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하고 자비로운 보살님 같아야 할 스님들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승려들의 도박 파문을 참회하는 108배를 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스님이라 하면 일단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 등 존경받았던 스님들을 떠올린다. 초인적 수행으로 큰 깨달음을 이룬 ‘우리 곁에 왔던 부처’ 성철 스님, 무소유를 주창하며 평생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고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글로 국민의 심성을 치유해주었던 법정 스님이 우리네에게 심어준 이미지는 매우 강렬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산사의 선방에서 흰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깨달음을 위해 참선 정진하는 모습, 발우공양을 하며 음식물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청빈하고 청렴한 삶의 모습, 파르라니 깎은 머리, 형형한 눈빛으로 오직 부처가 되고자 길을 떠나는 모습, 그리고 중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보살행을 펼치는 모습들이 스님이 주는 이미지로 머릿속에 각인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스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몇몇 스님이 호텔에서 억대 도박판을 벌이는 광경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보도되고, 인터넷을 도배하는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아무리 큰 사건도 며칠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게 마련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 스님들의 도박 사건은 발생한 지 한 달이 되도록 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도박 파문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승가가 신망 잃은 탓
지난 4월 23일 밤 ‘한국 불교의 총본산’ 조계사의 주지가 포함된 여덟 명의 스님이 전남 장성의 백양사 인근 한 호텔 스위트룸에 둘러앉았다. 포커 도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인 4월 24일 아침까지 계속된 도박에 참여한 스님들의 손에는 카드와 돈뿐만이 아니라 술잔과 담배까지 들려 있었다. 5만원권이 포함된 판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승복을 걸친 채 흐트러진 자세를 한 스님들은 도박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전 국민이 동영상을 통해 낱낱이 지켜봤다. 여기서 억대이니 아니니 하는 판돈 규모의 논란은 별 의미가 없다. 시정잡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스님들이, 그것도 가장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방장 스님의 사십구재 날에 저질렀다는 자체가 일반 국민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으며, 불자들에게는 깊은 배신감을 가져다준 것이다.
도박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스님들에 대한 실망과 충격이 불에 기름을 부은 듯이 확산됐다. 특히 이 사건의 불길이 종단의 지도부로 옮겨 붙으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는 종단 지도부와 반목 관계에 있는 몇몇 관계자의 동영상 언론사 제보 및 검찰 제출 등의 움직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도박과 음주, 끽연 등이 스님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는 추가 폭로와 핵폭탄급 폭로 예고 등으로 현재에도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조계종 종정이 ‘참회와 사과’를 표명하고, 조계종 총무원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총무원 집행부를 전원 경질하고 참회하는 등 이런저런 수습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국민의 충격과 불자들의 상처는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님들의 도박으로 돌발된 이 파장의 끝은 어떤 것일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현재로서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1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인 도법 스님은 5월 17일 한국불교문화기념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종단은 죽을 힘을 다해 이번 사건을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 지난 4월 23일 전남 장성의 한 호텔에서 스님들이 거액의 판돈을 놓고 도박하고 있는 모습. 이 장면은 몰래카메라로 촬영됐다. 성호 스님 제공.
도박을 한 스님들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은 종단에 의해 징계를 받아 승적을 박탈당한 상태다. 따라서 조계종 집행부에서는 성호 스님에 대해 스님이라는 칭호 대신 ‘정 아무개’라는 세속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성호 스님은 본래 전북 진안 금당사 주지를 지냈고 한때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했다. 그런 그가 징계를 받아 스님이 아닌 신세가 된 것이다. 당연히 조계종 현 집행부에 좋은 감정을 가졌을 리 없다. 그는 현재 조계종과 승려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소송 중이다. 공교롭게도 1심에서는 승소를 했다.
