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가져야 세계를 움직인다!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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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어 이룬 일을 그만두고 다른 꿈을 위해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기 위해 미래가 보장된 국제공무원직을 사임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팀장 김정태의 행보는 그가 걸어갈 길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한다.

김정태(34) 전 팀장은 어렵게 관문을 통과한 유엔거버넌스센터 홍보팀장을 그만두고 곧 영국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다. 그래도 백수와는 거리가 멀다. 베스트셀러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등 열 권에 달하는 책을 쓰거나 번역한 작가이며 ‘저자 100명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30명가량의 필자를 발굴한 ‘휴먼 벤처’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평범한 오늘의 일상에서 구체적인 스토리를 길어 올리는 재미, 작은 가능성들과 조우하는 경험은 그의 것만이 아니다.

이야기를 가져야 세계를 움직인다!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김정태

이야기를 가져야 세계를 움직인다!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김정태

유엔, 반기문 총장과의 각별한 인연
유엔거버넌스센터는 유엔 회원국이 자국 환경을 개선하고 공공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사무기구로 유엔 산하기구 중 유일하게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다(‘거버넌스’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 시민사회 등이 함께 결정하고 논의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는 2007년 입사 당시에도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스토리의 힘으로 뚫은 전력이 있다. 당시 그의 나이가 서른,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유엔본부를 비롯한 인턴 경력 외에는 남다른 스펙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종 선발된 데는 그간 꾸준히 써온 논문과 에세이의 공이 지대했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쓴 그의 논문은 마침 반기문 총장의 유엔 입성으로 주목을 받아 「유엔 사무총장」이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덕분에 이듬해인 2008년 반기문 총장이 방한했을 때 언론 담당 공식 수행원으로 각별한 연을 맺을 수 있었다.

“제 전공은 한국사예요.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가진) 인재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물러설 수밖에 없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약이 됐어요. 물론 저도 주목을 받고 최고가 되길 원했지만 장학금은 고사하고 자격증도 하나뿐이었어요. 고민하던 무렵 안도현 시인의 「연어」를 읽게 됐어요.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이 문장이 제 삶의 표어가 됐어요. 모두가 장미고 별이면 아무도 반짝이지 못하지만 기꺼이 황무지가 되면 누군가를 아름답게 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몰라요.”

월드비전 창시자 밥 피어스의 인터뷰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의 배고픔을 아파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월드비전은 세계 1백여 나라에서 1억 명의 아이들을 돕느라 동분서주하는 국제기구가 되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인턴십 경험이 중요하다. 이는 한국의 대학생에게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실무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국내 인턴십과는 달리 곧장 실무에 투입되어 구체적인 업무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후 취업에도 유용하다.

유엔의 경우 연간 3천여 명의 인턴을 뽑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무급이지만 향후 유엔에서 근무하게 될 때 절대적인 도움과 기준이 되며 타이밍만 좋으면 유급 혹은 계약직으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 두 번째 겨우 합격해서 출근했어요. 첫날부터 국제회의를 하는 130여 개국 대표단에게 나눠줄 자료를 복사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는데 건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복사기 사용도 서툴러서 땀을 좀 흘렸어요. 결국은 복사본 중간에 빠진 부분이 발견되는 바람에 전부 회수해 다시 복사해야 했지요. 그 후에야 전문 직원이 하던 업무를 배정받아 인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며 많은 배움과 보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제기구에 지원하려면 해외 연수나 유학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지인 수준의 언어구사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 서열화나 학벌지상주의 등의 병폐와 무관하게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명심하자. 김 전 팀장의 경우도 국내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두 번의 인턴십을 해외에서 했을 뿐이다.

남을 돕고자 하면 움직이게 된다
원체 내성적이었던 그는 뜻하지 않게 이야기를 하거나 강의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어느새 이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조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나 후배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고, 스스로도 매번 새롭게 정리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세심한 기획과 투자로 세 명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들었지만, 출판사와 컨설턴트 일은 월급조차 받지 않는다. 그저 즐겁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이참에 그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 조금 더 체계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과감히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향후 1년간 런던 헐트경영대학원(Hult International Business School)에서 1년의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이수할 예정이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앞으로 10년을 내다봤을 때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생활은 당초 3년을 계획했는데 벌써 5년이 됐어요. 근무하는 동안 제 잠재력이나 관심 분야가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덕분에 과감히 도전하기로 했어요. 자녀들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면 지금의 도전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용기가 없어 차마 하지 못했다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겠어요.”

