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안녕하세요”라며 지나가는 주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이냐?”라고 묻자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도 길에서 마주친 몇몇 주민들과 또다시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모두 오늘 처음 본 분들이라고 한다. 그의 옆에서 함께 걷는 부인 권혜정 여사가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남편의 깍듯한 인사 습관은 동네에서 이미 다 알고 있어요”라고. 그는 평소 ‘정치인이란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정치인 마인드는 동네 주민들과 허물없이 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천생연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4회 행정고시 합격, 재경부 근무, 16~18대 국회의원, 24대 고용노동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실장 역임.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임태희(55)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부인 권혜정(50) 여사를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만났다. 임 전 비서실장은 지난 5월 10일 서울대학교 SK경영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정치의 구태의연한 틀을 부수는 일을 시작한다”라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 후 임 전 비서실장의 행보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부부 인터뷰를 약속한 날도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약속 시간을 조금 지나서 도착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남편을 대신해 집에 온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한 이는 부인 권혜정 여사다. 차분하고 온화한 미소의 권 여사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임 전 비서실장이 도착했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야기 중간중간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탈하고, 유쾌하고, 또 사람 좋아하는 것까지 부부의 모습은 무척 닮아 있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권혜정 여사의 인연은 지난 1984년부터 시작됐다. 권 여사는 “오다가다 손수건 떨어뜨려서 만났어요”라고 농담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결혼을 결정했을 정도로 남다른 ‘인연’이었다고 한다.
“제가 군 장교로 있을 때 아내를 소개받았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의 처제였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의 관계가 이상해질까봐 이 사람을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죠.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인연’이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28년째다. 강산이 몇 번 바뀐 만큼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두 사람은 큰 소리를 내며 부부싸움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저 ‘물 흐르듯’ 살아왔다고.
“저는 밖에서 아무리 복잡한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완전히 잊어버려요. 제 마음이 무겁지 않으니까 집에 와서도 얼굴 붉힐 일이 없죠. 그리고 아내가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 쓰지 않게 해주니까 싸울 일이 특별히 없었어요.”
이때 임 전 대통령실장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권 여사가 속내를 드러낸다.
“당신은 그랬겠지요. 남편은 타고난 성품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고 넘어가니까 싸움이 될 수가 없죠. 가끔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냥 저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끝나는 일이 많았죠(웃음).”
두 딸은 ‘자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교육,
레게 머리 하고 싶다는 딸 위해 함께
미용실 가기도
임 전 대통령실장 부부는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두 사람은 모두 출가를 했고 큰딸은 출산해 임 전 대통령실장 부부는 손녀의 재롱에 녹아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임 전 대통령실장은 두 딸의 결혼을 무척이나 조용히 치러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큰딸은 2009년 11월, 작은딸은 2010년 3월에 각각 결혼했으며 두 딸의 결혼식 모두 친인척만 참석했을 만큼 조용하게 치러졌다. 딸들의 결혼 후에도 임 전 대통령실장은 사위들에 대한 정보를 일절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딸들이 자유롭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같은 마음은 권 여사도 마찬가지다. 권 여사는 두 딸이 품안의 자식이었을 때부터 자유로우면서도 개성을 존중하며 키웠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부모가 강요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자신들의 개성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어긋나지 않게 잡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권 여사는 딸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자신의 일을 직접 찾아서 하라’라고 가르쳤다. 일찍 자라는 말도, 일찍 일어나라는 말도, 공부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일 몇 시에 어떤 일이 있다’라는 것만 잊지 않도록 알려줬다. 그러면 딸들은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알아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큰 테두리 안에서 딸들을 믿고 지켜보는 게 권 여사의 교육법이었다.
“하루는 딸아이가 레게 머리가 하고 싶다는 거예요. 보통 엄마라면 펄쩍 뛰었을 텐데 저는 ‘그런 머리가 왜 하고 싶냐’라는 말대신 ‘어디에 가면 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어요. 그리고 딸과 함께 미용실에 가서 레게 머리를 해달라고 하고 저는 쇼핑을 했어요. 그런데 그 머리 하는 데 무척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쇼핑센터를 몇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나요. 그날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 외식을 하는데 우연히 지인들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우리 딸이라고 소개를 했더니 딸의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웃음).”
권 여사는 “레게 머리를 한다고 해서 아이가 불량 학생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딸은 머리 감는 게 불편했던지 며칠 지나지 않아 머리를 풀었다. 임 전 비서실장 역시 ‘자율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부인의 교육법에 적극 찬성했다.
