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엄마는 참 많이도 울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상처받을까봐 가슴을 졸이며 여자가 아닌 어머니로 더 강해지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고, 거센 시련 앞에서는 온몸으로 아이를 지켜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를 악물었다. 모질고 혹독할수록 더욱 치열하게 버텼던 세월이었지만, 엄마의 끝없는 사랑 안에서 아들은 단단하고 야무지게 성장했다.
노래를 포기하고 엄마의 길을 선택하다
아들 노민우를 스타로 키운 오민정씨의 ‘어미새로 사는 법’
“아휴, 우리 민우는 평소에도 그래요. 엄마를 어찌나 신경 써주는지 지금도 계속 노심초사하며 궁금해 하고 있을 거예요. 오늘 인터뷰하고 사진 촬영도 한다고 했더니 미리부터 걱정하더라고요(웃음).”
스물한 살에 첫아들 노민우를 낳은 오씨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모진 풍파를 다 겪었다. 무엇보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데 대한 세상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이따금 눈물이 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라는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했고요. 그래도 우리 민우가 잘 따라줘서 고마워요.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듯 저 역시 자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크지요.”
오씨는 과거 엔카 가수였다. 계은숙의 후배이기도 한 그녀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싱글 음반을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온 아들 생각에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끼와 열정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는 상실감에 눈물로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민우를 낳고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일본으로 넘어가 꿈에 그리던 가수로 데뷔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걸 다 접고 돌아왔죠. 한동안 참 힘들었어요. 꿈에서 한창 노래를 부르다가 잠에서 깨고 나면 어찌나 허탈하던지…. 하지만 민우를 음악과 바꿀 수는 없었기에 가수가 아닌, 여자가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만 살자고 굳은 결심을 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 선택에는 후회 없고요.”
교장과 맞선 열혈 엄마, 학교를 발칵 뒤집은 사연
비록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지만 오민정씨는 일상에서 늘 음악과 함께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무조건 음악부터 틀었고,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도 집 안에는 언제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어린 아들, 노민우에게 이어졌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아이가 대신 이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제가 듣는 음악을 늘 같이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마음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거든요. 민우가 네 살쯤 됐을 때는 세계 각국의 음악 테이프를 모두 사서 틀어주기도 했어요. 클래식 작곡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피아노부터 시작해 기타, 드럼 등 웬만한 악기들을 다 가르쳤죠. 민우 스스로도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려 했고요.”
오씨는 아들을 위해 중학교에 4인조 밴드 동아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그녀를 못마땅해 하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학부모들조차 오씨가 학교 분위기를 흐린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아들과 친구들을 모아 밴드 동아리를 꾸리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원을 찾아가 무료로 연습실 사용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방과 후에도 늦은 밤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아이들을 적극 보살폈다.
“학교에서는 계속 밴드 동아리를 해체하라고 했어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민우는 선생님이 무섭다며 바들바들 떨었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민우에게는 ‘겁내지 마. 엄마는 겁 안 나. 엄마가 반드시 해낼 거야. 그러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라고 말한 뒤 교장실을 찾아갔어요. 그러고는 당당히 맞서 따졌어요. 학교는 꿈나무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는 공부를 하고, 음악을 배우고 싶은 아이에게는 음악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말이죠.”
심지어 오씨는 아이들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중·고교 밴드 동아리 경연 대회에 출전시키기도 했다. 그녀는 사비를 털어 정장 유니폼을 맞추고, 리허설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일일이 설명하며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교사들이 책임자가 되어 학교 대표로 출전한 밴드 동아리들 틈에서 오씨의 인솔하에 움직이는 노민우 팀은 단연 눈에 띄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었지만, 우리 밴드 아이들은 제가 양복을 입혔어요. 게다가 대회 본 공연에서는 3분 안에 노래를 끝내야 했는데, 민우랑 친구들이 연습한 곡은 5분이 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꾀를 좀 부렸죠. 리허설 때는 적절히 3분 내로 곡을 자르고, 막상 실제 공연이 시작됐을 때는 처음에 연습한 대로 끝까지 다 하라고 시켰어요(웃음).”
아들 노민우를 스타로 키운 오민정씨의 ‘어미새로 사는 법’
“전 엄마로서는 싸움에서 진 적이 없어요. 민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밴드로 본격 데뷔를 하느라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학교 수업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때도 제가 선생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양해를 구했어요.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무조건 퇴학을 시키려고만 하더라고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안 해본 게 없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간신히 받을 수 있었고, 저는 한동안 그 졸업장을 안고 펑펑 울었어요. 사실 정말 힘들었거든요. 여자 혼자서 남자 선생님들과 부딪혀야 할 때는 서러운 마음을 꾹꾹 눌러가면서 참고 또 참았어요.”
소속사와의 갈등 그 후
“울지 마, 엄마가 지켜줄게”
밴드 활동을 하며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노민우는 우연히 한 유명 연예기획사에 캐스팅됐다. 그러나 일본에서 록 그룹으로 데뷔해 잠시 앨범을 냈을뿐, 소속사와 잦은 갈등을 겪으며 거의 10년 동안 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늘에 가린 채 연습생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오민정씨는 결국 소속사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어떻게 키운 귀한 아들인데…. 아이의 팔목을 잡아끌며 울면서 소속사에서 뛰쳐나왔어요. 믿고 맡겼던 곳이었는데 정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그 후에도 소속사와의 마찰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 민우가 잘되는 걸 원치 않는 건지 계속해서 방해를 하더라고요.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처절하게 싸웠는지 말로 하자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라요. 그때 겪은 일들 때문에 제 가슴에는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 있어요….”
