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누가 됐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종전과는 달리 “어디서 오셨나요?”라고 묻는 ‘학교 보안관’이 등장해 ‘방문 목적과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운동장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멋진 보안관 모자를 쓰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오용석 학교 보안관을 만나 ‘학교 보안관’ 출범 후 초등학교 범죄 실태를 물었다.

아이들 안전 지키는 학교 보안관 오용석
각 학교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용석 보안관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두 보안관이 정문과 후문에서 각각 하교를 지도한다. 학교 앞 교통정리도 하고, 외부인을 차단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나설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하교를 한 후에는 방과 후 학교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학교 보안관의 주된 업무다.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학교 안팎을 순찰하며 낯선 사람은 없는지, 싸움을 하는 아이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학교 보안관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김수철 사건에 충격받고 학교 보안관이 되다
28년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오용석 보안관은 올해 나이 65세다. “학교를 지키기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냐”라고 묻자 “아직도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다”라며 웃는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학교 내부로 몰래 잠입했던 ‘성추행 전과자’를 붙잡은 전력도 있다.

학교 보안관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는다. 이 제복만으로도 범죄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성범죄자가 버젓이 학교 내부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이다. 오용석 보안관에게 붙잡혔기에 망정이지 설마 하는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면 제2의 ‘김수철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군대 예편 후 한 회사에서 예비군 대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강남구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있던 중에 ‘김수철 사건’을 접하게 됐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던 차에 ‘학교 보안관’을 모집한다는 말에 지원하게 됐죠.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성범죄자를 붙잡고 보니 ‘이게 현실이구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범죄인지 더 절실히 깨닫게 되죠.”
학교 보안관이 학교 출입을 차단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의외로 중·고등학생이 출입 금지 1순위다. 그래도 담장 넘어 학교에 들어온 중·고등학생들이 초등학생들을 때리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교 1학년들이 모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는 재학생과 학부모에게만 개방된다는 원칙이 있어요. 처음에는 배송업체에서 오토바이를 진입시키지 않는다고 항의를 하기도 하고, 간혹 학부모들 중에도 ‘왜 이름을 적으라고 하느냐’라며 따지기도 했죠. 때론 차를 몰고 와서 운동장에 주차를 하겠다는 인근 주민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학교에 출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폭력에 무감각한 아이들,
선생님도 꼼짝 못하게 하는 아이들
학교 보안관이 순찰 중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건은 아이들끼리의 싸움이다. 그나마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은 순수한 편에 속한다. 금품을 갈취하고 집단 따돌림을 하는 현장에서, 학교 보안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단지 싸움을 말리고 지도부장에게 인계해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하지만 그마저도 큰 효과는 없는 듯 보인다며 오용석 보안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도 한 아이를 지도부장에게 인도해주었는데 금세 나와서 집으로 가더라고요. 간단한 훈계만 들었던 모양이에요. 사실 고학년의 경우 선생님의 말씀도 큰 효과가 없어요. 아이들이 싸우다가 적발되어도 도망가기는커녕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거든요. 오히려 선생님한테 가서 잘잘못을 따져보자고 나오죠. 선생님도 무섭지 않은데, 학교 보안관 말인들 듣겠어요? 친구를 때리고도 떳떳한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막 두 살이 된 손주를 생각하면 학교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남의 아이 같지 않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폭력을 무서워하지도 않을 만큼 범죄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가끔 ‘경비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고,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용석 보안관은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