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함께하자고 맹세했지만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린 부부 관계. 불화가 생긴 부부는 상대를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서로를 아프게 할퀴고, 평화롭던 가정을 살벌한 전쟁터로 바꿔놓는다. 다정했던 남편, 사랑스러웠던 아내를 되찾을 수는 없을까?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에게 관계 극복 솔루션을 제공하는 EBS-TV ‘부부가 달라졌어요’의 실제 사례를 통해 부부 관계의 긍정적인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하자.

EBS-TV ‘부부가 달라졌어요’와 함께하는 부부 트러블 해법 찾기
대구에 살고 있는 김동인(32)·전영실(31) 부부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첫눈에 반해 6년 전 결혼했지만 지금은 각 방을 쓰며 별거와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지내고,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한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하루를 보낸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 딸 지빈(6)이는 적막감이 감도는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며 중재하느라 어른 같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이 부부를 이렇게 무겁고 오랜 침묵 속에 가두어놓았을까?
After
이제 남편은 방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아내, 아이와의 관계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남편의 새벽 출근길은 아내가 다정하게 배웅하고, 남편은 가족이 보고 싶어 귀가를 서두른다. 아내는 더 이상 해묵은 상처 속에 자신을 가둬놓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준 남편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다시금 깨닫고 있다. 부부는 모든 문제가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잘 알게 되었다. 앞으로 부부 사이에 또다시 갈등이 생긴다 해도 두려움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 침묵이 아닌 소통으로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해법 길잡이’ 박성덕 소장의 부부문제 진단 결과 1 남편의 감정표현 부족 2 부부간 정서 소통 부재 3 남편과 아내의 원 상처 점검 필요 8주 동안의 솔루션이 진행되는 동안 부부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남편 감정 살펴보기, 아내의 감정 들여다보기, 서로의 마음 이해하기, 부부 관계 강화하기 등 네 차례에 걸친 전문가와의 심도 높은 상담을 통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표현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서로에게 가졌던 해묵은 오해와 서운함 때문에 부부 캠프에 참여할 때는 갈등이 폭발하기도 했지만, 결국 부부는 상대방의 아픔과 상처를 읽게 되면서 화해의 포옹을 했다. |
아내 전영실 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이렇게 달라졌어요!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남편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지빈이를 출산하고 나서 우울증이 왔어요. 유난히 예민했던 아이라 힘들었지만, 남편은 새벽시간에 일했기 때문에 육아는 철저히 저 혼자만의 것이었죠. 우울증이 심해지자 안면마비가 오고 길에서 쓰러지기도 했어요. 아이를 호수에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에 옮긴 적도 있어요. 남편은 그런 저를 지켜보며 걱정했지만 그래도 저는 늘 서운하기만 했어요. 돌이켜보면 남편은 지빈이와 저에게 모든 걸 양보했는데 당시에는 미처 몰랐어요. 너무 힘들고 불안하다 보니 제 상황 외에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남편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뚜렷한 계기가 있었나요?
결정적인 사건이나 남편의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대화 부족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죠. 저도 남편도 힘들고 싫은 상황은 피하려고만 해서 그때마다 할 얘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상대방과 좋은 얘기만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대화를 줄어들게 하고 결국 서로를 단절시킨 거죠. 사실 저와 남편은 우리의 상태를 직시하지 못했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서로의 성향과 대화 패턴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문제의 원인도 찾게 되었어요.
원 상처는 얼마나 회복되었나요?
어릴 때의 상처가 모두 회복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컸기에 어리석게도 당신들께 마음속 상처를 드러내서 사과받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이젠 부모님의 삶이 이해가 되고,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반성하며 살고 있어요. 특히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어요. 남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많이 속상했는데, 남편을 이해하게 되니 아버지의 마음도 헤아리게 되었어요. 아버지도 많이 외로우셨을 텐데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표현하지 못하셨을 뿐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어요.
