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ㆍ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 우리가 함께 내야 할 목소리

“일본 정부는 진심으로 사죄하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외쳤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굳게 귀를 막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한 단호하고도 간절한 외침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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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부답 일본 정부를 향한 천 번의 외침
지난 12월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따른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렸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라는 피켓을 든 제1회 수요시위가 시작된 이후 천 번째 날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년 동안 이어진 수요시위는 단일 집회로는 유례없는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관으로 열린 제1천 회 수요시위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 강일출, 길원옥, 김복동, 김순옥, 박옥선 할머니가 참석했다. 한명숙 전 총리,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등의 정치인과 배우 김여진, 이서진 등 각계 인사는 물론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뜻을 같이했다.

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풍물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할머니들과 함께 정의와 평화를 외쳐온 이들의 활동 보고와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생존자 대표로 발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86)는 이 자리에서 “일본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소녀들을 먼 나라 전쟁터로 끌고 가 노예로 짓밟았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발 늙은이들이 매주 거리에 나앉아 외치는 이 소리를, 그리고 이 아픈 역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일본 정부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엄중하게 말해주면 좋겠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뒤이어 시위 참석자 전원은 일본 정부를 향해 △전쟁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 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의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촉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수요시위에서는 매주 평화를 염원하는 시위를 계속해온 일본대사관 앞 거리를 ‘평화로’로 이름 붙이는 캠페인과 함께 시민들의 기부로 제작된 ‘평화의 비(평화비)’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 2010년 10월 13일에 열린 제939회 수요시위에서 발의된 ‘천원으로 세우는 평화비 건립 모금 제안’에 따라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대협 봉사자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이를 드디어 ‘평화로’에 세우게 된 것이다.

한복을 입고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소녀는 ‘위안부’란 이름으로 희생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글·영어·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소녀의 어깨에 앉아 있고, 피해자들의 오랜 기다림을 반영하는 의미로 바닥에는 소녀가 아닌 할머니 모습으로 그림자를 형상화했다. 이에 대해 일본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12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는 요청을 전달했고, 제막 이후인 12월 18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우리 정부에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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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회를 맞는 이번 수요시위는 서울뿐 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등 30여 도시에서도 함께 열려 연대의 희망을 꽃피웠다. AP·로이터통신과 일본 NHK·후지TV 등 해외 언론사들도 취재에 나섰다.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이라는 공동 슬로건으로 평화 행렬에 동참했다.

등록된 남은 생존자 63명, 시간이 많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역사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참여해 정대협을 출범하고,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에 나서면서 수요시위의 싹이 움트게 됐다. 이후 혼자서 한 맺힌 세월을 감당해온 피해자들이 속속 목소리를 내게 됐고, 점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과거 청산 문제, 여성 인권 문제 등을 공론화하는 계기로 확산되기도 했다.

정기 수요시위에 모인 이들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 및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해왔다. 처음에는 ‘내 잘못’이라며 가슴을 치고 고개를 숙여 피하던 할머니들은 점차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고, 고통스러움을 견뎌내며 쓰라린 역사를 증언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삼복더위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도,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수요시위를 통해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대협과 피해자 할머니들 몇몇이 모여 시작한 외로운 싸움은 일반 시민, 학생들,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평화의 연대로 확산됐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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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이 주최하는 수요시위는 20개 정대협 회원단체와 여성단체,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 일반 시민들이 주관하고 참여해 이어온 소중한 역사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태국, 버마 등 약 23개국 60여 도시의 수만 명이 이끌어온 소중한 세계 연대의 열매이기도 하다. 또 피해자와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소,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공간, 여성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장, 국경과 이념은 물론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연대의 장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하지만 수요시위는 이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아야만 할 우리 역사의 아픔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다 함께 모여 한 목소리를 내면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회를 시작했던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시위가 1천 회를 맞는다는 사실이 암담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늙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그 어떤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정부 또한 특별한 대책이 없다. 뻔뻔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가슴을 치다가도,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냉담한 시선이 더욱 서운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 모이는 할머니들의 소원은 ‘마지막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이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아내고, 함께 목소리를 내준 고마운 사람들과 모여 마지막 수요시위를 연 뒤, 짧게나마 후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 눈을 감게 되길 매일 간절히 기도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흐르고, 할머니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묻어둔 채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열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떠났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신고자 234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63명뿐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분들도 고령으로 인한 각종 질병과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들의 평균 나이 86세. 그들 중 3/4이 돌보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고 있으며 60% 이상이 주위 사람의 부축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태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함께 힘을 실어야 하는, 간절하고도 강력한 이유다. 오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1천 회 수요시위에 쏟았던 관심을 함부로 놓아버리지 말고, 할머니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가져가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일본 정부는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 잘못을 사죄해야 할 대상을 모두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범죄이자 비극을 저지르는 일이다.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으려면,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나라로 제 몫을 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면,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행동에 나서길 바란다. 과거에 눈을 감는다면, 현재도 미래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제1천 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함께한 이들의 목소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팀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출연 배우들은 이날 직접 무대에 올라 극중 ‘말하라’ 독백을 낭독하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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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性)에 대한 신랄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매 공연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반영한 연출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왔는데, 이번 10주년 공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모놀로그를 통해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덟 번째 독백으로 삽입된 ‘말하라’는 원작자인 이브 앤슬러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난 뒤 보고 들은 얘기를 한 편의 시로 만든 것으로, 당시의 혹독한 현장을 담담하지만 강한 문체로 묘사한다.