성호 스님의 자승·명진 스님 룸살롱 출입 공표, 불에 기름 부은 격
성호 스님은 도박에 연루된 스님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추가 폭로 계획을 언론에 밝혔다. 그러나 그가 밝힌 추가 폭로는 10여 년 전에 있었던 몇몇 스님의 이른바 ‘신밧드 룸살롱 출입 및 성 매수 사건’이었다. 당시 룸살롱에 출입한 스님들은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스님들이기에 그 파장은 컸지만 동시에 성호 스님에게 폭로를 할 이렇다 할 자료가 없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그럼에도 언론에 공개된 명단이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이들이기에 신밧드 룸살롱 출입 사건은 한참 지난 퀴퀴한 사건임에도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명진 스님은 문제가 불거졌던 당시에 사과와 함께 책임을 지고 종회부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고 이후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후 룸살롱 출입 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승려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범계 행위는 하지 않았다”라고 밝히는 등 사실상 파장이 일단락된 상태인데 이번 폭로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명진 스님은 룸살롱 사건이 다시 불거지자 해명대신에 이번 하안거 입제일(음력 4월 15일)에 문경 봉암사 선방으로 들어가 정진에 전념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뇌관은 뭐니 뭐니 해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 쏠리는 의혹의 눈초리다. 백양사 도박 사건의 불똥은 즉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로 옮겨 붙었다. 사건의 파장으로 볼 때 불교계 수장으로서 마땅히 책임을 통감하고 불교계 수장으로서 룸살롱 사건에 연루됐다는 자체가 책임을 질 만한 사안임에도 봉합을 추진하는 모습이 도리어 공분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1 승려 도박 사건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정범 스님이 조계사 대웅전 입구에 대자보를 게재했다. 참회와 함께 승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일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글을 신도들이 바라보고 있다. 2 한 스님이 서울 조계종 총무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건 흐름, 종단의 인적·제도적 쇄신 촉구로 급선회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자승 스님은 새로 임명한 호법부장(서리)을 통해 한 방송에서 “룸살롱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곳에서 나왔고 성매수를 한 사실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총무원장의 이런 대응은 결과적으로 룸살롱에 갔다는 사실을 인정한 꼴이 되어 되레 불자들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샀다. 특히 도박 사건에 대한 ‘스님들의 놀이문화’, ‘치매 예방을 위한 것’ 등의 발언은 도박 사건을 대하는 종단 집행부가 안일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도박 사건 발생 이후 참여불교재가연대와 불교시민단체네트워크 등 교계 단체들은 도박을 벌인 쪽과 불법으로 도둑 촬영을 해 고발한 쪽이 모두 문제라는 양비론적 성명과 논평을 냈지만 이번 사건의 외연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양비론적 논평은 빛을 잃고 말았다.
조계사 주지가 경질됐고, 도박에 참여한 모든 승려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처벌 방침이 발표됐으며, 문화부장을 제외하고는 총무원 집행부가 다 바뀌었는데도 사태의 파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승려 도박 사건이 터진 조계종의 본사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시민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건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해답은 이 문제를 종단 지도부에 만연한 음주, 도박, 은처 행위 등에 대한 일소의 계기, 즉 제2 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불자 대중들의 공감대가 생각보다 매우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만3천여 명에 이르는 스님들 가운데 종단 정치에 간여하면서 온갖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고 있는 200명 안팎의 승려들을 이번 기회에 처내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불자 대중들의 시각이다. 한 번 더 이런 사건이 터지면 한국 불교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는 우려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같은 불자들의 인식은 급기야 “종단 수장, 즉 총무원장을 포함해 의혹을 받고 있는 모든 승려들의 비리를 조사하라”라는 정의평화불교연대의 5월 18일 성명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이틀 앞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는 사태 수습을 위해 종정 스님과 원로회의의 역할을 촉구하고, 불교 쇄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두 단체의 성명은 현 종단 지도부가 제시한 대안 및 대책이 미봉책에 지나지 않으며, 쇄신 대상인 이들이 이번 문제의 해결 주체로 나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흐름은 “본사 주지와 종회의원 등 종단 핵심 지도부의 사유재산을 종단에 헌납하라”라는 요구와 불자 대중들이 요구하는 혁신을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시주 거부와 승가 불(不)경배 운동을 벌이겠다는 경고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성호 스님이 조계종 승려 도박 사건의 고발인 자격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제도 쇄신·인적 쇄신의 주체 누가 될 것인가? ‘화두’ 급부상
그렇다면 조계종의 제도적 쇄신 및 인적 청산의 주체는 누가 될 것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 도박 사건으로 촉발된 조계종의 자정 및 혁신 방향에 최대의 관심사로 등장할 전망이다. 현재 자승 총무원장 집행부는 종단 집행부, 즉 부실장 교체에 이어 지지 세력으로 분류되는 원로회의와 중앙종회, 교구 본사 주지 모임 등을 중심으로 쇄신위원회를 마련해 미비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쇄신제도 마련의 주체는 기존의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담당한다는 방향도 정했다.
그러나 이 안은 친목성 모임이기는 했지만 18일 사당동 관음사에서 열린 원로 스님 모임에서 사실상 비토되고 말았다. 원로 스님들의 행보와 함께 이번의 쇄신 과정에 재가자의 대등한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재가 단체들의 움직임도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각 사찰마다 거는 봉축 연등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종단이 이번 기회에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재가 불자들의 강력한 압박의 표출이다. 이런 재가의 흐름은 혁신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일부 재가 단체들이 제기한 ‘시주 거부, 승가 불공경’ 운동의 현실화로 나타날 수도 있는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부처님 당시 다툼을 그치지 않던 비구들이 재가 불자들의 시주 거부라는 압박으로 다툼을 멈춘 사건인 이른바 ‘코삼비 사건’이 21세기 한국 불교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계의 쇄신 움직임에 국민적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글 / 이학종(미디어붓다 대표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