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엄마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3~6세 어린이가 있는 우리나라 가정의 15%가 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그가 한국을 세 번째 방문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앤서니 브라운과 떠나는 환상의 그림책 여행
아이들은 돌 즈음부터 각자의 취향과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좋아하는 그림책도 달라지고 그림책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뽀로로’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취향과 성향의 공통분모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에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이야기
영국에서 태어난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을 전공한 후 30년간 그림책을 그려왔다. 1976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앤서니 브라운은 1983년 「고릴라」와 1992년 「동물원」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하고 2000년에는 그림책 작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아빠가 최고야」, 「우리 엄마」, 「돼지책」 등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어린이가 가정 내에서 혹은 친구들과 겪는 심리적 내면세계가 아이들의 시선으로 잘 표현돼 있다. 항상 밝고 명랑한 아이라도 부모가 미처 어루만져주지 못한 외로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복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본인 스스로도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앤서니 브라운은 아주 특별한 기억력으로 자신의 유년기의 감수성을 책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아이들이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앤서니 브라운(이하 앤서니)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억지로 단순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크다고 봐요. 아이들은 의외로 세상 일들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어요. 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그렸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지만 어떤 점에선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제 자신을 ‘나이 많은 어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LADY 그래요. 눈빛이 아주 선하고 순수하게 느껴져요. 아직까지 동심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앤서니 브라운은 이번 한국 방문에 아내와 동행했다. 그의 아내 하네 바르톨린 역시 덴마크 출신의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다. 10여 년 전 일러스트레이터 모임에서 만난 이들 부부는 덴마크와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하네 바르톨린은 최근 국내에 발간된 「할머니 집에 갔어요」의 그림을 그렸다.
LADY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너무 깜찍해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앤서니 윌리, 고릴라, 그리고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 곰은 모두 사이좋은 캐릭터들로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고릴라」는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에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이죠.
LADY 작품 곳곳에서 동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고릴라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앤서니 저는 동물을 사랑합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동물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타포로 등장하고 있어요. 저는 고릴라가 참 근사한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종일 고릴라 얼굴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죠. 고릴라를 그리는 데 싫증을 느낀 적이 없어요. 사람과 비슷한 고릴라의 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눈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고릴라 속에 또 다른 사람이 있어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물론 고릴라는 제가 느꼈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컸죠. 크고, 강한 아버지를 표현하기에 고릴라만 한 동물이 없었어요.
LADY 귀엽고 익살스러운 캐릭터가 가끔 외롭게 보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앤서니 브라운과 떠나는 환상의 그림책 여행
LADY 비판적인 시각을 담는 그림책은 보기 드물어요.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도 「돼지책」이나 「동물원」은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앤서니 어떤 내용을 담아야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작업하려고 애를 써요. 그래서 비판적인 내용들도 다룰 수 있었죠. 아이들이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우려도 있지만 저는 아이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요.
앤서니 브라운의 아이와 눈 마주치는 법
많은 엄마들은 그림책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으면서도 간편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그림책을 펼쳐들면 엄마는 아이의 상상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앤서니 브라운은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라며 “나의 두 자녀도 예술가로 키웠다”고 밝혔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존중해주는 육아 방식이 아이의 개성과 재능을 꽃피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이미 꽉 막혀버린 상상력의 한계가 아이들과의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만든 부모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을까?
LADY 부모님과 형이 작품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유년 시절이 궁금합니다.
앤서니 저는 늘 아버지의 관심을 끄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럭비 하는 법과 복싱 등 육체적인 놀이를 가르쳐주셨고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고 시 쓰는 것을 함께해주셨죠. 어머니는 놀라울 정도로 너그럽고 다정하셨고, 늘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셨죠. 형과 제가 경쟁심에 그림을 각자 그려 어머니에게 보여주며 누구 그림이 더 나은가를 물어보곤 했는데 늘 둘 다 잘 그렸다고 하셨어요. 형과는 건설적인 경쟁관계였어요. 형이 저보다 크고 강했기 때문에 늘 형을 따라 잡으려고 애썼어요. 형은 저에게 최고의 친구였어요.
LADY 형과 함께 세이프 게임을 시작했다고 하던데, 세이프 게임에 대해 남다른 의미가 있나요?

「겁쟁이 윌리」(1984) 고릴라 나라에 사는 침팬지, 윌리에 대한 이야기다. 앤서니 브라운의 어린 시절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윌리는 앤서니 브라운 작품 속 등장인물 중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다.
LADY 부모님의 훌륭한 양육 방식에 감사드린다고 하셨는데,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돼지책」(1986) 어머니 혼자 고된 가사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과 이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갑자기 돼지로 변하는 아빠와 아들은 엄마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LADY 조는 음악가가, 앨런은 미술가가 됐다고 밝혔는데, 당신의 양육 방식이 자녀를 예술가로 키울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요?

「고릴라」(1983) 앤서니 브라운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부모에게 소외받는 아이의 슬픔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바쁜 아빠 대신 고릴라와 데이트를 하는 상상 속 이야기가 기발하다.

「우리는 친구」(2008)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와 힘 센 고양이의 우정을 그린 귀여운 작품이다. 1983년 「고릴라」속 고릴라가 25년 만에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앤서니 많은 그림책들이 어른들이 보기에도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그림책은 나이가 들었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계속 감상해야 할 좋은 것이죠. 그런 마음으로 그림책을 대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림책을 볼 때는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른들은 글을 읽어주지만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게 되거든요. 아이가 질문한다면 이를 통해 또 다른 대화의 장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아빠가 최고야」(2000)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던 옛날 가방 속에서 아버지의 오래된 가운을 발견하고 만들어낸 작품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앤서니 그림책에 나온 그림들을 자세히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것이 그림을 잘 그리는 기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이야기를 반복해 읽고 또 자신이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다르게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작가와 독자의 역할을 분리하지 않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LADY 좋은 그림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어떤 그림책을 선택해야 할까요?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 곰」(1988) 마술 연필만 있으면 걱정 없다. 사자에게 왕관 그림을 그려주며 재치 있게 위기를 모면하는 귀여운 꼬마 곰 이야기.
LADY 한국을 세 번째 방문하셨는데, 한국팬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앤서니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세계 어린이들은 모두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들 모두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짓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커가면서 이것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한국 팬들은 처음에는 모두들 수줍어하시는데, 숨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