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댓글 공유하기
그를 아는 첫 번째 방법은 그의 이력을 아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의 대가 피에르 코프만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자 장 조지, 고든 램지 등 세계적 권위의 셰프들 밑에서 수학한 정통파 셰프. 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화려한 이력이지만 그것만으로 이 남자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올리브채널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냉철함 속 부드러운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강레오 셰프를 만났다.

까칠한 매력으로 여심 흔드는 한국의 고든 램지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캐주얼한 후드 재킷에 컨버스 운동화. 해사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오는 이 남자가 검은 슈트 차림에 단호한 표정으로 출연자들을 긴장시키는 TV 속 그 인물이 맞는지 생각하는 데 잠시 동안 시간이 필요했다. TV에서 비쳐지는 모습만으로는 왠지 잘 때도 슈트를 입을 것 같은 남자였는데 정작 평소에는 편안한 캐주얼과 요리사복 외에 슈트는 잘 입지 않는단다. ‘평소에는 슈트를 잘 입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동그라미 1번을 붙여 수첩에 적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카리스마 심사위원’, ‘한국의 고든 램지’ 등 위엄 넘치는 수식어 이면에 요리사 강레오(36)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인터뷰가 시작됐다.

지난 4월 말 첫 전파를 탄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한국판으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세 명의 심사위원들에게로 모아졌다. 특히 불같은 성격과 독설로 유명한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뒤를 이을 심사위원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도 컸다. 영국의 음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칭송받는 피에르 코프만의 유일한 한국 제자이자, 런던 고든 램지 레스토랑의 수셰프, 두바이 고든 램지 레스토랑의 헤드셰프를 지낸 그가 물망에 오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영국판 심사위원인 미셸 루는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요리사예요. 저에게 아버지 같은 스승이신 피에르 코프만 밑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또 함께 일했던 스승 중 한 명인 고든 램지도 미국판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에 처음 심사위원 제의를 받고 매우 흥미로웠어요. 요리사로서 존경하는 선배들의 뒤를 잇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죠.”

‘비엔나의 요리 여왕’ 김소희 셰프, 국내 식품외식계의 미다스 손 CJ 노희영 고문과 나란히 심사위원석에 앉은 그는 방송 첫 회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얼굴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요리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날 선 심사평이 심사위원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더했다. 심사에 있어 ‘밀당의 기술’도 발휘했다. 금방이라도 접시를 집어던질 듯 날카로운 표정으로 출연자들의 음식을 음미하고는 합격의 앞치마를 안겨줘 출연자뿐 아니라 보는 이들의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리게 했다.

“진행하는 데는 오프닝과 미션 정도의 대본만 주어져요. 심사에 대한 부분은 심사위원들의 의견과 판단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시면 돼요. 주어진 역할이 있으니 심사는 엄격해야겠지만 출연자들이 가지고 있는 요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깨뜨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름 약하게 한다고 하는 건데 많은 분들이 무섭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레스토랑 직원들한테 하는 걸 못 보셔서 그래요(웃음).”

어쨌거나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오가는 그의 심사는 현재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여성 팬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중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관 검색어가 ‘강레오 결혼’이다. 최근에는 ‘강레오 키’가 추가됐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 그가 미혼이라는 것이 밝혀지던 순간 많은 여성 팬들이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해요. SNS도 잘 모르고 휴대폰은 전화와 문자용으로만 쓰는 스타일이에요. 얼마 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저리 가세요’ 하고 밥만 먹었어요. 무척 쑥스럽더라고요(웃음).”

글보다 빨리 배운 요리, 대가족에게 물려받은 요리 유전자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한 달여, 각기 다른 사연과 개성을 가진 출연자들이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방송에서는 평가를 하는 입장과 평가를 받는 입장이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출연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 요리를 만드는 남편, 요리하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눈물의 앞치마를 목에 건 대학생,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향해 꿋꿋이 도전하는 젊은 도전자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서른여섯 길지 않은 인생 중 스무 해 가까이 요리를 해온 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도전한 박성호씨의 음식은 어머니께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밖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했죠. 어머니께서 아들이 만든 음식을 직접 맛보시고 맛이 좋으면 합격, 맛이 없으면 데리고 가시라고 했어요. 방송에는 짧은 시간이 나갔지만 실제로 어머님께서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진짜로 데리고 나가실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다행히 앞치마를 걸어주시고 박성호씨는 도전을 계속하게 됐죠. 힘들지 않은 길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라면 후회해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모습이 보여요. 그런 열정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잘될 거예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심사위원 강레오 셰프

열정 가득한 젊은 도전자들을 보며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곤 한다는 그다. 강레오 셰프는 언제부터 요리를 하게 됐을까?

