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19대 총선이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선거를 치른 만큼, 후보들의 당락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며 후폭풍도 거세다. 각 정당들은 선거 여파에 대한 수습과 함께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통을 치료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선자와 지자체 간에도 선거 과정 중 벌어진 갈등을 해소하고 하루빨리 술렁이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후 다시 ‘청소노동자’로 돌아간 김순자씨
선거일 다음날부터 바로 일터로 복귀한 김순자씨는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당선 뒤 국회의원 자격으로 낡은 관습과 잘못된 정책들을 직접 싹싹 쓸어내겠다는 다짐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의 이유를 발견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일이 쏟아진데다 여기저기서 그녀를 찾는 이들이 많아져 선거운동 기간만큼이나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2일 새벽에 출근해서 하던 대로 한 바퀴 돌며 청소를 끝내고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도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시간을 가졌죠. 당면한 노조 현안들도 하나 둘씩 처리하고, 이렇게 언론사 인터뷰도 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울산 지역을 비롯해 집회 현장 지원도 나가고 있고, 이곳저곳 와달라고 부탁하는 곳이 많아져서 쉴 틈이 없어요.”

선거운동 당시 김순자씨의 모습.
“2007년 우리가 학교 측과 투쟁할 때도 지역 노조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해주고 힘을 줬었거든요.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도 선거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도움을 얻었어요. 특히 ‘우리들의 바람을 대변해줘서 고맙다’라며 오히려 제게 더 큰 힘을 보내주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서는 이제껏 제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고, 또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어요. 제가 거꾸로 그들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고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면 가능한 한 어디든 달려가서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안타깝게도 국회 입성은 좌절됐지만 김순자씨는 이번 선거 출마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데 대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결코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만든 것. 그리고 청소노동자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결국 그만큼 정치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는 점만으로도 금배지를 단 것 이상의 빛나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종종 이야기했던 게 국회에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 출신 의원이 세 명만 있었어도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 조건, 처우 문제가 지금과 같진 않을 거란 거였어요.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한없이 약했고 마치 세상에서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세상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노동자’로서 저와 같은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뜻을 대변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고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이에 대해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청소노동자의 인간 선언이 이루어졌다’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예전 같으면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청소노동자’가 사회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본인들 스스로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면, 이제는 들러리가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발맞춰 걸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다면 점차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지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희망도 품어보게 됐다.
상식과 약속이 통하는 사회
물론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입장에서나 개인으로서나 쉽지 않은 결심을 한 만큼, 선거 결과에 거는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만약 당선이 됐다면 ‘비정규직 악법’ 철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및 처우 개선 등에 큰 힘을 실을 수 있었을 테고, 따라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1 선거운동 중, 김순자씨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담아 빗자루로 쓸어 없애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와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주고받고 있다.
한동안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을 해보면서 그녀는 현실과 정치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또 평소 생각하고 말하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기존의 정치권이 서민들의 생활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왔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4월 9일에 열렸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가 끝난 이후 많은 지지와 주목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반응이었어요. 사실 제가 한 말들은 토론회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늘 하던 이야기들이었거든요. 당에서 토론회 일정이 잡히고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저임금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도둑질을 해야 합니까, 그냥 굶어야 합니까?’라든가 ‘있는 법도 안 지키는 판국에 무슨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와 같은 이야기를 했죠. 거기서 제가 좀 말투가 세다 보니(웃음) 당 관계자 분들이 예쁜 말로 다듬어주시기만 한 거예요. 사실 제가 자유 토론이 뭔지, 토론 규칙이 뭔지, 생전 그런 걸 해봤어야 알죠. 잘 모르니까 그냥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준비해온 자료만 수십 장이 되던데 오히려 핵심을 벗어나서 어렵게만 이야기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김순자씨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존 정치권이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결코 와 닿지 않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모아놓고 결론도 없이 주야장천 주고받고만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철에나 바짝 유권자들을 찾아다니고 평소에는 언제나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에게 질려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무관심해지면서 이렇게 모두가 어려운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2000년에 비정규직에 관한 공약을 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잖아요. 우리 삶을 돌아봐도 어느 것 하나 발전한 게 없고요. 처음 제가 진보신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 결심을 하게 된 데는 더 이상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였어요. 저도 처음에는 돈 있고, 많이 배우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국회의원도 하고 정치를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고용승계 보장 투쟁을 통해 우리 노조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시켰던 것처럼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의 삶도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어요. 진보신당 동지들을 비롯해 지지를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김순자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조원들.
“선거운동 기간 만난 분들에게 만약 떨어지더라도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적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 거예요. 전국적으로 다녀보니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근무 시간 식사비를 안 주는 회사가 허다해요. 그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처지인데 밥까지 사서 먹으면 월급은 더 줄어드는 셈이고요. 그리고 그들에게도 차가운 지하 구석방이나 계단 한 구석이 아닌 식당에서 똑같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무작정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쉬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서 최소한 사람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당한 노동에 따른 보장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는 그날까지 제가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이에요.”
김순자씨는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부디 선거운동 기간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후보가 앞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번만큼은 꼭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주길 바란다고.
“정치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될 세상, 노동자들이 정치인들을 믿고 사회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도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라 생각해요. 꼭 하나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평범한 아줌마였던 제가 노조를 만들고 격렬하게 투쟁을 하고 또 이렇게 선거에까지 나가게 된 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내 문제를 내가 부당하다고 먼저 말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스스로 소리 내고 싸울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거예요. 모두가 불합리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박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