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상속 분쟁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CJ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씨(81)가 동생인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소유권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맹희씨는 지난 2006년부터 이어진 친자·양육비 소송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삼성家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는 누구?

故 이병철의 삼성그룹 창업주 장남인 이맹희씨(왼쪽), 3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맹희씨는 20여 년 전인 1993년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를 펴내며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을 털어놨다. 그 내용은 1986년에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출간한 자서전 「호암자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병철 회장은 저서를 통해 “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맹희씨는 회고록에서 “내가 회사를 맡은 것은 7년이었으며, 회사에서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였다”라며 ‘사카린 밀수사건’ 후 이병철 회장의 경영 복귀 문제와 둘째 이창희씨의 ‘모반사건’을 둘러싼 오해를 그 예로 들었다.
‘사카린 밀수사건’은 1966년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밀수해 관세를 포탈한 혐의로 둘째인 이창희씨가 구속되고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이다. 그 당시 이병철 회장은 장남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맹희씨가 삼성그룹 총수에 오르지만 그의 천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맹희씨는 “정부와의 관계가 부드러워지자 아버지는 서서히 삼성의 경영자로 컴백할 결심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라며 “동생 창희의 아버지에 대한 ‘모반사건’이 터지자 사건은 더욱 심각해졌다”라고 회고했다.
이맹희씨는 회고록에서 이창희씨의 ‘모반사건’에 대해 1969년, “창희가 ‘아버지의 일선 복귀’에 대한 반대의 뜻을 담은 ‘탄원서’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탄원서에는 이병철 회장의 비리, 외화 밀반출, 탈세와 관련된 의혹을 담고 있어 이병철 회장의 진노를 산 것으로 전해진다. 이맹희씨는 “아버지가 나도 이 일에 개입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문제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라고 억울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결국 이 사건이 부자간의 보이지 않는 불신의 씨앗이 됐다”라며 “내가 경영권에서 물러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1972년부터 공공연히 회장 복귀 의사를 내비치던 이병철 회장은 급기야 1973년 이맹희씨를 불러 그가 가진 직함 17개 중 14개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에게 남은 직함은 삼성물산, 삼성전자, 제일제당의 부사장 직함 세 개뿐이었다. 그 후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그 뒤 이맹희씨는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겨울에는 사냥을 하고 여름에는 제주도의 마라도를 떠돌며 아버지와 거리를 뒀다. 이에 대해 그는 “그때라도 자존심을 죽이고 매달렸으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았다”라며 “아버지가 나를 완벽하게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너무 억울했다”라고 전했다.
이맹희씨가 삼성그룹의 총수를 맡았던 7년간의 군림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76년, 이병철 회장은 구두 유언을 통해 차기 경영자로 3남인 이건희씨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987년, 이병철 회장의 사망 후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면서 이맹희씨는 재벌가의 장남이면서도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한 ‘비운의 황태자’가 됐다.
선대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이맹희·건희 형제의 분쟁

친자확인 소송과 양육비 청구 소송으로 화제를 모은 이재휘씨와 그의 어머니.
이맹희씨 측이 말하는 ‘차명주식’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별검사 팀의 수사를 거치며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당시 “삼성이 전·현직 임직원의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김 변호사의 폭로로 특검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비자금 의혹을 받는 자금이 이병철 회장의 유산이었다는 결론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이건희 회장은 차명으로 관리해온 삼성생명 주식 3,244만여 주와, 삼성전자 주식 225만여 주를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는데 이병철 회장의 유산이라던 이 자금이 지금의 소송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맹희씨 측은 “지난해 6월 이건희 회장 측이 차명재산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지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문서를 보내 서명을 요구했다”라면서 “이 과정에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실명 전환한 뒤 보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소송을 냈다”라고 전했다.
이에 이맹희씨 측은 삼성생명 주식 824만여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그동안의 이익배당금 1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맹희씨는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전자 주식 100주와 이익배당금 1억원도 청구했다. 현재 삼성생명 주가로 환산하면 이번 소송가액만 7천억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삼성생명 차명주식 중 삼성에버랜드로 명의가 변경된 875만여 주와 삼성전자 차명주식 57만여 주는 우선 일부만 청구한 뒤 나중에 추가로 소송을 낼 계획이어서 이를 포함한 소송가액은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 고문,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역시 이건희 회장 측에서 요구한 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만약 이 소송에서 이맹희씨가 승소하고 두 사람까지 소송을 제기 한다면 이건희 회장은 3조원이 넘는 돈을 내줘야 한다는 예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은 “삼성생명의 차명주식 등은 선대회장(고 이병철 회장)의 유지에 따라 이건희 회장 소유로 하기로 했다”라며 “굳이 유지를 따르지 않더라도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맹희씨 측은 “상속재산에 대한 협의가 없었고, 삼성생명 주식 명의 변경은 2008년 12월에 있었기 때문에 소송이 가능하다”라며 맞서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15일, 이맹희씨 측이 소송 인지대 22억4천9백만원을 지불함에 따라 형제간의 소송 분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 2006년부터 이어진 친자·양육비 소송
이미 오래전부터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 이맹희씨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최근까지 중국과 동남아를 오가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추정될 뿐이며,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을 비롯한 다른 가족과도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행방이 묘연하던 그가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 2006년에 불거진 ‘친자확인 소송’과 2010년에 이어진 ‘양육비 청구 소송’에 휘말리면서 부터다.
2006년 당시 이맹희씨의 친아들이라 주장했던 이재휘씨가 친자확인 소송을 냈고 대법원으로부터 이맹희씨의 친자가 맞다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친자일 확률 99.9%’라는 유전자 감식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이어 2010년에는 이재휘씨의 친모, 이맹희씨의 연인이었던 박 모 여인이 그간 혼자 아들을 키운 것에 대한 양육비 명목으로 4억8천만원의 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 2월 14일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이맹희씨는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가 머물고 있는 별장은 베이징 3대 별장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최고급 주거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시세는 약 140억원에 달하고 이맹희씨가 7년 정도 베이징에서 거주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