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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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등단 30주년을 맞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얼마 전 한 가지 고백을 했다. 그동안 한 인물에게서 시를 베껴 썼노라고. 그가 자신의 시의 원래 주인이자 시원(始原)으로 꼽은 인물은 바로 어머니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예전부터 문단 안팎에서 ‘문맹의 시인’으로 입소문이 자자했던 터. 온몸으로 터득한 인생에 대한 혜안과 걸출한 입심으로 말씀 한 줄, 행동 하나가 곧 하나의 시가 되는 삶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시를 쓰는 시인을 길러낸 어머니는 그렇게 일상으로 세상을 노래해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가난하지만 아름다웠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인생
우연한 기회로 어르신들을 만나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마다 어찌나 절절하고 다채로운지 놀랄 때가 많다. 웃다가도 울게 되고 울다가도 웃게 되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뭉클한 감동에 도달하기도 하고 애틋한 마음에 젖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번쩍 하고 머리를 스치는 인생의 교훈을 건져 올리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은 각각 한 권의 묵직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특히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터. 그렇기에 ‘어머니’라는 이름의 이야기들은 언뜻 읽어서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나열이라 느끼게도 하지만, 찬찬히 곱씹어보면 한 줄 한 줄 가슴에 새길 귀중한 구절들을 품고 있다.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64) 시인이 새롭게 펴낸 「김용택의 어머니」는 이런 어머니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책이다. 평소 “어머니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 그대로 시가 된다”라고 말하던 그는 오늘날 시인 김용택을 있게 한 ‘진짜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신경림 시인도 “네가 아니라 너그 어머니가 시인이구먼”이라며 무릎을 탁! 쳤다는 어머니의 유려한 입담과 삶의 흔적들을 비롯해 그간 자신이 생의 고비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썼던 시와 ‘어머니에 관한 자그마한 사건 기록’이라 할 만한 일기문까지를 한데 모았다. 열여덟 살 봄처녀가 시집을 와서 찬란한 여름과 가을을 겪고 어느덧 서서히 나무처럼 노쇠해가는 어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어머니들이 종종 말씀하시잖아요.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게 나올 것이다’라고요. 살다보면 우리 시대 평범한 어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종종 깨달을 때가 있어요. 가난하고 배운 것은 없지만 삶과 부딪치면서 귀중한 경험과 지혜들을 얻은 어머니들은 자연 속에서 여느 예술가 못지않은 감각을 발휘하며 사시잖아요. 어머니가 가지런히 모를 심어놓은 논만큼, 단풍물 곱게 든 담쟁이 이파리를 붙여놓은 창호지 문만큼 예쁜 그림이 또 어디 있겠어요. ‘꽃만 저렇게 하야다 지면 뭐 헌다냐.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라는 말만큼 감동적인 시가 또 어디 있겠어요. 제가 발견한 그런 모습들을 한데 담아보고 싶었어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지금까지 시나 산문 속 일화로 혹은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간간이 풀어놓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책 한 권에 온전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처음이다. 시인은 어느덧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다는 데 대해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자칫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감상적으로 흐르게 될까봐서요. 읽는 분들한테는 제 어머니를 찬양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어머니의 인생은 충분히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했어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 허리 굽혀 일하면서도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며 성실하게 살아오신 우리의 어머니들이요. 그동안 훌륭하게 자식을 키워내고 업적을 남긴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진짜 어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책은 없었잖아요. 기쁨, 슬픔, 고난, 보람이 녹아 있는 동네 아낙들의 인생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늙어가는 어머니와 사라져가는 우리네 농촌 풍광에 대한 김용택 시인의 애틋한 헌사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느새 환갑이 넘는 세월을 살아버린 자식이, 그러나 아직도 어머니의 모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자란 자식이 가만히 뒤를 따라 걸으며 어머니의 일생을 찬찬히 톺아보고자 하는.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가 고맙고 특별하고 자랑스럽겠지요. 특히 제게 어머니는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이셨고,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할 부분이 많은 분이에요. 평생 글도 모르고 사셨지만 책에 담긴 것 이상의 혜안을 가지셨고 지금도 젊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나 토론을 할 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밝으세요. 제 아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머니가 요즘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공부했다면 정말 큰일을 하셨을 거라고요. 성격도 대담하고 호쾌하시거든요. 어릴 적 동네를 방문하던 보따리상들이 물건 값으로 곡식을 받으면 한꺼번에 못 가져가니까 우리 집에 맡겨두곤 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분이셨죠. 저는 어릴 때도, 지금도 어머니를 통해 인생을 배워요.”