오씨는 꿈을 잃고 방황하는 아들에게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충무로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프로필을 돌렸고, 주위에서 작품에 출연할 배우를 뽑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일일이 아들을 데리고 가서 오디션에 참가시켰다. 이따금 감독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들을 때면 엄마로서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우가 어릴 때 아역배우도 잠깐 했었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죠.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정도로 힘들어하는 자식에게 산소호흡기라도 얼른 대줘야 하는 게 부모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젖동냥하듯이 민우를 데리고 정말 여기저기 열심히 다녔어요. ‘혹시 전생에 모자가 샴쌍둥이였던 건 아니냐’라는 말까지 들어봤어요(웃음).”
노민우는 드라마 감독 및 작가들의 눈에 띄며 연기자로서 조금씩 두각을 드러냈다.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를 비롯해 드라마 ‘남편이 죽었다’,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에 출연하면서 차근차근 연기를 쌓아갔으며 드라마 ‘파스타’로 이름을 알리고 큰 인기까지 누렸다. 오씨는 그런 아들의 매니저 역할을 흘륭하게 소화해냈다.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운전까지 혼자서 다 해냈어요. 잠옷 바람으로 새벽에 나가서 촬영장에 데려다주는가 하면, 여기저기 지인들을 통해 의상을 빌려 입히기도 했죠. MBC-TV ‘세상을 바꾸는 퀴즈’ 출연을 앞두고는 밤새 서투른 솜씨로 집에 있는 천과 고무줄을 이용해 보타이를 직접 만든 적도 있어요. 아침에 민우가 일어나서 보더니 ‘여태껏 한 숨도 안 잤느냐’라며 ‘인간 승리’라고 하더라고요. 그 타이를 목에 매고 촬영하는 아들을 객석에서 지켜보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웃음).”
뒤늦게 찾은 행복, 늘 지금처럼 웃으며 살자
오민정씨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노민우는 이제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으로 승승장구하는 인기 배우가 됐다. 지난해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와 ‘마이더스’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던 그는 현재 가수 비와 배우 송혜교의 열연으로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풀하우스 1’의 후속작인 ‘풀하우스 2’ 촬영에 한창이다.
“성장 과정에서 힘든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요즘은 정말 행복해요. 힘들게 씨를 뿌리고, 나무를 무성하게 자라게 한 후 값진 열매를 수확했을 때의 쾌감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이 웃음과 기쁨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씨는 지난해 6월에 열렸던 노민우의 생일파티 겸 팬 미팅 자리에서 500여 명의 팬들에게 직접 큰 절을 올리고, 아들에게 깜짝 영상 편지를 보내 주위를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매니저가 있고, 소속사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한시름 덜었죠. 그렇다고 해서 민우 곁에 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지인들이 간혹 ‘이제 자네 시간이 많아졌으니 한결 편하겠다’라고 말하지만, 자식은 제가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연예인으로 활동하다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그때도 계속 이것저것 신경 쓰게 될 것 같고요(웃음).”
아들 노민우를 스타로 키운 오민정씨의 ‘어미새로 사는 법’
“저는 요즘 해금을 배우고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두 아들과 가족 음악회를 열어보고 싶어요. 그럴 날이 오겠죠…?(웃음)”
비록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여자로서의 삶도 잊어버린 지 오래됐지만, 오민정씨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 수 있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존재는 누가 뭐래도 바로 엄마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똥강아지,
내 아들 민우에게
아가, 엄마다! 어미가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는구나. 지금의 이 자리, 이 소중한 순간이 있기까지 너무도 아픈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이 어미는 슬픔 반 기쁨 반, 입가에는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너를 낳으며 나도 어미가 되고, 이 못난 어미 곁에 한 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언제나 의젓하고 늠름하게 노력하는 너의 모습에 내 자식이지만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밖에는 가질 수가 없구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밝은 빛이 반겨주듯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오늘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돼서 이 어미는 가슴이 벅차올라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단다.
촬영에 열심히 임하면서도 쉬지 않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한이 맺히고 힘이 들었으면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하며 너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뼈저리게 실감한단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너의 끼와 재능을 누군가 커다란 바윗덩어리로 짓누르고 있었을 때, 이 어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단다. 너도 인간인지라 한동안 방황하며 정처 없이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그런 자식을 지켜봐야 했던 이 어미는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죄책감과 무능함을 하염없이 자책하며 내 자신을 무너뜨리기도 했었다. 또 어미라는 이름으로 참을 수 없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고, 나의 옆자리가 비어 있음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던지, 어린 너의 숨통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가졌었다. 잠시라도 나약하고 약한 마음을 가졌던 이 어미가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게 느껴지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어미가 그러하듯이 내 새끼가 죽어가는 것을, 아파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을 거다. 그러나 신은 역시 내 아들을 버리지 않으셨더구나.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로 주신 것을 보면 말이다.
아들아! 이제는 불안해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외로워하지도 말거라. 아픈 과거는 모두 잊고,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 지금보다 더 높이 비상하리라 이 어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앞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스타가 되길 바라고, 스스로 본인 건강 챙기길 바란다. 그리고 팬들이 입가에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을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너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기 바란다. 뒤는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거라.
그리고 이 어미의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겠니?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말했지? 엄마는 요즘 황정음 엄마가 무척 부럽단다. 제발 광고 좀 팍팍 찍어서 이 어미 주머니 좀 빵빵하게 채워주렴! 나도 너에게 투자한 것은 뽑고 장가를 보내야 할 것 같아서….
아들 사랑해, 엄마 몸이 아플 만큼!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