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신화의 주인공과 ‘천재 소녀’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드라마틱했다. 뒤늦게 알려진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윤송이 전 SK텔레콤 상무의 결혼 소식은 당시 엄청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후 각각 대표와 부사장직을 맡아 부부 경영을 통해 엔씨소프트를 이끌어온 두 사람이 최근 잇달아 함께 공식석상에 나서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재능기부 과학 강연 이후 게임 전시회 현장 방문

결혼 4년 만에 첫 공식석상 동반 외출 김택진·윤송이 부부
김 대표 부부가 첫 동반 행사로 공동 강연을 선택한 데는 이번 강연의 취지와 의미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명사들의 자발적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10월의 하늘’의 일환인 이번 강연은 지역의 아이들에게 과학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됐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과학 강연이 서울 등 대도시에서만 개최되는 상황에서 과학자 등 전문성을 갖춘 강연자들이 직접 전국 각 지방에 위치한 도서관을 찾아가 무료로 강연을 펼쳤다. 김택진·윤송이 부부 역시 김 대표가 먼저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야구단의 연고지인 창원시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참여를 결심했고, 윤 부사장에게도 동참을 권했다고 한다. 강연의 주제 또한 야구광인 김택진 대표가 직접 정한 것이라고 한다.
강연은 김택진 대표가 주로 투구, 타격 등 야구에 얽힌 물리학 원리를 설명하면 윤송이 부사장이 뇌과학 이론을 설명하며 그 원리를 분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김 대표는 평소 쌓아왔던 야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쉽고 재미있게 강연을 진행해 나갔다. 다양한 동영상을 활용해 이해를 돕고 실제 동작을 곁들임으로써 청중이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부사장은 “날씨가 궂은 토요일 오후인데도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라며 “재능을 나누는 이런 좋은 행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 대표 또한 “요즘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고 하던데 열정이 사라진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라며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키워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결혼 후 함께 참여한 첫 공식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두 사람은 그로부터 보름 뒤인 지난 11월 10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지스타 2011’ 현장에도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의 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자리여서 그런지 현장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웠다는 후문. 이날 김 대표 부부는 전시장에 마련된 엔씨소프트 부스를 방문해 자사 신작 게임 영상을 본 뒤 게임 개발자들과 만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 집중
한동안 신규 사업 부진과 주가 하락 등으로 잠시 주춤하던 엔씨소프트는 최근 들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6,497억원, 영업이익은 2,429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 뒤에는 두 사람의 효율적인 업무 분담 및 시너지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11월 윤송이 부사장이 정식 취임한 이후 연구 및 개발(R&D) 분야는 김 대표가, 경영 및 전략 분야는 윤 부사장이 맡아 회사를 운영해오고 있다. 취임 초반 해당 분야에서 제대로 실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윤 부사장에게 섣불리 중책을 맡긴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극복하고 ‘천재적’ 면모를 제대로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김택진 대표와 윤송이 부사장은 오래전부터 비상한 실력으로 이름을 떨쳐온 사람들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입학 후 이찬진 현 드림위즈 사장과 손을 잡고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하며 본격적으로 벤처사업을 시작한 김택진 대표는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뒤 이듬해 ‘리니지’를 내놓고 이를 우리나라 대표 온라인게임으로 키워냈다. ‘리니지’ 이후의 후속작도 잇따라 히트를 기록하면서 입지를 굳힌 그는 창업 14년 만에 2조원에 가까운 주식 부자가 됐다. 윤송이 부사장 또한 만만치 않다.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을 수석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서 3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드라마 ‘카이스트’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졌다. 이후 29세라는 나이에 SK텔레콤 상무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임원’으로 또 한 번 세인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두 사람은 ‘러브 스토리’마저 ‘비범’하다. 이들의 결혼 사실은 한 언론매체의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력하게 부인하던 두 사람이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뒤 1년여가 지나서야 이를 공식화하며 알려졌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04년 3월, 당시 SK텔레콤 상무였던 윤송이 부사장이 엔씨소프트 사외이사직을 겸직하게 됐고 그때부터 김택진 대표와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두 사람이 가깝게 지내는 분위기가 감지됐고 김 대표가 이듬해 이혼한 점, 윤 상무의 고액 연봉 등을 근거로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2007년 벌어졌던 해프닝 중 하나가 한 언론매체에서 ‘두 사람이 6월 말 결혼한다’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이에 엔씨소프트와 SK텔레콤이 거세게 항의하며 반박 자료를 낸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결혼 보도가 나오자 엔씨소프트에서는 “두 사람이 이미 2007년 11월 결혼했고 가을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라며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이야기인 셈이다. 부부는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얼마 전 김택진 대표는 주식 부호를 발표한 기사가 보도되면서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10월 중순 ‘재벌닷컴’이 1,811개 상장사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 지분 가치를 전일 종가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김 대표의 주식 지분 가치가 2조273억원으로 전체 종합 순위 6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재벌가 출신이 아닌 자수성가형 벤처기업가의 지분 가치가 2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부부가 함께 공동 기부 강연과 전시회 방문을 하며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앞으로 적극적인 대외활동에 나서기로 한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내놓는 중. 뛰어난 능력으로 언제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두 사람이 과연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가 되는 시점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