖어 온 가족을 깨워서 저를 살렸어요. 평소에 전혀 짖지도 앉고 얌전한 아이였거든요. 신기하죠. 조금만 늦게 발견됐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남다른 동물 사랑으로 한때 수의사를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생물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못하고 한참 동안 끙끙거리는 자신을 보고는 과감히 포기했다. 수술대 앞에서 동물을 보며 도저히 손에 칼을 쥐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채시라·김혜수·이효리 등 톱스타들의 자발적 참여
대신 임순례 감독은 2년 전부터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아 치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동물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임 감독과 카라의 만남은 그녀가 유기동물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임 감독은 2003년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동네 야산에 보금자리를 두고 지내는 다섯 마리의 유기견 가족을 발견했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수놈과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린 암놈이 만나 새끼 세 마리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해서 매일 찾아가 밥과 물을 챙겨줬다.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아이들을 보기 위해 틈틈이 동물보호소를 방문하면서 유기견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동물보호 인터넷 동호회인 ‘아름품’의 열혈 회원이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고요. 그 후 ‘아름품’이 사단법인 ‘카라’로 발전했는데 주위의 추천으로 대표까지 맡게 되었어요.”
카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중에는 유명 인사도 꽤 있다. 배우 채시라·가수 김태욱 부부와 성악가 조수미, 가수 이효리, 배우 조윤희와 김혜수, 김효진은 자발적으로 동물보호소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현장에서 정을 쌓은 유기견들을 직접 입양해 키우고 있다. 조윤희는 하반신이 불편한 유기견을 위해 친한 수의사를 데려와 치료까지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이효리는 카라를 통한 동물보호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연예인으로 꼽힌다.
“이효리씨는 인터넷에서 동물 단체를 검색하다가 카라를 알게 됐대요. 그러고는 제 영화에 출연한 배우 공효진씨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 번호를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대체 무슨 일로 나를 찾을까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일단 만났는데, 효리씨가 저희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이전에도 혼자 조용히 동물들을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동물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개적으로 활동을 했으면 한다고 말하기에 흔쾌히 동의했죠.”
실제로 이효리의 열띤 활동은 카라에 큰 도움이 됐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톱스타의 생리상 그녀를 통해 유기동물들의 실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유기견 입양을 꺼리던 사람들도 이효리가 동물보호소에서 만난 강아지 ‘순심이’를 입양해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유기견 입양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임순례 감독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우리 주위의 동물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부르며 더 이상 그들을 사람의 필요에 의해 키워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사람은 때때로 상대의 말을 오해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않아요. 참 순수한 존재예요. 계속 사랑을 쏟으면 거기에 대해 순수하게 반응하고, 충성을 다하고, 주인의 말을 오해한다거나 다르게 해석하지 않죠. 변함이 없어요. 사람이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게 교감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이고요.”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그러나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동물에 대한 잔인한 학대가 이뤄지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마리의 개들이 주인으로부터 버려진다. 임 감독은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동물을 착취와 이용의 대상,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해주고 떠나는 존재로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과 함께 지구를 나눠 쓰는 동등한 생명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고, 의식이 있어요. 그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같은 생명체로서 배려해줘야 해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건데 우리는 ‘너는 동물, 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격차를 두는 것 같아요. 사실은 모두 소중한 생명이잖아요.”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도 단순히 순수 혈통, 잘생긴 외모 등만을 따지지 말고 각각 그들이 지닌 특징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줬으면 한다고. 임 감독 역시 현재 두 마리의 믹스견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막상 반려동물에 대한 좋은 생각으로 동물보호소를 찾더라도 정작 좋은 견종, 예쁘게 생긴 아이들만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믹스견이나 못생긴 아이들은 입양률이 낮아서 외롭게 살다가 떠나거나, 안락사를 시키게 되지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주셨으면 해요. 외국에서는 믹스견들에 대해 오히려 더 큰 관심을 갖고 많이 입양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에게도 순혈주의, 외모 지상주의의 잣대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갖다 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임순례 감독이 들려주는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법
“처음으로 만들어본 동물 영화였어요.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작하게 됐고요. 영화를 본 분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우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 눈물이, 그 마음이 계속 변치 않고 우리 주위의 개와 고양이, 더 나아가 모든 동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임순례 감독은 자신이 동물보호소를 통해 유기동물들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것처럼 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꼭 한 번쯤은 동물보호소를 찾아가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TV에서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실제로 봉사를 하며 경험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면 아마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버리면 그 아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사랑에 굶주린 채 안타까운 모습으로 지내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거고요. 온 가족이 함께 와서 봉사해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일찍이 책임감도 심어줄 수 있고요.”
사랑은 돌고 돈다.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어야 언젠가 그 사랑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동물에 대한 사랑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작은 손길을 보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서 임순례 감독의 사랑은 더 크고 값져 보인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취재 협조 /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http://www.ekara.org/, 02-3482-0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