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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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김정은, 출생에 얽힌 사연과 성장 배경,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2월 17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9세.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권력의 전면에 나선 지 13년 만에, 또 1974년 후계가 공식화된 지 37년 만이다. 총 여섯 명의 자녀 중 셋째 아들 김정은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됐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본명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던 이 청년에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첫 만남에서 이 일곱 살짜리 어린 대장은, 마흔 살 어른인 나를 노려보며 등골에서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이때 느꼈던 강한 인상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서 마음속에 ‘김정은이야말로 언젠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심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북한 문제 전문가들까지 나의 예측을 무시하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잘 알려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가 펴낸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 소개된 김정은과의 첫 만남에 대한 인상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강한 기질을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이후 이 요리사의 예상처럼 꼬마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낙점된다.

‘작은 대장’이라 불리니 불같이 화를 내
김정일 자녀들은 ‘왕자들’ 혹은 ‘큰 대장’, ‘작은 대장’으로 불렸다.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은 ‘큰 대장’으로 동생인 김정은은 ‘작은 대장’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나마도 친인척과 같은 최측근들만 부를 수 있는 호칭이었고, 대부분은 ‘왕자들’이란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김정은이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이었는데 김정은의 이모가 평소 부르는 대로 ‘작은 대장’이라는 호칭을 쓰자 “내가 아직도 유치원생 어린아이로 보여!” 하면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형인 김정철과는 매우 사이가 좋았지만 ‘작은 대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고집이 세고, 승부욕이 강하며 대장 기질이 다분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북한의 젊은 영도자의 알려지지 않은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의 형 김정철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게다가 형제 사이가 좋아서 둘 사이에 권력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주변의 추측처럼 김정은은 별 잡음 없이 예비 지도자 자리를 꿰찼다. 김정철은 향후에도 동생 김정은을 보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37년 철권통치’ 김정일의 시대 저물다

10대 후반이 되면서 김정은은 놀이를 할 때도 유감없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농구 시합을 할 때도 자기 팀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았다.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단순히 남들의 선두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을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고. 게다가 김정은 형 김정철과는 달리 사회적인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은은 중·고교 과정을 스위스 베른 공립학교와 리베펠트-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 마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기간에 김정은은 서구적인 사고와 문화를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유학 당시인 10대 시절에 북한과 외국의 사정을 비교해가며 나라 걱정을 종종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외국의 백화점에 가서 보니 물자와 식품들이 넘쳐나는데 자신의 나라는 왜 그렇지 못한지,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공업기술의 해결 방법은 무엇이며, 턱없이 부족한 전력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측근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외국 생활을 통해 영어의 중요성에도 눈을 떠 2000년께에는 영어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모를 꼭 닮은 김정은을 오래전부터 후계자로 낙점한 것인지, 아버지 김정일은 평소에도 당이나 군 간부들 앞에서도 김정은에 대해 “나를 닮았다”라며 만족스럽게 이야기해왔다고. 반면 김정철에 대해서는 “그 녀석은 안 돼. 계집애 같아서”라고 일축하곤 했다고.

생모 고영희의 출신 성분은 북한에서 일급비밀
김정일에게는 공식적으로 네 명의 부인이 있다. 먼저 배우 출신 성혜림은 1960년대 말 김 위원장과의 사이에서 장남인 정남을 낳았다. 그러나 성혜림은 유부녀로 김정일과는 불륜인 셈이었다. 때문인지 북한사회에서는 철저히 숨겨진 여자 취급을 받았다. 두 번째 여인인 김영숙과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정식 허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고 2녀(설송·춘송)만 낳아 관심에서 멀어졌다. 세 번째 부인이 바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다. 정철·정은 형제를 낳은 그녀는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쳤다.

마지막 여인은 최근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김옥이다. 김씨는 1980년대 초부터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가 사망하던 2004년까지 김 위원장의 서기실(비서실)에서 과장 직함을 갖고 김 위원장을 보좌하다 최근에는 부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김옥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극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와는 오랫동안 잘 아는 사이로 슬하에 자녀는 없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의 출신 성분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는 일급비밀이다.

고영희라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그녀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출신이고 한때 만수대 예술단의 무용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미 착수한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귀국자’는 조총련 출신 재일교포 중 북한으로 이주한 사람을 일컫는 공식적인 표현이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대개 ‘째뽀’라고 비하해서 부르곤 한다. 북한은 출신 성분과 토대를 무엇보다 중시해 남한 출신이나 재일 조총련 출신, 심지어 중국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당이나 군 간부 같은 요직에 임용되기는 불가능하다. 일반 주민이라면 모친이 귀국자일 경우, 초급 당 간부도 될 수 없을 판인데 언감생심 국가의 최고 영도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김정은과 고모 부부가 ‘포스트 김정일’
김정은의 현재 공식 직함은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다. 갑작스러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측에서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라는 표현을 쓰고, 또 232명으로 꾸려진 김 위원장 장의위원회에서도 맨 앞에 이름을 올리며 공식적인 서열 1위임을 확인시켰다. 12월 28일 영결식을 마친 김 위원장의 시신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보존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됐다.

외부의 불안한 전망과는 달리 아직까지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차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와병설이 사그라질 무렵인 2010년 9월 2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령으로 인민군 대장에 임명되며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실명이 처음 알려진 것도 이때였을 정도로 그동안 그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6세에 불과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32세의 나이에 정치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이래 20년간 단계적으로 후계자로서의 권력 이양 단계를 밟아 52세에 국방위원장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김정은의 등장은 그 속도와 방식 모두 파격 그 자체였다. 국제사회에서는 3대 권력세습이라는 근대 사상 초유의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정작 북한 내부의 후계자 지명엔 별다른 갈등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격적인 행보로 서방 언론에 관심을 끌었던 장남 김정남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친모를 둔 관계로 일찍이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 유랑 생활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고영희의 장남인 김정철은 애초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다.

김정은 후계 체제는 김정일의 선택,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인 장성택의 후견인 자청, 여기에 김옥의 지지가 가세하며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고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는 오래전부터 권력세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남편 장성택은 김정은의 후견인으로서 권력 기반을 넓혀가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권력 축은 ‘김정은-김경희-장성택’으로 구성된 가족 3인방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불안한 권력세습 과정에서 안정적인 체제 구축을 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족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지도층의 현실이기도 하다.

조부인 김일성 전 주석의 외모를 빼닮은 것으로도 관심을 모았던 김정은은 특유의 강한 리더십과 승부욕으로 두 형을 제치고 후계자가 됐다. 현재 그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다가 부친인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 중 과로사했다는 점, 2012년이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점도 그가 최고 권력자로 뿌리를 내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이미 당뿐만 아니라 군대와 공안기관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 승계도 무난할 거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체제를 안정시키고 제대로 된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 강은진(프리랜서)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참고 서적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후지모토 겐지 저, 맥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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