삶에서 길어 올린 지혜를 듣다
시인은 말한다. 살면서 책을 통해 배운 것보다 세상과 부딪치며 배운 것이 더 많고 크다고.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은 바로 그가 오래 몸담았던 초등학교의 아이들과 어머니였다. 천진한 아이들의 눈빛에서, 어머니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서 삶의 지침을 얻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깨달았다. 시도 마찬가지다. 몸빼 바지 입고 호미 자루를 손에 쥔 채 콩밭 한 구덩이에 시를 쓰는 어머니는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원고를 토해내는 유식한 작가들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를 읊으신다. 몸으로 쓴 어머니의 시를 듣고 있노라면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던 기본적인 가치와 덕목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시라는 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시 한 편을 읽고 이해한다는 건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질서를 깨닫는 것과 같은 거예요. 시를 잘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그 분야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을 갖춘 셈이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종합해서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시이니까요. 그래서 요즘 같은 때일수록 더욱 더 시적인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시를 가까이 하는 일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 자연을 돌아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김용택 시인이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고자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돈과 출세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리고 모두가 물질을 좇아 앞으로 달려가는 데만 급급한 오늘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지키며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삶을 모두가 꼭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분노와 미움과 절망과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쩌겄냐, 다 굽이 고비가 있고 살아갈수록 걱정은 쌓여가고 근심은 깊어지는 게 사는 것인데. 뭔 일 있으면 그러다가 또 살겠지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 고향,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더 절실해진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껏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평생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게 ‘욕심’이에요. 개인의 욕심, 집단의 욕심, 사회의 욕심…. 욕심을 버려야만 올바른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욕심 없는 소박한 삶,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봤으면 해요.”

‘양글이’ 양반의 四季,
우리네 어머니의 인생

몸집이 작고 야무져 이름보다는 ‘양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처녀는 열여덟 나이에 꽃가마를 타고 20리 길 고개 두 개를 넘어 시집을 왔다. 오빠 둘, 남동생 둘 사이에서 태어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장차 시어머니 될 사람이 선을 보러 온 자리에서 조신한 모습으로 단번에 낙점을 받았고, 결혼 잔치가 열린 날 잠깐 열린 방문 틈 사이로 본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 평생을 살았다. 한국의 모든 며느리가 그랬듯 호랑이 시어머니 밑에서 눈물이 쏙 빠지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뎌냈고 6남매를 낳아 기르며 평생을 보내왔다. 순창군 구림면 통안리에서 삶을 시작한 ‘양글이’ 처녀는 그렇게 60년이 넘는 세월을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어머니’로 살았다. 꽃다운 처녀가 시집와서 한 집안의 새댁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키우고, 논밭의 곡식과 농작물을 키워 수확하고, 그리고 마른 나무처럼 조금씩 늙어간 일상은 자연의 사계를 닮은 여정이 되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봄(春)
살림살이는 가난했다.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해도 빈궁한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돌려보내진 큰아들은 “내일은 꼭 내겠으니 한 번만 봐달라”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자갈길 14km를 터덜터덜 걸어 시골집으로 왔다. 뙤약볕 아래 밭 한가운데에서 보리를 베고 있던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 물었다. 기성회비를 못 내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타닥타닥 보리를 베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곧장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옷의 먼지를 툴툴 털며 앞장서서 걸었다. 어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보리 한 줌을 들고 나와서는 닭장 안에 흩뿌렸다.

보리알을 따라 닭장 안으로 들어간 닭들을 한 마리씩 망태에 담고서는 장으로 향한다. 영계들은 금방 팔렸다. 닭 판 돈은 꼭 기성회비와 아들의 학교가 있는 순창으로 갈 차비만큼이었다. 아들이 차에 오르는 것을 본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는 신작로로 발걸음을 돌린다.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는 없다. 빈 망태를 멘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신작로를 걷는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차 안에서 돈을 손에 꼭 쥔 채 눈물을 훔치던 아들을 먼저 보낸 뒤에도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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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夏)
뜨겁고도 환한 여름, 동네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모두 섬진강으로 나가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낮 동안 더워진 몸을 식혔다. 물이 맑은 섬진강에서는 10분 정도만 바위를 더듬다보면 바가지 가득 다슬기가 잡혔다. 해가 넘어가면 다슬기가 돌멩이나 바위 위로 슬슬 기어 나와 밟히기도 했다.

다슬기국은 반찬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국이었다. 간단한 재료를 더해 끓인 다슬기국은 식은 밥을 말아 먹으면 더욱 맛있어 여름철에 더없이 좋은 음식으로도 손꼽혔다. 간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슬기를 구해 국을 끓였다.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더했다.