현재 부부 사이는 어떤가요? 예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남편과의 대화가 즐거워지고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해졌어요.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며 함께 웃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대화를 하면서 늘 감사하고 있어요. 남편은 더 많이 변했어요. 과거와 달리 가족이 함께하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요.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신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어요. 가족이 함께하는 활동이고 가정의 기준을 세워가는 소중한 과정이어서 교회에 갈 때는 지빈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가 참여하고 있어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당신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 당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참아줬는지 알게 되었어. 나의 오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고, 잘 참고 기다려준 당신이 고마워. 지빈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행복해지자.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우리의 노력하는 삶을 선물하자.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남편 김동인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이렇게 달라졌어요!
결혼 생활 중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결혼 초부터 새벽에 일하다 보니 아내, 아이와는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어려웠어요. 낮에 하는 일로 전업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어느새 가족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죠.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각 방을 쓰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방을 나서는 게 두려워지니까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솔루션 중 아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동안 아내가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로 힘들어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했어요. 저를 괴롭히던 죄책감도 한꺼번에 없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아내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속 응어리도 다 풀렸고요.
요즘 아내에 대한 감정은 어떤지요. 또 부부 관계가 회복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마치 새로 연애하는 기분이에요. 아내를 보기만 해도 설레고 사랑스럽고 의지가 돼요. 가장 좋은 점은 대화의 즐거움을 알았다는 것! 전에는 대화를 하면 결국에는 싸우거나 둘 중 하나가 삐쳤거든요. 요즘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주려고 노력해요.
남편으로서 아내와 가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아이하고도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놀려고’ 하고요. 이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편해졌어요. 아내의 상처는 앞으로도 100%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가족이 다른 행복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를 알고 너랑 결혼한 게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네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매일 깨닫고 있어. 정말 고맙고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서로 아끼면서 살자. 정말 사랑한다!
전문가 인터뷰
정신과 전문의·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소장 박성덕

EBS-TV ‘부부가 달라졌어요’와 함께하는 부부 트러블 해법 찾기
부부가 갈등의 끝에서 선택하는 것이 ‘각 방을 쓰는 것’입니다. 방을 따로 쓰는 것은 언뜻 보면 서로에게 편할 것 같지만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큰 행동이에요. 상대방의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지고 힘들어지거든요. 부부가 각 방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공간에 있으면 불안하고 어색해져 결국 서로를 분리하게 되는 거죠.
Q 불화가 생기면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부부가 많습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불화 상태에 갇히면 부부 관계의 감정이 부정적이면서 경직돼요. 그래서 부부간 불화는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말문을 닫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갈등 관계에서 남편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아내는 분노하고 공격하지요. 그러면 남편은 아내를 피하게 되고, 자극을 받은 아내는 남편을 다시 공격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부부가 관계 회복을 결심했다면 남편은 아내의 공격이 자신의 회피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용기내서 다가가세요.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보세요. 또 아내는 남편의 작은 노력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고 부드럽게 대하면서 용기를 주세요.
Q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인데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소극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부 치료는 같이 할 수 없다면 필요를 느낀 사람이 먼저 시작하고 배워서 변화하면 됩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지치겠지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결국 상대도 발전하고 변해요. 내가 더 많이 움직이면 손해보는 것 같아도 배우자를 위한 노력은 결국 나에 대한 노력과 같아요. 지금은 적이고 원수 같아도 결국 부부는 한 몸이니까요.
부부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3단계 대화법 1 반영 상대방의 거울이 되어주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은 나를 통해 자신을 비추고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게 된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한다. 예) 배우자가 “오늘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그래, 힘들었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2 인정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옳다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부부는 서로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죽고 싶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배가 부르니까 그런 말이나 하지!”와 같은 독설을 날린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떠한 감정이든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 배우자가 “죽고 싶다”라고 말하면, “당신, 그럴 수 있어”라는 이해의 메시지를 준다. 3 공감 공감의 본래 의미는 ‘들어가서 느낀다’라는 뜻.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 느끼는 연습을 한다. 내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때 어땠는지 되돌아보면 배우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인 공감은 상대의 입장 안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 “당신이 그때 이랬었구나”라며 공감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
■글 / 곽도은(프리랜서) ■사진&제공 / 이주석, 김동인·전영실 부부