비싼 과외 받지 않았어도 우등생이었던 두 딸
결혼 후에도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
권 여사의 교육법 중 또 하나는 ‘딸들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강제로 못하게 하면 결국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O.T 공연 날도 마찬가지였다. 권 여사는 공연이 밤늦게 끝나자 딸뿐만 아니라 딸의 친구들까지 모두 집에 바래다줬다. 물론 권 여사도 딸의 이 같은 행동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긴 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딸의 열정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엄마가 그리 많지는 않죠. 하지만 만약에 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서 고민하는 엄마가 있다면 ‘참고 기다리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크면서 이런 시기는 불과 1, 2년이면 끝나거든요. 그때의 아이들에게는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어요. 그것만 이해해주면 아이들과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딸의 열정이 빨리 끝나길 간절히 기도했죠(웃음).”
권 여사의 ‘자율교육’ 덕분인지 두 딸은 모두 비싼 과외 한 번 시키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잘했다. 권 여사는 그 이유를 ‘학습 태도의 성실함’이라고 꼽았다. 놀 때는 열심히 놀았지만 공부할 때는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꿈쩍도 하지 않을뿐더러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학교 선생님도 처음에는 고액 과외를 시키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아이를 관찰해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반에서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고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고3 수능시험이 끝나서 학교에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 남아서 공부를 하더래요. 저도 우리 딸들의 그런 성실함을 가장 칭찬해주고 싶어요.”
권 여사는 요즘도 여전히 딸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덕분에 두 딸에게 권 여사는 ‘우리 엄마 최고’라는 칭찬을 종종 듣곤 한다고. 딸들뿐만 아니라 임 전 비서실장에게도 권 여사는 ‘나무’ 같은 존재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면 상처받은 영혼까지 깨끗하게 치유되는 것처럼 임 전 비서실장에게 아내가 있는 집은 한마디로 영혼의 안식처다.
“아내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피곤하게 하지 않아요. 그래서 집에 오면 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죠.”
서산대사의 시조 한 수에 확 바뀐 인생관
국회의원은 3선까지만 할 수 있게 했으면
임 전 대통령실장은 여유 있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 잘 알려졌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어떻게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느냐”라고 묻자 “나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성격 형성에는 대학 때 접했던 서산대사의 시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산대사의 시조 한 수를 접했는데 그 후 6개월 동안 생각에 빠진 적이 있어요. 이 시조를 접한 후 사물을 보는 태도와 인생관이 확 바뀌었어요. 성공하다 망하고, 사랑하다 끝나고,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고의 모든 것이 다 ‘뜬구름’과 같은 거예요. 제가 대통령 비서실장직을 그만두면 그 자리는 끝나는 거지만, 대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특정 ‘자리’에 집착하지 않게 되죠. 요즘 보면 자리에만 연연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은데 3선까지만 할 수 있게 제한했으면 좋겠어요.”
임 전 대통령실장은 이 시조 한 편을 만난 것은 수백 권의 책 이상으로 값진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는 살아가는 데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고, 또 그 어떤 것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손에서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이 가장 중요
소외된 이웃 위한 경제 시스템 개혁이 목표
임 전 대통령실장은 지난 1997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면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는 것을 보고는 정치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IMF로 금융감독원 직원 중 8만명을 해고시키는 일을 담당했다. 그때 임 전 비서실장은 공무원의 한계를 느꼈다.
“제가 수만 명을 해고시키는 일을 담당하면서 마음속으로 엄청난 죄를 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무원은 이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요. ‘내게 주어진 일이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고요.”
이와 같은 생각을 발판으로 그는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지난 2000년 16대 국회의원이 됐다. 사실 임 전 비서실장의 이와 같은 결정은 장인이자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권익현 전의원의 영향도 매우 컸다. “당시 장인어른은 경상남도 산청 지역구 국회의원이셨는데 정말 성의껏 사람들을 만나셨어요. 주민들이 밤늦게 찾아와도 다 만나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사실 그 모습에 감동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국회의원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 2000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당선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부인을 포함한 가족과 지인들은 “할 수 있다”라며 믿음을 줬다.
“남편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어요. 정치를 하려면 모든 계층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모든 사람들과 가식 없이 어울리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임 전 비서실장은 정말 그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이에요.”
임 전 대통령실장은 군 복무 시절 수양록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써놓았다. 이처럼 그는 젊은 날부터 ‘대화와 타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글로벌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상대 진영도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하며, 국제무대에서 소신껏 의사를 펼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본인이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낀 바라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라는 소신을 밝혔듯이 임 전 대통령실장의 인생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다. 사회적인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일자리가 많아지며, 전문 인력도 정년 퇴임 후 다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전 대통령실장은 “정부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만들고 사회운동으로 확대시키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글로벌 대한민국에 대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의지가 가슴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의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의 사라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 뜬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으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 살고 죽고 오고 감 또한 그와 같도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인생을 바꾼 서산대사의 시조 |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