다슬기는 제 어미를 파먹으며 나온다고 한다. 어미 몸속에서 자라던 새끼들은 다 큰 뒤에는 어미의 몸뚱이를 파먹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빈 껍데기가 된 어미는 흐르는 물에 조용히 떠밀려간다. 아들은 고백한다. 다슬기처럼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먹고 세상에 나와 비로소 시인이 되었다고.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랑 사니라고 애 많이 썼구먼. 사는 일이 금방이네. 사는 것이 바람 같은 것이여. 사는 일이 풀잎에 이는 바람이구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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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秋)
진메마을의 가을은 산과 들 여기저기 붉은 감을 달고 선 감나무들로 풍요롭다. 이곳 감은 재래종 중에서도 자생적인 먹감이다. 주로 곶감을 깎는 감으로, 열리기도 많이 열린다. 하루 종일 딴 감을 방에다 쏟아놓고 동네 어머니들은 품앗이로 감을 깎았다. 아이들은 그 곁에서 곶감을 깎을 수 없는 물렁물렁한 감을 가려 소쿠리에 담는 일을 했다. 이런 감은 먹기도 하고 또 썰어서 강가 바위 위에 말려 겨울에 먹었다.

먹을 것이 정말로 없던 그 시절, 어머니는 집에 조금만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큰집 할머니와 큰아버지, 이웃집 당숙, 아랫겉의 작은할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돼지고기국을 끓였을 때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수수개떡만 만들어도, 호박댓국만 끓여도 아이들을 시켜 이웃에게 돌리게 했다. 어머니만 그런 게 아니고 동네 사람 모두가 이렇게 늘 먹을 것을 나누었다. 동네엔 제사도 생일도 많아 이틀이 멀다 하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농민들의 일상적 생활은 늘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었다. 같이 먹어야 음식 맛이 나고 같이 일해야 덜 힘이 들며 놀 때도 같이 놀아야 더 흥에 겨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음식 심부름을 시킬 때면 어머니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많이 묵어야 좋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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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백…사계를 닮은 어머니의 일생

겨울(冬)
옛날엔 겨울만 되면 손과 발에 때가 많이 끼고 유난히 잘 텄다. 학교에서 용의검사를 하는 날이면 바가지에 물을 가득 부어 끓는 쇠죽솥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손을 한참 담가 때를 불렸다. 몽그라진 새끼나 볏짚 똥구멍에서 빼낸 검불을 보드랍게 해서 그 물을 묻혀 손등에 문대면 때가 잘 벗겨졌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엉망이 되고 살이 쩍쩍 갈라지며 쓰라렸다. 손이 터서 쓰리면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젖꼭지 가까이에 손바닥을 대면 어머니는 쪼르륵쪼르륵 젖을 짜서 발라주었다. 그 새하얀 젖을 손등에 바르면 잠깐은 쓰리지만 금방 보드라워졌다. 어머니의 젖은 또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나 아플 때도 쓰였다. 이웃집 사촌누나들도 이따금 그렇게 어머니 젖을 크림 대신 쓰곤 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가 땀으로 착 달라붙은 옷을 벗고 물을 끼얹는 모습을 본 손녀가 “할머니 젖, 할머니 젖” 하며 어머니 곁으로 간다. “할머니 젖가슴은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요?” 하는 손녀의 질문에 어머니는 “니 애비가 다 뜯어묵고 이만큼 남았다”라고 하신다. 아이는 “다 뜯어묵어” 하며 웃는다. 그리고 꼭 할머니 곁에 누워 잠을 청한다. 어머니가 옛날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손녀는 할머니의 작아진 젖을 만지며 킥킥 웃기도, 멀뚱히 쳐다보기도 한다.

수확의 계절 가을이 지나면 싸늘한 겨울이 오듯, 그토록 활기차고 다부지던 어머니도 마침내 마른나무처럼 늙어간다. 어머니는 자연이다. 오래된 나무같이 늙으신다. 어쩌다 “어머니!” 하고 뒤에서 부르면 돌아보지 않으신다. 귀가 어두워지신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다 늙다니. 어머니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모두들 말을 크게 하기 시작했다. 새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하나에도 크게 고함을 지르듯 이야기한다. 보청기를 하자는 아들의 권유에 어머니는 두 손을 휘두르며 “아니다. 늙으면 세상 소리 다 들을 필요 없다”라고 하신다. 아들은 생각한다. 삶은, 산다는 것은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있을까.

* 이 페이지의 글과 사진은 「김용택의 어머니」(글 김용택·사진 황헌만, 문학동네)에서 발췌·정리하였습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제공 / 안진형(프리랜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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