“농사짓는 집안이었어요. 대가족이 모여 살았고요. 소, 돼지도 키우고 과수원도 하는 식솔 많은 집이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매일 하루 세끼를 잔칫집 수준으로 해야 했어요. 할머니부터 큰어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 동네 아주머님들까지 오셔서 음식을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헤드셰프셨고 큰어머니가 수셰프, 그 아래로 각 파트별 셰프들이 계셨죠(웃음).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와 가까워지게 됐고 언제 발을 들였는지도 모르게 요리를 하게 됐어요.”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남자아이는 글을 배우기도 전에 요리를 배웠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시골 장에서 만두 만드는 기구를 사오셨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흙으로 만두소를 채워 흙만두를 만들었다. 아까운 만두피를 버렸다고 혼이 나긴 했지만 만두며 송편이며 야무지게 빚어내는 손주 녀석의 손재주를 눈여겨보셨으리라.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 옆에서 장을 담그고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감을 키워갔다. 그에게 집은 가장 큰 요리학교였다. 요리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처음에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1년 정도 계속된 아들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허락해주셨고 고2 때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고3 때부터 호텔 주방과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3 때 소공동 롯데호텔에 취직하고 토요일에만 학교를 갔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게 요리라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거든요. 공부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그저 요리하는 게 무척이나 즐겁고 재밌었죠. 여전히 그런 걸 보니 참 다행이에요. 일찌감치 제 운명을 알았나 봐요.”

성실과 근성의 요리사, 감각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
1997년, 스물두 살의 그는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통 양식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나름 영국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영어 공부만 빼고요(웃음). 좋게 말하면 요리 유학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죠.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작정 요리를 배우겠다고 영국으로 떠났으니 말이죠.”

런던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동네 작은 샌드위치 가게와 레스토랑을 돌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어가 ‘I need a job(일자리 구하러 왔습니다)’이었다. 얼마 전 외국인 출연자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해 화제가 됐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하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하기에도 새삼스럽다. 런던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샌드위치 가게에 취직해, 새벽에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가 피에르 코프만의 제자가 되어 미슐랭 3 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 ‘라 탕 클레어’를 비롯해 런던과 두바이 유수의 레스토랑을 누비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주방이라는 곳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선배 요리사들에게 욕도 많이 듣고 많이 맞기도 했어요. 집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레스토랑 바닥에 누워 자기도 하고 만날 다치고 데고 해서 손이 성할 날이 없었죠. 칼로 돼지 등뼈를 손질하다 제 손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어요. 인종차별을 겪으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지만 런던에 간 후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영영 안 돌아올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의 무기는 성실함과 근성이었다. 남들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 재료를 다듬고 불평없이 우직하게 일했다. 천재가 아닌 이상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다. 스스로 타고난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고 요리하며 요리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자기 일만 하기에도 바쁜 주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챙기며 실력을 쌓은 결과 어느덧 그는 주방에서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이 돼 있었다. 처음 월급도 받지 못하고 일하던 동양인 청년이 런던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의 헤드셰프가 되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다. 서른 살에 헤드셰프가 되어 금발의 여자친구를 컨버터블에 태우고 여행을 가겠다는 꿈은 1년을 앞당겨 스물아홉 살에 이뤘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이제까지 요리를 하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확실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거든요. 언젠가는 꼭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 있고요. 확고한 목표와 근성을 가지세요. ‘마스터 셰프코리아’ 출연자들뿐 아니라 도전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국격(國格) 높이는 ‘레오 스타일 요리’ 만드는 것이 꿈
그는 요즘 한국 궁중음식 전문가 한복려 원장으로부터 한식을 배우고 있다. 한식은 그가 꿈꾸는 ‘강레오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체성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누구든 먹어보면 제가 만든 요리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한 번 맛을 보면 ‘아, 이건 레오 스타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요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빨리 배우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네요(웃음). 마흔 살 정도 되면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요. 세계시장에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격을 올리는 것이 요리사로서 저의 꿈입니다.”

강레오라는 이름은 세례명에서 따온 본명이라는 것, 밥보다는 면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 합기도 유단자로 일주일에 세 번 도장에서 수련을 한다는 것,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가방에 여권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 요리사 강레오가 아닌 서른여섯 살 싱글 강레오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그’ 질문을 던졌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다른 건 다 버리고 그것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결혼도 못할 것 같아요(웃음). 예쁜 척하지 않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라면 좋겠어요. 언젠가 ‘강레오 배우자’가 제 연관 검색어에 추가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 협찬 / 마카로니 마켓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