이야기를 가져야 세계를 움직인다!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김정태

이야기를 가져야 세계를 움직인다! 전 유엔거버넌스센터 김정태

그에게는 텔레비전도, 차도 없다. 그렇다고 언제나 일만 하는 건 아니고 편리함과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삶에 조금 더 주체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5년여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1시간 정도의 거리를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며 업무는 물론이고 상념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근무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얘깃거리가 없어졌다면 책을 읽거나 재능을 계발하는 데 투자하세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그저 사는 대로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남이 정해놓은 길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걸으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시간을 확보했어요.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거지요.”

남과 다른 삶은 언제나 듣는 이를 매혹시키는 힘이 있다. 그가 자신을,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은 까닭이다. 남들처럼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다. 연합동아리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부인 오사라씨와 결혼식 대신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커피를 하객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티백과 공정무역 커피 안내서를 함께 선물 포장하고, 시음 행사까지 진행했다. 그렇게 결혼식 아닌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난 후에는 커피 구입 문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하객들의 ‘구매 대행’을 하느라 바빴다며 웃음을 지었다.

“공정무역이라는 가치가 저희의 결혼과 개인적인 스토리를 통해 큰 호응을 얻은 셈이지요. 이렇게 가치 있는 ‘무언가’일수록 ‘이야기’라는 접촉점을 필요로 합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거의 극과 극이라고 할 만큼 달라요. 아내는 암벽 등반을 좋아하고 국기원에 다니며 여자 축구단활동도 하는 열혈 여성이거든요(웃음). 결혼 초기엔 많이 싸우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타협점을 찾고 또 서로의 좋은 점을 본받는 중이에요.”

자상한 아빠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
그래도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이제 22개월 된 어린 아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출장차 방문한 30여 개국에서 엽서를 써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세계의 어떤 일이든 잘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글을 못 읽지만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되겠지요. 얼마 전 말라위(아프리카 남동부의 내륙국가)에서도 ‘여기는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너는 축복된 삶을 살고 있단다’라고 썼어요.”

그도 선물 같은 추억이 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더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글쓰기에 소질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라며 선물한 5단 자동 필통은 그의 잠재력에 불을 붙인 촉매제가 되었다. 글 쓰고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우등생은 아니었다. 고교 시절 노력한 덕에 턱걸이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사실 뛰어나다고 할 만한 스펙도 갖추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돋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다. 좋아하는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길을 정해왔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스펙도 갖춰지는 것 같아요. 잘하는 것을 정하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이뤄지니까요. 스펙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방황하게 되고 오히려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가 어렵지요. 스펙은 미래에 뭘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지는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유엔(UN)에 대해 자주 묻는 몇 가지

나중에 유엔에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유엔에 몸담고 싶다면 먼저 유엔에 대해 공부하고, 친구가 되세요. 그러고 나면 결코 힘든 일이 아닐 겁니다. 가난, 에이즈, 기근, 물 부족, 무장 분쟁, 난민, 인권 문제 등 그 어떤 나라의 어떤 기관도 유엔만큼 인류의 진실을 대면하려고 애쓰는 곳은 없습니다. 다그 함마르셸드 2대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요.

현장 경험은 어떻게 쌓을 수 있나요?
- 해외 현장 탐방도 좋지만 여의치 않다면 한국에서 진행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질적 경험을 쌓으세요. 이를 토대로 얻은 문화적 감수성과 경험을 스토리로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카페나 외교통상부, 유엔 관련 사이트 등을 통해 사례를 접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니 잘 활용하면 됩니다.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하나요?
- 국제적인 기구이니만큼 해외 근무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영어 구사력은 필수인 셈이지요. 유엔 본부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으로 사용하지만 사무실에서는 대부분 영어를 쓰기 때문에 적어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정도가 되어야겠지요. 국제기구 초급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공식 영어 성적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이고 국문 인터뷰, 영문 인터뷰 및 논술, 제2외국어 면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김정태씨는…
고려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제기구를 공부했다.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원, 유엔 사무국 컨설턴트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지난 8월까지 유엔거버넌스센터 홍보팀장으로 근무했다. 비전과 리더십, 청년 역량 개발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해왔고 「최신 유엔 가이드북」, 「유엔사무총장」,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등 다수의 책을 썼다. 국제활동가, 사회적 출판기획가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 리더 중 한 사람이다.
트위터 @theUNtoday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협찬 / 작은숲(02-734-9465) ■참고서적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갤리온), 「최신 유엔 가이드북」(럭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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