‘위안부’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하라’가 흘러나오는 동안 현장에 있던 할머니들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고, 사회를 맡은 권해효는 “가슴이 먹먹해진다”라고 했다. 더불어 제작사는 연극의 수익금 일부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터전인 ‘나눔의 집’에 기부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공연을 하면서 ‘말하라’ 모놀로그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마침 천 번째 수요시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모두 반드시 참석해야 된다는 사명감 같은 걸 느꼈어요.

‘말하라’는 연습 때나 공연 때 수십 번도 넘게 했던 독백인데, 직접 이 무대에서 하려니 다른 때와는 무척이나 느낌이 달라서 마음을 다잡으며 읽느라 힘들었어요. 사실 공연 때는 너무 격정적으로 읽으면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데 힘들어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감정을 순화시키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앞에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니 단어 하나하나가 더 절절하게 느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힘겹게 읽었네요.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우리 배우들도 더 많이 애써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단순히 연기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 가슴에 새기고 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공연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또 평생을 그 상처 속에 살아야만 했던 그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시 자행될 수도 있는 이러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전곡고등학교 2학년 임수진·홍다솔·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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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회를 맞은 수요시위에는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각계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과 학생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다수 참여해 희망을 확인하게 했다. 학생들은 시위 내내 일본 정부에 대한 규탄의 내용과 할머니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 중에는 현장 자원봉사를 지원해 참여한 이들도 있었고, 역사 수업의 일환으로 같은 반 친구들이 단체로 찾기도 했다.

“매주 수요시위가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이번이 1천 회라는 것을 듣고 의미 있는 자리라 생각해서 찾아오게 됐어요. 직접 현장에 와본 건 처음이에요. 참여해보니 마음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고 미묘해요. 할머니들을 뵈니 반갑기도 하고,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척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데 꼭꼭 문 닫아 걸고선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야속하게 느껴져요. 할머니들의 요구를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일제강점기 내용을 배울 때 강제징용이나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한두 줄 정도만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잘 몰라요. 더 자세히 확실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까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와서 정말 고맙고 힘이 된다고 하셨는데, 저희도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정당한 사과와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드리고 싶어요. 이제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20년 동안이나 일본이 모른 척했으니 그 사이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죠. 방학하고 나면 또 다른 친구들을 더 모아서 이 현장에 다시 나올 거예요.”

#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수요시위 1천 회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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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 1천 회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는 다양한 연대 행동이 열리고 있다. 하루 전날인 12월 13일에는 뉴욕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만나는 행사가 열렸고, 14일 일본 정부부처가 집결되어 있는 가스마가세키의 외무성 건물 주변에서는 일본 시민들이 서로 손을 잡은 채 ‘외무성을 인간 사슬로 포위하자’라는 연대집회를 가졌다. 이렇듯 서울 수요시위 현장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해 일본 정부의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는데, 특히 일본의 책임에 공감하는 일본인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눈에 띄었다.

“저희는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에서 ‘아이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오늘 이 시위에 함께하고자 회원들과 함께 어제 한국에 왔어요. 이 플래카드는 회원들 한 명 한 명이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일본 정부의 행동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마음을 담아 직접 손으로 쓴 천 조각들을 모아 만든 거예요. 직접 이 자리에 와보니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무엇보다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참 대단하네요. 그들이 귀여운 목소리로 ‘할머니,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어요.

저는 20년쯤 전에 아시아여성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굉장한 쇼크였죠. 이 문제는 한국인들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도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과거의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사죄하고 책임져야 하고요.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발전도 없을 거예요.”

“저희(야만바·나쓰미)는 직업이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나 말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힘을 보태려고 해요. 규슈 유후인에 살고 있는데 몇 년 전에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됐어요. 오늘이 시위 천 번째 날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이 무궁화 그림은 ‘상처 위에 핀 꽃’이라는 내용이에요. 부디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고 양국이 서로 도와가며 잘 살 수 있게 되길 바라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박동민 ■자료 제공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www.womenandw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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