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경력 단절 여성의 부활

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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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력이 된다면 자원활동 하는 것을 추천해요.
ㆍ저 역시 일을 시작하면서 부부 싸움도 줄고 삶에 활력이 생겼거든요”

이주 여성의 치유와 성장, 자립을 목표로 내건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에서는말뿐이 아닌 진정한 다문화를 접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이국적인 풍광이 깃든 아트 상품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한편 문화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이주 여성에게 한글을 가르치다가 그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까지 설립한 박진숙 대표는 육아와 학업으로 단절된 커리어를 멋지게 다시 쌓아올린 열혈 여성이다.

[경력 단절 여성의 부활] 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경력 단절 여성의 부활] 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석사학위 두 개, 두 명의 자녀, 창업 3년 차, 박사과정과 일 병행. 사실 박진숙(37) 대표를 일반적인 경력 단절 여성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경력 단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우울증과 무기력함은 그도 마찬가지로 겪었다. ‘많이 배웠어도 쓸 데 없다’라는 편견에 멋지게 반기를 들고 인생의 2막을 연 그의 도전은, 다른 경력 단절 여성을 돕는 일로 발전했기에 더 의미가 크다.

에코팜므는 다문화 가정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들의 이주 경로는 다양하다. 콩고 여성들은 내전으로 도피한 난민이고, 아시아 여성들은 결혼으로 인한 이주가 많다. 에코팜므는 이들 이주 여성을 위한 상담과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예술적 소양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작가 되기’를 지원하며 경제적 역량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수공예 작가 등과 이주 여성을 결연해 단순한 작업에서부터 창의적 작품 활동까지 손을 내밀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첫째 원칙, 돈에 연연하지 말자
“처음 석사학위를 따고 2000년에 큰아이를 낳았어요. 남편은 고시 공부를 하던 때였고 큰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둘째가 태어난 거예요(웃음). 뒤늦게 아동가족학을 공부하면서 육아 경험도 의미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원래는 연구원이나 청소년 교류센터에서 일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나이는 많고, 학력만 높고, 경력이 없으니 저를 써주질 않더라고요. 시간 날 때면 잘 돌아다니는 성격인데, 제 손으로 만원 한 장도 못 벌다 보니 자괴감이 들었어요. 우울증도 왔고요. 한때 ‘미드(미국 드라마) 폐인’ 생활도 했는데 지금은 매일이 무척 새로워요.”

박진숙 대표는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고 사업을 잘 벌이는 스타일이다. 2009년에 에코팜므를 설립했는데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취업이 안 된 것이 도리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 수입은 적지만 강의 등의 부수입으로 그럭저럭 살림에도 보탬이 된다.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갑자기 몇 백만원씩 버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보육비나 식비 정도 번다는 생각으로 해요. 비슷한 수입을 얻는 다른 일과는 비교가 안 돼요.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여력이 된다면 자원활동 하는 것을 추천해요. 저 역시 일을 시작하면서 부부 싸움도 줄고 삶에 활력이 생겼거든요.”

둘째 원칙, 즐거운 일을 찾아라
지금의 박 대표가 있기까지 남편 김종철 변호사의 역할이 꽤 컸다. 신중한 성격의 그는 아내가 일 벌이는 것을 말리기도 하지만 난민 여성들과 만나게 해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난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남편이 저에게 콩고 난민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하더라고요. 아프리카 사람을 처음 대면한 거라 주눅 들고 떨렸는데, 그들은 몇 달 동안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먼 길을 오가더라고요. 얼마나 열심인지 그 모습에 감동했어요.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그중 두 명은 지금 에코팜므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해요.”

그러다 2007년 단기 연수로 캐나다의 이주민 기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박 대표는 부스에서 아프리카 여성이 그린 유화를 보고 말 그대로 ‘꽂혀버렸다’. 물 길러 가는 여성의 모습, 특히 아프리카 특유의 색감이 매력적이었다. 당장 그림을 그려서 팔기 어렵다면 작은 카드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고, 당시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미술치료 수업을 하면서 카드 엽서를 제작했다.

“엽서 판매가 첫 사업인 셈이었죠. 처음에는 지인들 상대로 천원에 팔았는데 다들 좋아했어요. 거기에 힘을 얻어 꾸준히 그려서 더 좋은 값에 팔고 핸드프린팅이나 도예 부문까지 넓혀나가는 중이에요. 파우치나 필통 등 캐릭터 상품까지 만들 생각이에요.”

[경력 단절 여성의 부활] 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경력 단절 여성의 부활] ① 사회적 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

그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이주 여성들은 어엿한 작가가 됐다. 모방에 가까웠던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해 지금은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박 대표는 자신의 일처럼 기쁨을 느낀다. 에코팜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인 ‘이주 여성 작가 양성 프로젝트’에는 다른 경력 단절 여성들이 기꺼이 재능을 나누는 멘토로 참여한다. 활동을 쉬고 있던 30대부터 60대까지 작가들이 일대일 결연으로 이주 여성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주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잖아요. 화가나 전문직으로 활동하다 출산 후에 쉬는 분들을 저희는 ‘비(B)급 디자이너’라고 불러요. 저희와 함께 다시 가능성을 찾는 거지요. 다시는 전시를 못할 거라고 여겼던 작가들도 이주 여성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화풍도 달라지고 새로운 상상력들이 생긴다고 해요.”

가족 내에도 변화가 생겼다. 난민 관련 단체를 설립한 남편보다 박 대표가 더 바쁘기 때문에 가사는 요일별로 분담하고 있다. 월·수·금요일은 박 대표가, 화·목요일은 남편이 가사와 아이들 돌보는 일을 맡는 식이다. 아이들도 엄마의 변화를 반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엄마가 바쁜 건 단점이지만, 이주 여성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에요”라고 대답할 만큼 어른스러워졌다.

셋째 원칙,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예술 작품 활동은 들인 시간에 비해 성과가 금세 나타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이주 여성의 재능 계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상품화 과정에서 나라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최소한 2, 3개월이 걸린다. 패브릭, 도예, 원화 그리기 등 여성들의 다양한 관심사에 적합한 작업을 찾아내는 것도 보람된 일이다. 직접 기획한 아이템이 상품화되면 수익은 이주 여성과 에코팜므가 적절히 분배하고 작가에게 로열티도 지급한다.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 지원책이 많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편이에요. 저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바로 얻도록 하기보다는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음을 맞춰가는 일이 중요해요. 베트남, 태국, 중국 여성이 모이면 서투른 한국말로 얘기해요. 자기 나라 음식도 만들어 먹고, 돌아가면서 노래도 하고요.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걸 보면 참 재밌어요.”

에코팜므는 아트 상품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 제작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주 여성이 직접 강의하는 아프리칸 댄스와 공연팀, 젬베 클래스 등 문화적 자산을 나누는 일들이 그것. 올해 말에는 사과를 소재로 한 그림동화책을 낼 예정이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갖춰 고유 브랜드를 론칭하려고 해요. 계속 축적해서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많이 신경 쓰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글로벌 키드로 자라고 있어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이 앞으로는 더 중요해질 거예요.”

에코팜므 매장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인근에 있다. 문의 02-336-9529, 매주 일요일은 쉰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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